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따뜻함을 나누는 참된 봉사인

  • 입력 2012.11.01 14:46
  • 기자명 이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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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따뜻함을 나누는 참된 봉사인
태산유통 김태산

지독히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겪으며 누구보다 배고픔의 서러움을 뼈져리게 느끼는 김태산 대표에게 가난한 이들이 아픔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그는 자신의 월급의 반 이상을 불우이웃에 쓰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경로잔치, 결식아동, 불우이웃 돕기를 직접 찾아다니며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가난했던 유년시절과 방황

경기도 인천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 대표는 끼니를 때우기도 힘든 가정형편상 대부도로 이사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친척집에 얹혀살아야 했다. 쉽지 않은 현실이었지만 그는 낮에는 가방공장 보조생활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후 껌팔이, 아이스케키 장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불우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10대 시절을 보낸 뒤 군에 입대했다. 특전사로 생활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제대 후 용산시장에서 새출발을 시작했다. 당시 용산시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야채시장이었고 그에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게 만든 기회의 장소였다. 하지만 그에게 성공보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다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날 부유층 고객의 배달을 하다 고기 한짝을 얻을수 있었다. 그는 지인의 포장마차에서 고기국을 부탁해 당시 용산역 주변에 가득했던 노숙자, 넝마주이 분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당시만 해도 쌀쌀한 겨울 날씨에 동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호의는 큰 온정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아 그 후 봉급 절반을 털어 일주일에 두 번씩 노숙자와 넝마주이를 위한 온정을 베풀기 시작했다.
용산시장이 가락시장으로 옮기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태산유통을 설립했다. 특수품목의 활성화를 위해 주로 무, 배추, 감자, 양파를 취급했으며 점포가 없는 중매인들을 위해 조합을 만들어 특수품목 조합장을 역임하며 중매인들의 소통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사업을 하며 상품성 없는 물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그 물건들을 싸게 구입해 불우이웃과 보육원에 보내기로 결심했으며 특수품목 뿐 아니라 과일과 각종 야채들을 구입해 봉사하기 시작했다.
조금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상품성이 사라져버린 농산물들을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누구보다 가난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농산물을 후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특히 결식아동을 후원하는 일에 열성적이다. 그가 돌본 가족만 해도 30가족이 넘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든 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아이들을 보살폈다는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에게는 친자식이 있었지만, 그는 결식아동들은 더 끌어안아야만 불량청소년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몇몇 아이들이 불량청소년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아이들이 사고를 쳐서 경찰서에 있을때마다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경찰관에게 훈계와 핀잔을 들어야 했지만, 꾹 참고 인내했다. 그리고 그렇기 키웠던 아이들 중 한명은 지금 장성해 검사가 된 아이도 있고 모두 사회의 중요 구성원으로 떳떳하게 살고 있다. 그는 그 과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봉사의 참맛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선도하는데도 앞장섰다. 그러다보니 93년에는 동부지방검찰정에 선도인원으로 들어가 많은 아이들을 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많은 가족들을 돌보고 봉사활동과 선도활동에 자비를 투자하다보니, 부도를 막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그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며, 당시 법대 네 곳에 합격했음에도 딸의 등록금이 없어 못내어 준 이야기를 하며 그는 다시 한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그때의 처절함을 근성으로 이겨냈다. 이를 악물고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열심히 일해 3년 만에 겨우 부도를 막을 수 있었다.

한국을 넘어 거듭날 미래
그는 대부도에서 실버사업을 벌일 계획이고 다문화가정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남은 여생 동안 연해주에서 우리나라만한 땅을 임대해서 세계의 식량난을 대비하는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3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이주해 땅 좋고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곳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는 것은 그의 이상점이다. 그리고 그는 벌써부터 러시아에서 땅을 구매하고 시험재배를 하며 첫발을 내딛었다. 연해주에서 자리를 잡아 한국의 식량난이 왔을 때 도와주고, 또 세계적인 식량난이 있는 가난한 나라에 쌀을 지원해 주는 꿈을 꾸는 그는 세계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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