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고통

  • 입력 2012.12.24 14:05
  • 기자명 김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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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통


“인간의 척도는 불행을 견뎌내는 자세에 있다” -풀루타르크-

“이 세상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 헛되다는 것 외에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김인석|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 교수

◆고통의 의미
프랑클의 로고테라피 원리에서 가장 인상적이고도 독창적인 사상은 “피할 수 없는 고통과 같은, 아무리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삶의 양상이라 할지라도 역경에 대한 태도에 따라서 인간적인 업적으로 변화”시키고, 인간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겪는 것 밖에는 달리 삶의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는 고통이야말로 삶의 의미 있는 성취의 기회이며, 이 고통을 잘 감내하는 태도를 통하여 올바른 인간성 형성이라는 삶의 목적 자체가 성취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심리신체적인 고통, 충동 및 본능에 대하여 정신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고유한 인간성의 형태들을 형성한다. 인간은 심리신체적인 특성, 조건 및 이것의 결과 등에 의하여 인간성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심리적 및 신체적 현상에 대하여 태도를 취함으로써, 심리신체적인 자기의 수준 위로 솟아올라 새로운 차원을 전개한다. 각 개인은 이 차원에서 자기 고유의 인간성을 형성한다.
이에 대한 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편집증에서 기인하는 망상 속의 적을 용서하는 관대한 인간이 있는가 하면, 똑같은 망상 속에서 적을 살해하는 비정한 인간이 있다. 일란성 쌍둥이 형제 중 한 사람은 유능한 수사관이 되었고, 다른 사람은 지능적인 범죄자가 되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굶주림, 수면부족, 죽음에 대한 위협, 구타 등에서 유래하는 초조감, 공포, 불안, 허기 등을 느끼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남에게 자기의 빵을 주고 위로해 주는 성자가, 어떤 다른 사람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이 되었다.
죄과 및 상실에서 유래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태도가치의 실현을 통하여 내적 충족 및 성장에 도달하게 된다. 50대 후반의 K씨는 소년기에 독실한 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다가 청년기에 들어서 회의에 잠기게 되었다. 세상사에 집착하는 생활을 하다가 50세 초반에 모 성지에서 회심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수십 년간 저지른 죄과에 대하여 그 후 수 년 동안 회한과 뉘우침에 잠겨 고뇌하면서 내적, 도덕적으로 성장하였다.
한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비애라는 고뇌에 시달린다. 이때 그는 비애에 잠김으로써 어떤 면에서는 잃어버린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객관적 시간에서는 잃어버린 사랑과 비애의 대상이, 살아있는 삶의 경험적 시간에서는 비애를 통하여 보존되어 있다.
필자가 아는 모 씨는 수 년 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노인요양원의 건물 앞에서 기도를 드린다. 그는 기도를 드리면서 부친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던 죄과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환에 잠기는 동시에 고인에 대한 비애의 시간을 보낸다.
이로써 모씨는 회한과 비애의 의미를 충족시킨다. 그는 회한함으로써 자신이 죄라고 생각하는 행위에서 몸을 돌려 그런 행위를 정신적, 도덕적 차원에서 되풀이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살아계신 어머니를 내 집에서 임종 시까지 모신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록 모씨는 선친에 대한 죄를 자기에게서 지울 수는 없을지라도, 죄를 지은 자인 모 씨 자신은 도덕적 갱생에 의하여 자신을 넘어서 고양된다. 
창조 가치 및 경험 가치를 실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고도 불가피한 역경을 올바른 태도를 통하여 하나의 성취로 변형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일상적인 직업생활과 결혼생활에서 외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 보다 ‘성공’ 면에서 더 높은 가치를 경험한다. 그들은 열악한 생물적, 심리적 및 사회적 운명과 조건에서 기인하는 극심한 고통을 올바르고도 높은 자세, 즉 “용감하고 위엄이 있으며, 비이기적인” 태도로 참아내어 그 고통 자체를 삶의 업적으로 변형시킨 사람들이다. 그들은 올바르고 깊은 의미를 주는 태도에 의하여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 즉 참된 극기에 의하여 인간 승리를 이룩한 사람들이다.
프랑클이 전개한 고통의 의미에 대한 탐구 및 태도 가치론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성공을 위하여 투쟁한다. 심신의 탈진에 이르기까지 성공을 과도하게 추구한다. 왜 성공하려고 하는가? 남부럽지 않은 행복과 쾌락을 누리기 위해서다. 이 쾌락과 행복 추구에의 경향이 공격적 사이버 게임, 마약 및 성적 탐닉 등으로 인간 자체가 파괴될 정도로 과도성을 띄고 있다.
쾌락 추구의 가치추세에 따라서 각종 문화적 도구들인 매스 미디어의 광고내용, 사상,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마땅히 행복과 쾌락을 누려야 하며, 고통을 느끼는 것은 세상과 사회에서 불행해지고 낙오되는 징후라고 강조한다. 이런 가치관이 주입된, 불행과 고통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이며 낙오자라는 생각 때문에 더 불행해 지고 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로고테라피는 창조가치론과 경험가치론을 통하여 일하는 기쁨과 삶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키기를 시도한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라고 가르친다. 제거할 수 있는 고통은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고통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생물학적, 심리학적, 정신학적(noogenic)조건이라면 이 조건을 바꿈으로써 고통을 제거시키고 감소시키는 것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의미 있는 창조적 기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운명으로서의 고통,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마지막 운명의 벽에 처해 졌을 때 삶에서의 패배자라고 자인하고 자신의 불행에 한탄하고 절망에 자신을 체념적으로 맡길 것인가?
프랑클과 로고테라피의 원리 및 치료의 진정한 진수는 고뇌하는 인간이 고통의 운명을 더 이상 바꿀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에 고통으로 부터 도피하려하지 않고 고통에 직면하여 이를 용감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의 운명을 자기 고유의 인생 업적 및 성취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데에 있다.
불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및 여타의 이유로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은 로고테라피의 가르침을 통하여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자랑, 보람, 고귀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최후를 평온하게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에 의미가 있음을 아는 순간 어떤 면에서는 고통이 더 이상 고통이 될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듯이, 우리의 고통에 의미가 없다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즉 고통에 숨겨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충족시키면 더 이상 고통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로고테라피에 있어서 인생의 비극적 사실 및 양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비극적 양상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가르침을 통하여-로고테라피는 진실된 면에서 현실적, 비극적, 낙관주의라고 규정될 수 있다.
현대 정신의학의 참된 시조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스피노자는 과도한 욕망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추동되는 인간을 병적인 인간이라고 파악했다. 심리신체적으로 폐쇄된 차원에서 움직이는 인간은 프랑클이 통찰한 바에 따르면 실존적 공허에 빠져있는 인간이다.
이들의 주된 정신적 특성은 비극적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하려고 하며, 비극적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수동적 비관주의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일수록 임종의 자리에서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 이런 인간은 삶에는 무한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 이런 면에서 근원적으로는 허무주의자이다.
로고테라피는 비관주의적 허무주의를 근원에서 극복할 수 있는 근인적 인간성 치료이다. 이런 면에서 현대의 정신적 상황에서 기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은 인문적 원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사진설명>
미국 사진작가 도로시아 랭의 <이주민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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