불량식품, 불량세월

  • 입력 2013.03.12 15:51
  • 기자명 김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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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한’의 추억 속으로


불량식품, 불량세월

1970년대 학교 부근의 만화방에는 반드시 개비 담배를 팔았다. 미닫이 서가를 열고 들어서면 그 안쪽엔 한두 평 남짓 독방 같은 흡연실이 있었다.
물론 만화방 주인은 철없는 사춘기 아이가 아니라 멀쩡하게 자식도 키우는 어른들이었다. 학교 부근 분식집 구석방에는 항상 막걸리와 소주를 팔았다.
기억나는 50대 아저씨가 있었다. 수업 땡땡이 치고 술 마시러 가면 너무나 친절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던 구레나룻 아저씨. 삼촌 같았던, 큰아버지 같았던 구레나룻 헤벌쭉 아저씨.
당시는 분식장려의 시절이었다. 쌀 생산량의 자급자족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막걸리는 쌀 대신 밀가루로 빚도록 법으로 묶어두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해 비로소 쌀 막걸리를 허용하는 법안이 발표되었고 구레나룻 아저씨는 흥분했다. 쌀 막걸 리가 새로 나왔다고 우리들에게 적극 권장했다.
“혀끝의 느낌부터가 밀가루 막걸리랑은 쨉이 안되는기라. 니들 한테두 이젠 쌀 막걸리 시대가 열린기라아~”
우리는 자그마치 이제 겨우 중학생이었다. 마치 선진조국의 개막을 알리듯 감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던 구레나룻 아저씨. 물론 술값은 시중가보다 1.5배 비쌌다.
문득 궁금해진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장사를 했을까. 설마 아주 훗날 나에게 불량식품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려고 그랬었나? 불량식품 아줌마, 아저씨들은 지금도 무병장수 하시죠?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시나요?
10대 때부터 흡연과 음주가무에 흠뻑 젖어 살던 저도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철없는 아이들과 생각 없는 어른들이 뒤 엉켜 있었던 불량식품의 그 시절. 불량식품이어서 더욱 쫀득쫀득했던 그 세월.

사진설명 : 김재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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