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이종 시인의 한국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

  • 입력 2012.11.29 16:14
  • 기자명 홍이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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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종 시인의 한국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책을 가까이 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성공할 확률이 높고 문명과 문화를 창조하는 인간으로서 더 차원 높은 품위와 교양을 쌓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책은 한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한 차원 높게 고양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베스트셀러와 여러 세대를 지나며 읽히는 밀리언셀러는 한 국가와 민족의 성숙을 견인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본지는 한국의 근?현대를 움직인 100권의 책을 선정, 그 의미와 가치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註)

19_많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은 대중교양지
파인 김동환의 <삼천리>(1929)


1925년 근대 최초의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으로 새로운 시가를 개척한 파인 김동환은 ‘북선일보’, ‘동아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들의 기자생활 후 1929년 실용적이며 현실참여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 준 잡지 <삼천리>를 창간, 일제의 검열과 탄압에 쓰러진 우리 언론을 다시 세우려는 노력을 보였다.
<삼천리> 창간호는 돈의 효용가치와 사용법을 화두로 작가의 상상력을 활용한 즉물적인 편집을 통해 허언의 ‘세계 일주기행’, 문일평의 ‘백제 의자왕의 최후’, 김두백의 ‘제주도 해녀’, 정인익의 ‘사찰의 비구니’, 홍명희의 자서전 등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작품들이 게재됐다. 필자는 권동진, 허언, 이상협, 한기악, 최규동, 정종명, 한용운, 이기영, 심훈, 염상섭, 나운규, 나혜석 등 당대 지식인들로 구성됐다.
이념을 넘어선 근대 잡지출판의 모범적인 기획을 보여준 <삼천리>는 자신의 생각과 학문을 발표할 수 있는 교양지로서 많은 지식인들과 국민들의 벗이 된 잡지다. <삼천리>를 통해 보여준 현실감 있는 당시의 생활상과 민족주의적인 색채는 나혜석의 조선 최초의 ‘유럽여행기’와 ‘이혼고백서’ 같은 기획은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상 하에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기획이었다.
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춤의 세밀한 조명, 영화제작자 나운규의 ‘아리랑’ 소묘, 베를린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에 대한 소개와 홍명희의 <임꺽정>, 이광수의 <단종애사>, 최상덕의 <정화의 사생활> 등을 실어 큰 화제를 얻기도 했다.
<삼천리>는 김동환의 감각적인 기획으로 대중적인 재미와 진기한 이야기를 다량 실었다. 김동환은 당시 일제의 압박에 자신의 신념과 행동을 이 잡지에 반영시켰는데 특히 여성주의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여성과 관련한 기사를 많이 게재해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여성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조선근대문학선집>을 비롯해 <신문학전집>, <반도의 인물>, <이광수전집>, <조선명작선집> 등을 기획, 출판하기도 했고 <삼천리문학>과 교양지 <만국부인> 등의 월간 잡지도 창간했다. 그 외에 시인으로서도 서사시 ‘국경의 밤’ 외에 ‘산 너머 남촌에는’, ‘봄이 오면’, ‘북청물장수’ 등 주옥같은 작품을 다수 발표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잡지 <삼천리>는 독자들이 읽기 쉽게 편집돼 대중의 사랑을 크게 받았으며 1948년 속간까지 이어져 국민 다수의 친근한 벗이 된, 근현대 잡지 출판의 표본으로서 자리매김했다.


20_ ‘순수문학’의 꽃을 피우다
<시문학>(1930)


시는 인류가 시작된 이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짧고 함축적인 언어로, 때로는 긴 문장으로 표현한 문학 장르다. 동양에서의 시의 원류는 중국의 <시경>(기원전 827년)으로부터 시작됐으며 서양은 고대의 <길가메시 이야기>(기원전 1300년 경)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시와 풍류를 즐겼던 민족이었다. 고조선과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시가의 꽃을 피웠고 유학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에 와서 정형적 율시 시가가 절정을 이뤘다.
현대 시의 언어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훈민정음’을 백성들이 읽고 쓰기 시작한 이루 약 500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 시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1930년에 창간된 <시문학>은 시 동인지로 격월로 발간됐던 시전문지로 세 차례 발간 후 종간됐다. 1930년대는 일제의 탄압과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풍조가 흥했던 시기로 <시문학>은 당시 언어의 아름다움을 통해 순수문학을 지향, 현대시가 출발하게 된 토대를 만들었다.
창간동인은 박용철을 비롯해 김영랑,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신석정, 김현구 등이다. 이들은 정치적 사상성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과 삶을 언어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중요한 시의 중심으로 선택해 전통적인 조선시가의 계승을 위해 노력했다.
시 동인지 <시문학>의 탄생은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종교, 풍속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의 전통적인 문화와 풍속을 사랑하고 미래를 담으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 김영랑의 ‘언덕에 바로 누워’, 정지용의 ‘바다’, 신석정의 ‘너는 비둘기를 부러워하더구나’, 정인보의 번역시 ‘목란시’ 등 다수의 작품이 이 잡지를 통해 소개됐다.
<시문학>을 통한 시문학파의 출발은 모더니즘과 다다이즘, 참여시 등 많은 유파로 갈라져 나갔으며 이는 당시 우리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세계 변방에 있던 조선의 문학을 수준 있는 문학의 위치로 옮겨다 놓았다. 
시의 역사를 볼 때 명시의 탄생은 국가의 자존감과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다. 1930년 출발한 <시문학>의 시문학파는 후일 ‘청록파’ 시인들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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