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헤드헌터,
서치펌(search firm)의 황무지를 개간하다.
김종환 얼라이드경영컨설팅 회장.
현준용 기자 dk_ryong@peopletoday.com
사람을 움직이는 기업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의 여파로 실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수면위로 드러났으며 현재에는 점차 활동영역이 세분화 되어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심지어 공무원 채용까지 헤드헌터에게 의뢰하고 있다.
‘얼라이드경영컨설팅’은 이런 서치펌 중에서도 국내에 도입되는 초기에 설립되어 오늘날 헤트헌터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명문기업이다. ‘얼라이드경영컨설팅’은 주로 금융시장, 제약․ 의료시장, IT시장, 그리고 화장품, 식음료 같은 폭 넓은 소비시장의 고위직이나 간부들을 스카우트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은 주로 외국계 80%, 국내 대기업이 20%를 차지해 외국계의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며 현재도 고객과 지원자의 접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김 회장은 “서치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점은, 직업소개소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는 것”이라며 고객의 입장을 강조했다. 기존의 직업소개소는 지원자들의 스펙, 다시 말해 능력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그 수준에 맞거나 혹은 그 이상의 일자리를 안겨주는 시스템이었다면 서치펌은 고객(client)의 요구사항에 따라 중요한 직책의 자리에 걸 맞는 인재를 찾아 스카우트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지원자(candidate)의 능력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며 고객의 요구사항에 있어서 그 직책의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을지 전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일이다.
때문에 헤드헌터는 모든 분야에 걸쳐 폭 넓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외국계 기업이 많아 외국어는 능통하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고객과 지원자 모두의 개인정보를 지켜 줄 수 있는 보안성이 뛰어나야 한다.
‘헤드헌터’ 개념이 생소해
1986년 국제상사 미주 본부장으로 있던 김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후 3년간 동아무역 무역부장으로 일했다. 하지만 무역업도 좀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인내해야했다. 그러던 중 1989년, 미국의 얼라이드컨설팅을 알게 되어 제휴를 맺고 한국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 ‘헤드헌터’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생소했기 때문에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의미를 몰랐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국내의 정서에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헤드헌팅이 자연스레 이루어져 왔다”며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유럽에서는 헤드헌터의 권유에 따라 직장을 이직했는데, 그게 같은 건물 10층에서 15층으로 옮긴 일도 있었어요. 유럽 사람들은 다가가서 새 명함도 나눠주고 옛날 직장동료들은 성공했다면서 축하해줘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옛날 직장 동료들을 만나면 피하곤 하잖아요.”라며 초창기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나타냈다.
행복한 직업, “앞으로 5년은 현역으로 발품을 팔 것”
평소 사람과 접촉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김 회장에게 있어서 헤드헌터는 이른 바, ‘천직’이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의 요구수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원자의 능력을 철저히 파악한 후 능력 외의 조건 또한 합당한지 고려해 두 사람 또는 한 사람과 기업이 만났을 때 ‘win win'할 수 있도록 다리역할을 하는 일이기 때문에 깊고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 헤드헌터다. 때문에 김 회장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에게 다가가 서로를 연결해 주는 이 직업이 매우 행복하다고 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서치펌 중에서 얼라이드경영컨설팅 배출한 헤드헌터들이 다소 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헤드헌터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얼라이드경영컨설팅을 함께 이끌어 나가고, 자신이 퇴직한 이후에도 자리를 이어줄 수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이 향후 목표라고 한다. “그래도 앞으로 5년은 제가 현역으로 발품을 팔거에요”라며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