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붓'을 사랑해 온 장인

  • 입력 2012.11.01 16:29
  • 기자명 김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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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붓'을 사랑해 온 장인
김진태 | 호산‘붓’박물관 관장


14세의 어린 소년이 붓글씨를 배우러 갔다가 홀딱 반해버린 모필 제작. 김진태 관장은 50여 년 동안 열정을 가지고 붓을 제작해왔다. 이제는 한국 붓의 역사와 전통의 보존, 새로운 발전의 더 큰 꿈을 가지고 남은 평생을 바쳐 노력하려 한다.

김여진 기자 evalasting56@epeopletoday.com
 
한눈에 반하다

47년 동안 붓을 만들어 왔다는 김진태 관장은 14세의 어린 나이에 붓글씨를 배울 스승을 소개받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모필 제작에 반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스승의 신임을 얻어 제자가 되기 위해 10년 동안 무임으로 일을 했던 그는 스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스스로 제작해 본 것이 최초의 모필 제작이었다고 한다. 그 후 그러한 열정에 감복한 스승의 휘하에서 전수를 받을 수 있었다.
김관장은 수년간 한국의 것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다양한 붓 제작 기법을 익혔다. 또한 모필 역사를 알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으나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고, 역사적 사료 또한 많이 부족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7전 8기’라 했던가? 김진태 관장의 삶이 그러했다. 대한민국에서 장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인으로서 우리의 전통을 보존 계승하며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삶을 꿈꾸며 노력하지만,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의 벽은 그를 고뇌하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실용성 있는, 사랑받는 붓을 만들고 싶어 노력했고, 고뇌했다. 밀려드는 값싼 수입 붓들, 줄어드는 수요로 힘든 시절을 견디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사업도 했었다.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한 사회와 국가의 노력이 좀 더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김관장 뿐만 아니라 많은 제작 장인들이 생활고에 힘들어 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그 또한 붓 제작을 일곱 차례나 그만뒀었다.
장인의 길에 회의를 느끼고 고민 중일 때 일본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 곳에서 한 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붓(筆)>이라는 책이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붓의 역사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을 텐데, 그 책에는 한국의 붓의 역사에 관한 내용이 축소, 왜곡되어 있었다. 붓을 만드는 장인으로서 한국의 붓이 중국, 일본의 그것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분함마저 느꼈다. 김진태 관장은 이 일을 계기로 한국의 붓에 대한 연구에 더 매진 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 붓의 명맥을 잇고 역사를 보존하는 일에 사명감을 갖고 임하게 된 것이다.


끝없는 도전
처음 박물관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문방사우’(지필묵연)를 다 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때문이었다. 중국과 일본을 다니며 붓의 제작법을 익히고, 역사를 익히는 동안 일본의 많은 개인박물관, 중국의 붓 박물관, 혹은 문방사우 관련 박물관을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민속 박물관 등에 생활 물품 중의 하나로 잠깐 소개될 뿐 전문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붓을 소개하고 종이와, 먹, 벼루를 다루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그리하여 붓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화, 서예 작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재료 공급과 더불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 역사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중국과 일본의 것을 포함해 붓, 벼루, 먹 등 1,000여점의 다양한 작품들을 수집하기에 이르렀다.
호산‘붓’박물관은 2011년 10월에 개관했다. 현재 비영리목적으로 운영 중이며 김진태 관장이 제작한 작품을 판매, 그 수익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비록 현재는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공간이고, 더 갖추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실정이지만 우리 붓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며 그가 쌓아온 연륜과 경험 또한 나누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다양한 붓과 벼루 등을 보여주고 작품 활동에 필요한 재료를 공급하는 것과 현재까지는 홍보가 미흡해 일반관객이 많지 않은 실정이지만 간혹 찾아와 그의 작품과 수집품을 감상하고 가는 이들이 있어 그는 보람된다고 말한다.
우리 붓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일하는 그이지만 아쉬움에 힘이 들 때도 있다. 그는 호산‘붓’박물관을 민간박물관으로 등록해 더욱 발전시키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간 박물관 허가원칙이 복잡하며, 박물관 운영을 위해서 관련 학예사 등 요구하는 사항이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붓 제작, 붓의 역사와 관련된 학예사를 찾을 수는 없다.
예술, 특히 우리나라의 전승 문화에 대한 현실을 참작 해 문화의 보존, 관리에 현실적인 기준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김관장은 붓에만 미쳐 산지 벌써 반백년. 배움이 짧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지만, 한평생 붓만 만들었던 그가 그러한 자격 요건들을 모두 채워 허가를 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 아쉬움이 크다고 말한다.

‘모필 제작’, 그것은 나의 천직
김진태 관장은 호산‘붓’박물관을 더욱 발전시켜 문방사우 박물관 및 미술관으로 커나가길 소망한다. 현재의 소장품과 앞으로 더 좋은 사료들을 수집해 정리, 정비하고 우리의 것을 알리며 중국과 일본의 문방사우를 비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47년의 세월 붓만 보며 살아온 그는 아직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하고 싶다. 그냥 보기에 ‘붓’은 한가지의 형태이지만 서화, 서예 작가의 수요, 개개인의 요구 또한 다양하기에 그에 맞는 붓을 제작하고 싶다. 더불어 아름답고 새로운 붓을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김 관장은 고백한다. 실제로 그는 코끼리 상아를 깎아 만든 구슬, 칠보구슬 등을 엮어 붓대를 만들고 새롭게 디자인 해보기도 했고 이는 M방송국의 사극에 나온 적도 있다. 또한 모양이 특이한 대나무와 칡 줄기 등으로 붓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붓 끝에 삼색의 실을 감아 붓에 색을 더하고 그가 제작한 모든 붓의 이름을 한글화 하는 것을 목표로 노력 중이기도 하다.
아직도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김진태 관장의 노력이 아름답게 결실 맺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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