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전한의 ‘추억 속으로’

  • 입력 2012.11.01 10:30
  • 기자명 조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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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한의 ‘추억 속으로’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진달래. 맥없는 꽃, 우물쭈물 피워 올린 꽃잎, 그 자신 없는 몸짓. 앙상한 가지에 가까스로 몸 달고 기대어 있는 진달래 꽃. 한 번도 예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진달래. 내 고향 울진에선 참꽃이라 불렀다. 산에는 눈이 녹고 참꽃으로 동산이 덮여질 때 참꽃 따먹으러 하루 종일 뛰어다닌 기억이 아스라이 지난다. 꽃 예뻐서 꺾으러 간 것이 아니라 맛있는 꽃잎을 따먹으러 다녔었다. 눈만 뜨면 산으로 뛰어가는 나에게 엄마는 겁을 주었다. “야아야~ 참꽃 밭에 가면 무장공비들이 숨어 있는 기라. 공비들이 와 내려 왔겠노. 니 같은 얼라들 간 빼묵을라꼬 와 있는기라아.” 그러거나 말거나 입술엔 연분홍이 가득 배어들도록 혀끝이 알싸해지도록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네가 술렁거렸다. 아랫집에 세 들어 산 새신랑 새 각시네가 뭔 일이 났나 보다. 여섯 살의 나도 사내였나 보다. 새신랑은 기억 속에 완전히 사라졌지만 도톰한 볼 자욱의 그 곱던 새 각시는 희미한 잔상 속에 여전히 얹혀있다.
새 각시네가 뭔 일이 났거나 말거나 세 살 위의 형이 사온 병아리에 혼이 빠져 있었고 잠자리 몸부림 심하던 누나의 엉덩이에 깔려 압사한 병아리 땜에 난 생애 처음으로 통한의 슬픔이란 걸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해 봄은 또 그렇게 물러갔다.
그리고 나는 새 각시네를 영영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엄마는 화로에 긴 쇠꼬챙이를 달구어서 머리 손질을 하면서(아마도 수동식 머리 고대기였던 것 같다) 옆집 아줌마랑 소곤소곤 얘기했다. 나는 화로 곁에 웅크리고 누워 낮잠에 취해있는데 그 소곤거림이 윙윙거림으로 나를 잠 깨웠다. 지난봄 새 각시네 후일담이었다.
“점심때가 됐는데도 아 갸들이 나오지를 않는 기라. 내사 마아....첨에는 그리 생각했제...이제 신혼이니까아...아무리 신혼이라해도 참말로 너무 하네이....어지간히 해라 싶었제에....그란데도 좀 이상하다 싶었는기라....신경이 씨이데에...하마 나오나 하마 나오나....싶었는데....아...그래가꼬 눈 딱 감고 방문을 확 열어뿌렸다 아이가....하이고 이게 왠일이고....연탄개스 냄새가 확 나오는기라...신접살림 차린지가 얼마나 됐다꼬오....그리 허무하게 갈 수가있는기가.....하이고 참....원통한 일이제................원통한일이제에........그란데에...그란데에 말이다아......그래도 이건 내가 할말이사 아이다 마는....갸들은 그래도 참 그나마 복 받아 간 것 아이가....내사 마아....하이고...갸들 둘이서 발가벗고 둘이 꽉 껴안고 딱 붙어있는기라아....이왕지사 명이 그거까지였으믄 어짤 수 없다 하고, 그나마라도 둘이 빨가벗고....둘이 딱 껴안고 저 세상 같었게니 얼마나 좋은 일이고....그란데에 겨울 다 지나고 이제 날씨도 풀렸는데....참 운도없제....한 겨울 다 지나고 거기 무신 일이고오.....그래도 복 받은기지....빨가벗고 둘이 그렇게 꽈악 껴안고 저 세상같었으 얼매나 좋은 일이고...”
아아...둘이 홀딱 벗고 꽉 껴안은 채 함께 저 세상으로 갔단다. 자는 척 웅크리고 누워서 들을 것 다 들은 아이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랫도리의 그것이 빳빳하게 팽창함을 느꼈다. 아아...이야기를 듣는데 아랫도리가 왜 빳빳해지나?
살아오면서 남녀의 결합장면이야 흔하게 보아왔지만 보지도 않고 그저 잠결에 훔쳐들은 어머니가 들려준 최초의 음란스토리.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아랫집 새 각시네 情死 풍경. 그 험한 삭풍의 울진 겨울 다 보내고 손잡고 참꽃동산에서 나 잡아봐라~~소풍갔어야 마땅할 이제 막 신혼의 새 각시네. 하필이면 그 시즌에 갔을까. 기묘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참꽃의 계절.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의 계절.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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