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대 <에너지활력강사>, 오옥란 강사

몸소 체험한 ‘독립성’이 최고의 교육!

  • 입력 2015.04.03 14:07
  • 수정 2015.04.03 14:22
  • 기자명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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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사무실 앞에서 화이팅 포즈를 취하는 오옥란 지사장
울산 사무실 앞에서 화이팅 포즈를 취하는 오옥란 지사장

[피플투데이 서성원 기자] = 피플투데이에서는 울산의 에너지활력강사, ‘오옥란’ 지사장을 내방했다. 현재 마임화장품 울산남목서부지사장으로 활동중인 오옥란 지사장은 ‘가장 인간적으로 대하기’가 바로 사업에서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즐거운 강의’를 이어가는 여성사업가이며, 지역민들의 ‘함박웃음’을 책임지는 웃음고수를 만나보자.

Q. 오옥란 지사장님, 울산남목서부지사에 대한 소개 바랍니다.
마임화장품은 전국에 1,000여개, 울산에만 30개 정도 사무실이 있다. 현재 울산남목서부지사에는 4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으며, 매일 1시간 교육이후 자율적 영업활동을 펼친다. 매주 1회 정도 이벤트로 웃음치료/레크레이션을 통해 활기차고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 이 뿐만 아니라 노래교실, 영화상영 등 찾아온 사람들이 즐겁게 돌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Q. 일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마임화장품 일은 2004년 친구의 소개로 접했다. 천성적으로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만남이 매우 즐거웠다.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 보였기에 빠르게 정착가능했다. 잠깐 와서 경리일을 봐 주고 했지만, 나중에 내가 가진 달란트를 바탕으로 교육강사 활동으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하다보니  사원 100명을 넘겼고, 2011년경 새롭게 울산남목서부지사로 새로오픈을 하게 되었다.

Q. 두 자녀의 어머니로 알고 있습니다. 직장생활 시작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A. 나 자신이 초등학교 때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했기에 자연스레 자식교육도 그렇게 했다. 이전에는 학원강사일을 했었고 그 전에는 집에서 10년 넘게 ‘초등과외’를 했다. 세상의 엄마들이 모두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전해 주고 싶겠지만,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자식들에게 ‘경험’을 들려줄 수 있는 매력있는 엄마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Q. 지사장 일을 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A. 그 전에도 사실 도맡아 해 왔던 일이기에 큰 변화는 없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경제적인 차이도 거의 안 난다고 보면 된다. 현재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는 ‘남편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 할 수 있는 직장이 있고, 거기에서 사람 만나며 행복해하고, 집에 돌아가 가족이 모여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생활 - 이 모든 삶이 행복이다.

Q. 스마트 시대에 걸맞는 만능강사라고요?
A. 오피스(파워포인트, 엑셀) 강의는 오랫동안 해 왔다. 예전 2000년대 초반 대학 수업을 받으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 열심히 PC전문서적을 사서 독학했던 게 도움이 되었다. 사회생활 시작하거나 군대 보내는 자녀들의 부모인 우리세대는 커면서 편하게 컴퓨터를 접하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힘들게 독학했지만, 공유하지 않으면 그 가치는 없다. 울산 시내 문화센터나 다양한 강의계획을 세우며 ‘PC활용법’에 대해 알리고 공부한다.

Q. 슈퍼우먼으로 살아가는 오 선생님이시지만, 그래도 힘이 빠질 때가 있을 텐데요?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하지만, 늘 사무실에 찾아오는 인원수 걱정은 있다. 현재 40명정도가 활동하고, 어떤 때는 20명 대로 줄기도 한다. 강의준비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아이들로부터 얻어내고, 또 다른 문화센터 등의 강의활동 전에 여기 지사에서 직접 강의테스트를 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 없는 상태에서 진행을 하려면, 텅 빈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가수처럼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강의를 준비하면서 극복하려 한다.

Q. 2015년 계획은 무엇인가요?
그 동안 일은 정말 겁없이 해 왔다. 5년만에 사원 100명을 이루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의 수에 따라 분위기도 달라진다. 누구는 ‘그래도 동네방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과정 자체가 힘들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매력이 크다고 보여지고 도전적인 내 성격에 딱이다. 첫째가 ‘사람’이라 새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고, 다재다능한 내 능력을 시험할 수 있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작년까지 웃음강사로 적극성을 띄었다면, 올해부터 다시 ‘사업다지기’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며, 매일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할 것이다. 

<인물인터뷰>
오옥란 지사장은 사업가였던 아버지와 생활력 강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 중 다섯 째로 태어났다. 서울 했던 일했던 아버지가 사업 실패 후 부산 구포로 내려왔고, 가장의 무거운 짐은 어머니에게 고스란히 넘겨졌다.
큰 언니와 11살이나 차이가 나는 오 지사장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즐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와서 되돌아 보면, 우리가 힘들게 살기는 했어요. 아버지는 사업 실패 이후, 바깥으로 다니셨고 가끔 집에 오셨죠. 결국 어머니가 새벽부터 나가 밤 늦게까지 자갈치에서 생선팔아 번 돈으로 우리 칠남매가 성장했으니 얼마나 먹는거나 입는게 여유롭지 못했겠어요. 하지만, 전 즐거운 추억만 갖고 있어요. 위에 오빠는 4살 터울이었는데, 오빠를 따라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동안 저는 근처에서 이것 저것 하면서 놀았던게 기억나요. 가장 큰 오빠는 중학교만 마치고 바로 가장 역할을 해야 했죠. 오빠한테 한 번씩 놀러가면 꼬맹이 손에 용돈을 쥐어 주곤 했어요.”

밝은 성격의 오 지사장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동네꼬마 노래자랑’을 진행하는 리더였고, 없는 용돈을 쪼개어 학용품을 직접 사서 상품으로 내걸기도 했다.
유년기, 청년기 시절 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으로 대학은 그저 꿈으로만 넘기고  차선책으로 ‘보육교사 아카데미’에 들어갔다. 
21살의 어린 나이에 1년 과정을 마치고 취직한 곳은 부산 괴정의 한 ‘웅변학원’ 보육교사직이이었다. 
“제 적성에 잘 맞았어요. 아이들도 좋아했고, 무엇보다 대한웅변협회에 소속되어 웅변을 가르치면 속에 있는 응어리가 시원하게 터져 나와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죠.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생활력’과 7남매가 서로를 챙겨주며 가족간에 이뤄진 끈끈한 정은 ‘독립심’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누가 무엇을 하더라도 믿어준 ‘어머니의 사랑과 신뢰’가 든든한 지지대였다. 그래서, 현재도 형제모두가  ‘월급쟁이’  한 명 없이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

 

 

<프로필>
마임화장품 / 마임건강식품 울산남목서부지사 지사장
힐링문화연구소&한국웃음치료연구소 지부장
(사)국제평생학습연합회 대표강사
기관단체 웃음교실, 힐링교육 등 전문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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