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례문화 선두주자

  • 입력 2012.11.01 18:14
  • 기자명 이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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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장례문화 선두주자
조창대 | (주)효본 장례의전 대표


늘 곁에 있던 이를 떠나보내는 일 만큼 슬픈 일이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례는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의식을 치르면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고인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최근에는 복잡한 장례예절과 함께 약해지는 친인척간의 유대관계로 상조서비스 이용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또한 갑작스레 상을 당한 경우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자 상조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상조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현재 상조회에 가입한 회원 수는 350만 명에 육박하고 시장규모는 3조원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상조서비스산업의 시장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피해사례 속출하고 있다. 가입한 상조회사의 부도로 납입한 금액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장의용품을 비싼 값에 지불하는 경우도 있다. 조창대 효본 장례의전 대표는 고객이 신뢰하고 만족할 수 있는 장례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효본 장례의전을 설립했다. 그로부터 바람직한 장례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고객 입장에 서는 ‘역지사지’ 마음


1960년대 당시 대다수 한국 국민은 생활고에 시달렸을 뿐 아니라 위생 상태는 형편없었다. 특히 말라리아, 한센병, 결핵과 같은 각 종 질병은 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했다. 보건환경이 열악한 한국을 돕고자 국제보건기구는 의료전문가를 파견하고 보건소 개설을 지원했다. 보건인력이 시급했던 당시 조창대 대표는 1968년 임상병리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보건소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충남 홍성보건소에서 도민들의 질병 예방에 힘쓰며 바쁜 나날을 보내던 그는 1967년, 늦은 나이에 군 입대를 했다. 군병원에 배치된 그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군인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성실히 군복무를 하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평소 존경하며 따르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한 채 군대에서 비보를 들었다. 장남이던 조 대표는 실질적 가장이 돼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군 제대 후 조 대표는 어려운 가정형편상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상경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그는 서울 중구 중부시장에서 기름장사, 고추장사를 시작하며 서비스업의 노하우를 축적했다. 낯선 서울에 올라와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고객과 판매자 모두 윈윈하는 사업적 수완을 발휘했다.
1996년에는 충무로에 ‘충무로소갈비살’ 식당을 개업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가 운영 중인 식당의 주 메뉴인 소갈비살 이외에도 직접 만든 청국장과 도토리묵의 맛을 보기위해 단골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 대표는 40년 넘게 서비스업을 운영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비스정신이 몸에 뱄다. 때문에 그의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맛좋은 음식과 질 높은 서비스에 매우 흡족해한다.

그는 지역사회에도 관심이 많아 중구지역 충청향우회장과 광희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고객뿐 아니라 지역주민에게도 봉사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장이나 지역단체 모임에서 참모역할을 했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식당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전통주, 사찰음식, 풍수지리 등 전문지식을 습득했다. 풍수지리학에 대한 식견을 넓히면서 장례학에도 자연스레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가 결정적으로 상조서비스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 육촌 매형의 상을 당한 후 시작됐다.
충북괴산으로 문상을 간 그는 장례의식을 치르는 것을 도왔다. 당시 1300만 원가량의 조의금이 모였는데도 장례비용을 충당하는데 모자랐다. 장례대행업체의 부당함을 경험하면서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상조서비스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보다 전문적인 상조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에서 장례비지니스 과정을 등록해 장례, 제례, 심리상담 치료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이후 장례지도사, 상장례지도사, 심리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전문성을 더했다. 


신뢰와 만족을 주는 회사

 조 대표는 기존 상조업체들의 운영상 문제점을 지적했다. 기존 상조회사는 선불식 할부거래로 결제하기 때문에 회사가 부실경영이나 기타 사유로 존립하지 못하는 경우 소비자들은 납입한 금액을 보상받을 방법이 없다. 일부 상조회사가 고객의 돈을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상조회사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늘었다.
뒤늦게 상조법이 제정되어 상조회사의 재무건전성을 규제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을 위한 보호장치가 없다.
이처럼 목돈이 부담스러워 선불제 상조보험이나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미리 가입하지만 소비자는 가입한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하는 단점이 있다. 그는  상조회사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후불제로 운영한다. 별도의 선납금 없이 전화 한통으로 행사의례를 요청하고 장례식장을 떠날 때 경비를 지불함으로써 안심하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터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이 원하는 바를 만족시키고자 한다. 그는 허례허식의 장례서비스보다는 유족들이 고인에게 백행의 근본인 효를 다할 수 있게끔 형편에 맞는 장례행사물품과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 입장을 생각하는 서비스 정신은 효본 장례의전의 약관에서도 잘 드러난다.
효본 장례의전 약관에 따르면 회사가 회원의 행사 요청시 정당한 사유 없이 2시간 이상 지체되어 행사제공을 못하는 경우 약정금을 배상한다. 또한 효본 직원의 실수로 객장 내 손님 또는 상주와 분쟁이 생겨 상주의 품격에 손상을 초래하는 경우 50만원을 배상한다.
그는 상조회사가 오로지 이윤추구를 위해 비싼 장례용품을 권유하는 행태로 많은 소비자들이 비싼 장례용품이 고인에 대한 예라고 생각하는데 “장례의식은 개인마다 종교관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시욕을 줄이고 자신의 형편에 맞는 장례의식을 치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의 이러한 철칙은 서비스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고객들에게 화장하는 경우 수의 대신 평소 입던 좋은 한복을 입혀 드릴 것을 권유하고 장지까지 모셔가는 관 역시 비싼지 않은 것을 사용할 것을 추천한다. 또한 유족이 많은 경우 검은 정장을 대여하기보다는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을 것을 권유한다.

조 대표는 장례예절뿐 아니라 제사예절에도 관심이 많아 책을 쓰는 열정을 보였다. 과거 집안 제사를 지내면서 과일과 생선 놓는 위치가 제각각인 것을 보고 제사의 순서와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제례범절’을 썼다. 책자에는 제사를 지내는데 갖추어야 할 예절과 규칙을 알기 쉽게 설명했으며 이외에 현대인들이 명확히 알지 못하는 축문, 촌수관계, 경조문 서식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는 현대인들이 막연한 의무감을 가지고 제사를 지낼 것이 아니라 모처럼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거나 나가서 외식을 하는 등 이벤트를 연출하여 선대 어른신들의 덕행, 덕담 등 본받을만한 것들을 들려주고 씨족에 대한 내력, 가문의 당부 등을 이야기 해주며 제사음식 장만으로 스트레스 받을 식구들이 없이 흥겨운 화합의 장으로 만들어 또 만나고 싶은 가족 관계로 승화, 발전시키는 문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공자는 “상례는 형식을 차리는 것보다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자의 말씀을 되새겨 보면 현재 우리 장례문화가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는 형식적인 면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특히 고인의 죽음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일부 상조회사의 행태로 우리의 장례문화는 얼룩졌다.
올바른 장례예절을 바탕으로 소비자가 신뢰하고 만족할 수 있는 상조서비스를 제공하는 조창대 대표.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는 그의 경영철학을 토대로 바람직한 장례문화를 선도하는 상조회사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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