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이(齒)를 선사하는 치과의사 전중현 원장

전중현 원장의 친절하고 진솔한 치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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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미국 텍사스 임플란트학회(AO) 발표한 포스터 앞에서
2007 미국 텍사스 임플란트학회(AO) 발표한 포스터 앞에서

솔직하게 사는 인생

“환자들이 웃을 때가 가장 좋아요”

아픔 없이 치료해드리는 게 저의 모토입니다.

 

Q.  원장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통증 없이 치료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연세 LA 치과 원장 전중현 입니다. 1992년부터 치과의사인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수학한 이후 이곳 신촌에 자리를 잡은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진료를 시작한 지 벌써 23년에 넘었네요. 

 

Q.  임플란트와 턱관절 치료에 집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임플란트는 없는 것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기에 의사로서 무척 보람 있고 행복하게 여기며 치료하고 있어요.

제가 연세대학교 치과병원 보철과에서 수련을 받을 때만 해도 임플란트라는 것이 없었어요. 당시만 해도 치료방법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 남아있는 치아를 깎고 씌우는 치료를 주로 했기 때문에 환자들이 통증을 많이 호소했어요. 조금 더 편하게 치료를 해드릴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1주일간 미국 임플란트 수련병원을 돌아보고 와서 캘리포니아의 로마린다 치과대학교 임플란트 과에서 처음으로 임플란트를 배우게 되었고 개업 후부터 지금까지 시술을 하고 있습니다. 개업을 하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던 중 도미 후 미국 임플란트 전문 병원에 근무하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주치의 이자 UCLA  교수님이셨던 토마스 한 선생님께 환자 중심적인 임플란트 치료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촌에서 개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을 다녀온 후에도 미국 USC 교수님이신 Dr. Zadeh 교수님께 배울 기회가 생겨 제 진료철학인 아프지 않게 편안한 치료를 위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어요.

이어 턱관절 치료에 집중을 한 계기는 임플란트 공부를 하다 보니 자기 치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한국 사람들은 뭐든지 오래 씹고 질긴 것을 씹어야 치아가 훈련되고 튼튼해지는 줄 아는데 실제적으로는 치아에 무리한 힘이 가해지는 영향으로 이가 흔들리거나 빠지는 등의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잘 걷는 것의 근본이 다리 관절이듯이, 잘 씹고 남아있는 치아를 보호할 수 있는 턱관절 공부에 신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당부는 살릴 수 있는 자기 치아는 최대로 보존하면서 임플란트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2미국 애리조나 임플란트 학회장에서-Dr.Zadeh교수님과(편한한 최소 절개 수술법을 가르쳐주신 USC치주과 교수님)
2012미국 애리조나 임플란트 학회장에서-Dr.Zadeh교수님과(편한한 최소 절개 수술법을 가르쳐주신 USC치주과 교수님)

Q. 치대를 진학한 동기가 있나요? 신촌역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가 산부인과 의사셨어요. 그런데 산부인과 특성상 밤에 분만하는 임산부들이 자주 있었기에 부모님은 규칙적인 수면시간을 갖지 못하셨죠. 거의 1년 내내 쉬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의 공사장 소리로 인해 공부를 못할 정도로 시끄러웠던 환경들이 어린 저에게 많이 힘들었어요. 그리고 저에게 정말로 딱 필요한 만큼의 용돈만 주셨던 기억 때문인지 제가 생각하기에 부모님이 그렇게 고생하시며 일하셨지만 제 용돈이 넉넉하지는 않았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이 치과를 가셨는데 그렇게 좋아 보이셨나 봐요. 적어도 밤에 잘 수 있는 의사라고 생각하셨고 저는 자연스럽게 의대보다 치대에 진학했어요. 치과대학을 졸업 후 인턴 시험 전에 시간이 남아 치과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어린 시절 풍족하게 돈을 써 본 경험이 없던 저는 혼자 힘으로 돈을 벌어 쓸 수 있다는 행복에 사로잡혀서 노는 바람에 인턴 시험공부를 게을리하게 되어 인턴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어요.

당시 인턴의 한 달 월급이 30만 원 정도였는데, 저는 3년간 인턴 레지던트를 월급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근무하게 되었어요. 잠시 시험공부를 게을리한 결과로 3년을 고생하고 부모님께 누를 끼쳤지만, 그 덕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제 인생이 바뀐 것 같아요. 대학에 5등으로 입학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었는데, 그래서인지 제가 자만을 했던 것 같아요. 쓴 잔을 마신 후부터는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 후 저희 과에서 저는 남자 박사 1호로 등극을 했고, 이어 나중에는 외래교수 1호로도 호명되는 영광을 얻었죠.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에 저는 개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젊은 나이에 박사와 외래교수까지 되었으니 공부를 다했다고 생각했어요. 치과 인테리어 공사와 학회 일정이 겹쳤고 아는 교수님께 인사도 드릴 계획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학교 동기를 우연히 만났고 그 친구는 자신이 미국 치과의사 시험에 합격하여 인터뷰를 하러 간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더군요. 순간 저는 뭐에 맞은듯한 기분에 멍해지면서 눈에 초점이 흐려졌어요. 대학시절 그 친구는 영어 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았던 친구였고, 상위권을 지켰던 저는 담당 미국 교수님과 그 친구의 부탁으로 영어 통역이나 번역을 도와주곤 했었어요. 그 친구를 도와주며 당찬 얼굴을 하고 있는 내 표정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더니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면서 내 존재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그날 이후 미국 치과의사면허 시험에 도전하기로 다짐하고는 미국에서 1달간 교수님을 만나고 학회를 참석할 때도 시험 생각만 한 것 같아요. 그 당시 저는 아현동 부모님 병원 2층에서 치과를 개업한지 6년 정도 된 상태였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고 하니 그럴 법 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치과의사가 되려면 미국 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3번의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그 당시엔 한시적으로 모자라는 의사를 보충하기 위해 우수한 외국 치과의사를 4번의 시험으로 뽑는 형식이었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또다시 미국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하여 2년에 걸쳐 4번의 미국 치과의사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미국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처도 덩달아 같이 시험을 보게 되었고 같은 해에 저와 같이 합격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치과대학을 나와도 그해 치과 시험 합격률이 65%라는 말을 듣고 저희 모교인 연세대학교 치과대학과 제처 모교인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미국 치과의 면허에 합격을 한 후 미국에서 치과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진행하려 하는데 같이 치과를 하려던 미국인 치과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어 계획이 무산되었어요. 운명이었는지 전 이건희 회장의 임플란트 주치의이셨던 토마스 한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미국 병원에서 환자를 보면서 또다시 임플란트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신촌에서 개업을 하게 되었고 지금 생각해도 저는 북아현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면서 걸어서 신촌에 다니며 연대 치과대 병원 강의도 걸어 다니는 것이 행복합니다.

과거 자만에 차서 인턴 시험에 떨어졌던 그 경험이 아마도 제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급으로 일했던 3년간은  무시를 당하기도 했는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견디고 노력했어요. 그때는 힘들었지만 자만했던 제 인생에 가장 좋은 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7 미국 텍사스 임플란트학회회에서 포스터 강의 중
2007 미국 텍사스 임플란트학회회에서 포스터 강의 중

Q. 의사로서의 철학과 신념 그리고 경영방침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직원들도 아주 친절한데 어떻게 교육을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아프지 않게 치료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환자분들과 제 사이의 ‘신뢰’라고 생각해요. 저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저를 필요로 하시는 한 끝까지 좋은 인연으로 남길 바라며 최선을 다해 치료해드립니다. 그리고 그 연을 놓지 않고자 평소에 작은 엽서 라든지 연하장과  새해 선물 등을 보내드리면서 우리 치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예방책을 상기시켜드리며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마음을 쓰고 있어요. 의사로서 보람되고 뿌듯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경영방침에 관한 규칙이나 룰은 없어요. 직원들에게는 항상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요. 그냥 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저희 직원들도 항상 웃는 얼굴로 오랫동안 저희 치과를 지켜주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죠.

2010 임플란트학회(AAID)발표-Dr.Lozada교수와 함께(처음 미국 Loma Linda치과대학교 임플란트과에서 임플란트 가르쳐 주신 과장님)
2010 임플란트학회(AAID)발표-Dr.Lozada교수와 함께(처음 미국 Loma Linda치과대학교 임플란트과에서 임플란트 가르쳐 주신 과장님)

Q. ‘치료’의 목적과 ‘미’의 목적으로만 오는 환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치료’ 의 목적으로 치과를 오는 분들은 말 그대로 문제가 있고 아프기 때문이니 당연한 것이고 제 의무를 다 하는 시간인 거죠. 그리고 ‘미’란 정말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자연 그대로의 얼굴로 살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치료를 받아서 자신감을 얻고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치료를 해도 좋다고 생각해 요. 자신감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사람과 신촌LA연세치과 병원에서
집사람과 신촌LA연세치과 병원에서

Q. 치과의사의 좋은 점과 나쁜 점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세요.

어떤 전공이나 학력을 가지고 있든 자신이 만족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이 인간에게 오복 (五福) 중의 하나인 ‘치아’를 주셨지만, 이 ‘치아’가 병이 들거나 약해졌을 때는 유일한 희망이 치과의사죠. 치과의사만 고쳐줄 수 있으니까요.(하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환한 웃음을 보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흠.. 나쁜 점은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운데요…생각이 안 나요. 뭐 어떤 일이든 안 좋은 점이 없는 직업이 있겠습니까 만은 뭐 저한테는 좋은 점만 있는 것 같네요(웃음)

2012 대만의과대학병원에서 열린 대만 치과선생님들 대상 임플란트 강의 차 가서 병원 앞에서 한컷
2012 대만의과대학병원에서 열린 대만 치과선생님들 대상 임플란트 강의 차 가서 병원 앞에서 한컷

Q. 치과의 가 되는 과정에서 또는 치료를  하면서 가장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국에 돌아와서 개업의로,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과 외래교수로, 미국 학회에서 발표를 하며 여러 나라에서 치과 선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플란트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한 7-8년 전쯤 미국 샌디애고 임플란트 학회에서 포스터를 발표하고 있는데 일본인 치과의 야기하라 선생을 만났어요.  그분이 한국에 혹시 가게 되면 저희 치과를 방문해도 되느냐고 물어보셨던 인연으로 지금도 왕래를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분은 도쿄 근교에서 개업을 하고 저처럼 부부치과의사인데 어렸을 때 부모님과 부산에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을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그 후 부부가 저희 치과를 방문하게 되었고 제가 시간을 내어 수술하는 것을 참관하게도 해드렸어요. 그 후 저를 만난 자리에서 저를 평생의 멘토(스승)로 모시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뭔가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야기하라 선생도 일본 및 세계를 다니며 꾸준히 교류하고 배우는 분인데 훌륭한 선생의 멘토가 된 이상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며 치료에 임합니다.

요즘 세상을 글로벌 세계라고 하잖아요. 강의를 다니면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교류하는 것은 참 좋다고 생각하고 최근에는 제가 홍콩 강의에서 알게 된 홍콩인 치과 선생이 또 인연이 되어 저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십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세계화되어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생활건강TV메디컬 투데이방송국에서
생활건강TV메디컬 투데이방송국에서

 Q. 앞으로 계획에 대한 한 말씀과 특히, 병원의 발전을 위해 주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말에 이를 악물고 참으라든지, 이를 악물고 고생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있잖아요.우리 한국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서 너무나 ‘이’를 꽉 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세계적으로는 좋은 나라로 성장하고 있지만, 치과 의사인 제 관점에서는 우리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딱딱한 음식을 씹는 것부터 이런 이를 무는 습관 등이 턱관절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이’와 ‘턱’ 의 연결되는 부분에 문제를 안고 있는 턱관절 환자들의 많은 사례들을 지켜보며 최근 제가 가장 우려를 하고 관심이 가는 영역이 턱관절 치료입니다.

가령, 산을 많이 오르내리게 되면 건강은 좋아질 수 있지만 다리 관절에는 무리가 오게 마련이죠.  ‘치아’도 마찬가지예요. 음식을 너무 오래 씹거나 딱딱한 것을 많이 씹게 되면 무리가 오게 되죠. 부드러운 음식으로 단시간에 먹는 게 몸에 좋다고 강조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내 치아를 건강하게 간직하고 싶다면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치아에 무리가 되지 않는 부드러운 음식 위주로 드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예를 들어 마른 오징어, 누룽지, 질긴 회나 고기 등은 가급적 피하시고 껌도 잠깐 동안만 씹으시길 권합니다.

최근 임플란트 치료와 함께 턱관절 치료에 주력을 하고 있는 가운데 턱관절 질환은 보통 입이 크게 잘 벌어지지 않고, 몸에 다른 질병이 없는데도 목이나 어깨가 잘 뻐근해지거나, 머리가 자주 아픈 경우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과 함께 이를 꽉 물거나 잘 때 이갈이 습관이 있는 경우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이런 증상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나타나 특히 수험생들의 경우나 회사원들도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 꽉 무는 습관이 생기므로 조기에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치료방법은 물리치료나 ‘스플린트’라고 부르는 턱관절 치료기를 끼게 되면 뛰어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물리치료도 의료보험이 적용되니 편한 마음으로 치과를 내원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희소식은 임플란트 치료가 그동안 만 75세 이상만이 본인 부담금 50%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금년에는 만 70세, 내년부터는 만 65세 이상으로 바뀝니다. 우리나라만큼 치과 보장 제도가 잘 되어있는 나라가 없다고 생각해요. 

수술중
수술중

Q. 끝으로 저희 ‘피플 투데이’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존경하는 분들 중에, 환자들을 편하게 치료하는 수술법을 가르쳐 주신 USC 치과대학 자데 교수님(Dr. ZADEH)이 계십니다. 진료를 시작해서 지금껏 제가 하나의 화두로 삼는 것도 ‘아프지 않은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늘 공부하며 세계적인 치과 선생들과 교류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이 또한 저의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 기부활동도 꾸준히 하며 그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어주는 이 시대의 따뜻한 의사이다. 일본은 치과의 수가 편의점만큼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국민들의 치아 건강을 위해서 치과의 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바람직한 성장을 귀띔해 주는 그는 환자들이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아픔이 없는 치료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전중현 의사와의 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알코올 냄새를 차갑게 풍기며 약간은 거만하게 다가올 것 같은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치아’가 아파 고생하는 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전중현 원장의 진실되고 올바른 진료가 그를 필요로 하는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중현 원장의 약력>

 

  •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보철과 인턴, 레지던트 수련
  •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대학원 보철학 전공석사, 박사
  •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과 외래교수
  • 미국 치과의사 면허 취득
  • 미국 WPDI 치과병원 전임의
  • 미국 임플란트 학회 정회원(AO)
  • 미국 심미치과학회 회원(AACD) 
  • 현재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보철 학과에서 강의

 

  • www.yonseila.co.kr

 

               

치과 위치: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29-81 르-메이에르 신촌타운V(스포츠센터) 4F (406호)신촌 지하철역 4번출구 도보 30m 

 

전화번호: 02-363-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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