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와의 끈끈한 협력관계

  • 입력 2012.12.26 15:36
  • 기자명 현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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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와의 끈끈한 협력관계
박철진|(주)IKC 대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1만 7,50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섬나라다. 인구는 약 2억 3,800명가량으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국으로 자원도 풍부하여 발전가능성이 많은 나라다. 인도네시아는 1966년 8월 한국과 영사관계를 수립했으며 1973년 9월 수교합의와 함께 양국 수도에 상주대사관을 설립하며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981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이, 1982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이 상대국을 방문해 양국의 우호관계를 확인하는 등 교류가 활발한 인도네시아에서 박철진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우리나라의 양국 협력을 도모하며 세계시장의 폭을 넓히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산업 협력적 관계

한국과 인도네시아가 근본적으로 우호관계를 쉽게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원인은 양국이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인도네시아는 석유, 가스, 석탄, 광물 등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필요한 자원이 풍부해 주요 자원 공급국으로 자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경제개발에 주력을 가하며 유도요노 대통령에 의한 “인도네시아 경제개발 마스터플랜”으로 매년 6%이상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과거 경제 개발 5년 계획과 유사하여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우호관계는 앞으로도 지속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 2011년 우리 국가정보원에 의한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으로 미루어 볼 때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의 경우 국제관례에 따르면 양국 간 외교마찰을 크게 빚어야 마땅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 사건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을 약 40억 달러 치를 구매하고 인도네시아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과 자카르타 시내를 잇는 20  달러 규모의 철도사업을 한국이 독점 수주하는 내용의 MOA도 체결하는 등 유대관계를 더욱 돈독히 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 하는 계기는 지난 2008년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다. 당시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선진국 사이에 서있는 초청국이라는 입장이 강했는데 그해 12월 국제금융위기 이후 워싱턴에서 열린 G20에 참가하면서 양국은 ‘신흥국으로서의 역할’에 의기투합했다. G20 직후 양국 두 정상은 브라질을 함께 방문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시절 인도네시아의 첫 고속도로 건설 공사를 내가 했다. 대한민국은 인도네시아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채워줄 친구가 될 수 있다”며 입장을 밝혔고 인도네시아의 유두유노 대통령도 “내 아내가 어린 시절 서울에서 컸다. 대한민국과 이 대통령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고 답해 양국의 입장이 일치함을 보여주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박철진 대표는 인도네시아와의 무역, 인력파견 등에 힘쓰며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투자지의 노른자, 인도네시아
박철진 대표가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와 무역을 시작한 것은 1992년 부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286컴퓨터에서 386세대로 넘어가는 시기였고 인도네시아는 아직 컴퓨터가 도입되지 않은 점을 착안해 무역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386컴퓨터가 도입되기 시작해 가정, 사무실 특히 경찰서, 관공서 등에서 빠르게 386컴퓨터로 교체되기 시작했고 기존의 286컴퓨터는 폐기처분해야 하는 골칫덩이로 남아있었다. 박 대표는 이점을 활용해 286컴퓨터를 매입하여 인도네시아에 수출하였다. 중고 제품이긴 했으나 당시 인도네시아에는 컴퓨터가 들어오지 않아 붐을 일으켰다. 서로 수요와 공급이 잘 맞아 성공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외에도 박철진 대표는 헌옷, 원단 등을 수출하며 양국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박 대표가 인도네시아에 수출하여 성공하기 까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그는 본래 다른 무역업을 하고 있었지만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컴퓨터 수출이었다. 박 대표는 “방하나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며 그 당시 고난을 전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대전 성서에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보증금이 모자라 사업자체를 포기하려고 체념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의 사업철학과 비전을 알아본 임대주가 보증금 없이 터전을 내 주었고 박 대표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어렵게 마련한 방이었지만 방을 구하는데 돈을 다 써버려서 당장 먹을 쌀 살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주변이웃이 쌀을 사주기도 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힘든 여정을 거쳐 그는 현재 각종 물품을 수출하며 인재를 파견하기도 하고 현지 물품을 들여와 한국 거주 인니들을 위한 와룽 인도네시아(Warung indonesia)를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실버이주민농장’을 계획하고 있다. 퇴직한 자본가들이 투자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풍부한 자원과 좋은 환경 속에서 이익을 창출하며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계획이다. 현재 인도네시아는 일본, 중국, 미국의 투자가 격렬히 이뤄지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에 의하면 5년 뒤 경제면으로 1위가 중국, 2위가 미국이며 한국이 6위, 인도네시아가 7위로 급부상 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박 대표도 이러한 비전을 내다보고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고 있으며 ‘실버이주민농장’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는 약 1억 원의 투자를 통해 생태계가 순환하는 구조의 대규모 농장을 설립하여 연 1억 5,000만 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구상중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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