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고통

김인석l승인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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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통
김인석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 교수
 

“인간의 척도는 불행을 견뎌내는 자세에 있다”   -풀루타르크-
“이 세상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괴로움이 헛되다는 것 외에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없다” 
   -도스토예스키-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고통들을 겪어야 한다. 고통은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삶의 경험을 구성하는 데에 불가결한 요소이다. 대개 사람들은 즐거움 및 행복을 경험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이유를 이루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고통이 자기 삶의 이유나 의미를 이루냐는 물음을 받으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입을 다문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런 운명 앞에서 좌절하거나 외면하고 회피하는 데에 급급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과연 고통은 삶의 이유 및 목적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전적으로 배제되어야 할 부정적인 무엇이기만 한 것인가? 아니면 고통에는 삶의 긍정적이고도 의미 있는 측면이  내재하여 있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한 숙고는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수많은 비참과 불행에는 각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스런 경험들에 대한 무의미한 반응 및 태도를 취함으로써 발생되는 측면이 다분히 있는바, 고통의 의미 문제를 심도 깊게 성찰함으로써 비참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모종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에밀 프랑클은 인간 삶의 의미 및 고통의 의미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성과를 창출하였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2년 반 동안 나치가 운영한 강제 수용소 수감 생활을 마치고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정신병 치료, 연구 및 강의 활동을 재개하였다.
프랑클은 강제수용소 생활을 통하여 삶에 무한한 의미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강제수용소 생활과 같은, 아무리 혹독한 고통의 체험 속에서도 의미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네 곳의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수용소에 강제로 입소되기 직전에 자신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확립된 로고테라피의 원리가 검증되고 다듬어지는 임상현장과 같은 것이었다. 전후에 프랑클은 광범위한 연구 및 치료 활동을 통하여 로고테라피 원리들을 체계화시키고 치료기술을 탄탄한 이론적 토대 위에서 확립시키는 데에 착수하였다. 로고테라피의 기본원리는 대전 직후 오스트리아에서 초판이 발행된 그의 강제수용소 생활 체험을 심리학자의 관점에서 기술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한 심리학자의 강제 수용소 체험’(1946)을 통하여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고 반향을 일으켰다.
프랑클은 인간성의 가장 고유한 자원에 관한 의미이론(태도가치론) 및 인간 삶의 가치에 있어서 높고 낮음의 차원을 규명하는 ‘차원적 인간학’ 등을 통해 치료 원리를 뒷받침한다. 이를 위해 프랑클은 하이데거, 쉘러, 니콜라이 하르트만, 도스토예스키, 후설, 겔젠, 야스퍼스 등 인문사상가들을 원용한다. 이런 연관에서 로고테라피는 병고에 시달리는 인간 존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는 정신치료인 동시에 나아가서 고통 속에서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위안을 주는 인문학적 원리를 체계화한 인문치료라고 규정될 수 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원리 

로고테라피의 기본 원리는 의지의 자유, 의미에의 의지, 삶의 의미라는 세 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개념들은 인간 개념의 근간을 이룬다. 프랑클은 로고테라피의 이론을 인간 삶의 경험, ‘인간 현상’에 대하여 선입견 없는 관찰을 지향하는 현상학적 방법과 연계시킨다. 이런 연관에서 로고테라피는 공허한 이론적 구성이 아니라, 현실 경험 자체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의지의 자유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무한한 자유가 아니다. 로고테라피의 원리를 이루는 의지의 자유는 유한한 인간 존재의 의지의 자유를 뜻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및 심리학적 제약을 받고 있는 존재이며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체와 심리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는 “아무런 제약도 없는 자유라기보다 어떠한 제약이 앞에 놓인다고 할지라도 그 제약과 맞서는” 자유이다. 인간은 신체적, 심리적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신체와 심리를 결정하는 조건들에 자유롭게 맞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유가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은 자기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의 덕택으로 최악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조건 및 이것의 결과들에 의하여 형성된 자기에 맞서는 태도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프랑클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정신학적(noologisch)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학적 차원은 우리가 자기의 신체적-심리적 상태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정신(Geist)의 독특한 능력이 발휘되는 차원이다. 프랑클에 있어서 인간 의지의 자유는 “그 자신이 주어진 조건에 굴복할 것이냐, 아니면 용감히 맞설 것이냐”를 결정하는 자유이다. 이 의지적인 태도선택은 자기가 어떠한 신체-심리적으로 악조건 및 제약 하에 처해있고 규정되어 있더라도 결코 완전히 조건지워지고 결정되지 않는 인간 특유의 능력이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조건들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건들이 인간의 결정에 지배당한다.”
인간은 자기로부터 거리를 두는 능력을 통하여 심리신체적인 결핍, 충동, 욕구 등의 상태들에 맞서서 자유로운 자기 형성의 공간에 진입 가능하게 된다. 이 신체적-심리적 자기에 대하여 태도를 취하는 정신의 능력이 우리를 비로소 인간답게 만든다. 프랑클은 이런 연관에서 이런 인간의 특이한 자유능력을 무시하는 - 심리신체적으로 폐쇄된 차원으로 인간을 환원하는 - ‘범결정주의’를 “그릇되고 위험한 가설”이라고 비판한다.
의미에의 의지란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충족시키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추구이다. 의미에의 의지는 인간의 근본동기이다. 프랑클은 우리가 생활 장면에 있어서 성공과 쾌락을 과대평가하고, 실패와 고뇌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성공과 지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1차적 동기와 목적인 의미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2차적으로 필요한 수단이다.
신경증적 인간에게 있어서 과장되는 지위와 쾌락, 성공과 행복은 좌절된 의미 충족을 대치하기 위한 대용품일 뿐이다. 프랑클은 나치 강제 수용소 생활 중 생존을 포기한 수감자가 침상에 누운 채 주머니 깊숙이 숨겨둔 담배 개피를 아낌없이 빠는 행위, 진실한 연애에서 좌절한 한 청년이 매춘적 성적 탐닉(날뛰는 리비도)에 빠져든 사례 등을 제시한다. 이것들은 어떤 생활 장면에서 의미에의 의지가 좌절된 인간이 결여된 의미를 대체하는 쾌락에의 의지에 의하여 추동되는 생활 장면을 보여준다.   
특별히 실존적 공허에 빠진 인간뿐만 아니라 대개 인간은 자기 체험에 있어서 쾌락과 불쾌의 정도에 따라 삶의 의미의 유무를 가늠하는 - 생활 장면에 있어서 우매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 경향이 있다. 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만 세상에 존재하는 게 아니며, 또한 쾌락이 없다고 하여 삶에서 의미가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는 무한한 의미가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언제나 이미 의미를 추구하고 있으며, 삶의 어떤 상황과 순간에서도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충족시킬 수 있다. 삶은 상황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상황들은 현실성과 가능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마주 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성을 배경으로 가능성의 형태를 지각한다. 이 가능성은 현실을 더 낫게 변화시킬 기회이다. 이 가능성(기회)이 의미(Logos)이다. 프랑클은 매 상황에 내재하는 의미의 ‘요구하는 특성’에 주목시킨다. 우리는 현실을 더 낫게 변화시키라고, 혹은 현실상황을 도저히 변화시킬 수가 없을 때 현실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변화시키라고 상황의 의미가 발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인간은 어떻게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음을 발견하고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삶의 요구에 대하여 책임지는 행동과 태도로 응답을 할 때에 가능하다. 프랑클은 각 개인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행동과 처신을 자신의 의미이론-창조가치, 경험가치, 태도가치의 이론에서 제시한다.
첫째는 일, 작품창조, 자녀양육, 타인을 돌봄 등을 통해 이 세상에 ‘그가 기여’하는 삶의 수행을 통해, 둘째는 사람, 자연, 문화 등을 각별한 의미로 만난다는 측면에서 세상으로부터 ‘그가 얻는’ 경험을 통해, 셋째는 외적인 상황을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으며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자기가 그 상황에 대하여 취해야 할 태도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용기 있는 수용 및 품위 있는 인내 등의 긍정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인간은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충족시킬 수 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김인석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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