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자연’의 아름다움을 새하얀 화폭에 담다

  • 입력 2012.09.24 18:09
  • 기자명 이광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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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자연’의 아름다움을 새하얀 화폭에 담다

김순진 작가

70년대 중후반 전성기를 끝으로 한국화는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미술의 한 장르가 되어 대학에서는 서양화에 밀려 한국화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선조들의 옛 문화와 정신을 담고 있는 한국화는 한국 현대 회화의 뿌리라는 점에 그 가치와 잠재적 우수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
서양화에 치우친 현 미술계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며 우리 한국화가 지닌 내적 풍요로움과 우리산하의 외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지금도 김순진 작가는 전국 각지의 명소를 찾
며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선지에 담고 있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역경 속에 빛난 그녀의 ‘열정’


다른 화가와 달리 김순진 작가는 늦은 나이에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림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고된 일상에서도 그림을 그리워하던 그림움과 열정이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녀는 중학교 미술시간에 ‘반 고흐’의 작품을 따라 그리며 마음속으로 반 고흐를 뛰어넘는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또한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담임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는 그녀에게 커다란 힘이 됐다.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미술 특기상을 받으며 고등학교 졸업했지만 당시 아버지를 일찍 여윈 그녀는 가족을 위해 일찌감치 생업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을 아끼던 미술선생님께서 “너는 재능이 많으니 주어진 현실이 힘들더라도 그림은 포기하지 말아라” 라며 격려해주신 말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결코 드로잉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혼 후, 그녀는 자녀를 양육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고 시간을 쪼개 주변의 사물들을 드로잉하며 꿈을 향해 달려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처럼 그림에 대한 꿈을 놓치 않은 그녀에게 뜻하지 않는 기회와 계기가 생겼다.
그녀가 세놓은 건물에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미대생들을 접하며 자연스레 다시 붓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려는 목표로 평생교육원 아동교육학과에 지원해 교육을 이수한 후 아이들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동교육학과에 빈자리가 없었고 우연히 서양학과에서 한 학기 수강을 하지만 밀폐된 공간 속 유화냄새를 풍기는 서양화는 그녀의 체질에 맞지 않았고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 싶은 열망에 한국화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강의에 임했고 시간이 갈수록 한국화에 대한 소질을 발휘했다. 한국화에 푹 빠진 그녀는 아동교육의 길을 접고 본격적인 한국화 화가로서 길을 걷는다.
이후 교내전시회, 그룹전시회에 참가하며 각종 공모전에 입상을 하며 그녀의 재능은 빛을 발휘했다. 최근 그녀의 작품성은 세계 각지에서도 인정받아 네덜란드, 스페인,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초청 전시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겸재 정선’의 정신을 향해


유화로 덧칠을 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서양화와 달리 먹의 번짐을 이용하는 한국화는 운필이 매우 중요하다.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기 때문에 환 획에 정신을 담아 표현해야 한다. “먹을 갈 때면 정신이 맑아지고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획, 한 획 그릴 때마다 속세의 잡념도 사라집니다”라며 한국화의 내적 고요함에 대해 전했다.
처음 한국화를 접했을 때 자신의 느낌들을 먹으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자체를 즐기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나갔고 화폭에 수놓일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며 숱한 밤을 지새웠다.
“같은 동양화라도 중국은 산하가 장대해 그림을 파묵법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는 반면 우리의 자연은 아기자기하면서 아련함을 주는 강한 매력이 있습니다. 또한 서양의 장엄한 풍경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와 같이 나무 수종도 다양하고 산새가 아름다운 곳은 없습니다” 라며 우리나라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는 한국화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작품의 모티브를 위해 전국을 여행 다닌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할 때마다 온 몸의 기운이 충만해지고 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기고 싶은 마음에 들뜹니다”라며 그녀는 가을, 설악산의 주전골의 풍경은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며 꼭 한번 찾아볼 것을 권했다. 그녀의 대표작 역시 설악산 주전골의 절경을 담은 그림이다.
‘겸재가 전국을 여행하고 사생하며 사용한 붓을 묻으면 무덤을 이룬다’는 말처럼 그녀에게도 좋은 그림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겸재 정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환경이 파괴되는 현실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몇 년 뒤 다시와보면 사라져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은 마음을 쓰라리게 합니다”라며 환경파괴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녀는 이런 현실일수록 한국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녀의 그림은 산수화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는 전통적인 수묵기법 외에 나염, 아크릴 , 파라핀 작업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며 오늘날의 감각에 맞는 전통성과 현대성이 만난 한국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준다.
이외에도 그녀는 북인도, 남인도의 한 달간의 인도여행에서 느낀 추억을 그녀만의 느낌으로 표현한 것을 비롯해 산수화로 고정된 한국화의 틀에 벗어나 여러 소재를 작품 속에서 실험하고 있다.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탐구의 유영을 멈추지 않으며 한국화를 대중들에게 폭넓게 알리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한국화에 임하는 그녀의 사명감



그녀는 현재 동료 한국화 작가들, 서예가 등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인사동의 허름하지만 의미 있는 작업실에서 18년간 작업을 했다. 함께 한국화를 지키려는 동료들을 볼 때면 항상 든든한 마음이 들지만 현 상황에 대해 “현재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양화과에 진학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뿐 아니라 일부 대학에서는 한국화과가 폐지되면서 한국화의 명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전한다.
이처럼 현재 한국화의 위기는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환경과 그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한다. 그녀는 그 원인을 급변한 가옥형태에서 찾았다.
예전에는 한옥집이 많아 그 특성상 한국화가 잘 어울리기에 그림의 수요가 많았지만, 요즘은 현대식 건물로 인해 서양화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녀는 한국화야말로 그 특유의 푸근하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어느 곳에서나 잘 어울리며 한국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정서적인 효과가 있는 그림이라며 “한국화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그림의 위대함을 아는 수요층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며 한국화의 재부흥을 바랬다.
1982년 이전까지 한국화는 동양화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화를 동양화로 생각한다. 그녀가 해외에서 전시회를 할 때면 외국인들이 한국화를 차이니스 페인팅이라 부를 때마다 그녀는 한국화를 세계에 더욱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마음속에 다시 새긴다.
또한 동양화에서 한국화로의 개명은 중국 미술로부터 내려온 사대주의를 극복하고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그녀는 개인적인 작품 활동 외에 자신의 그림을 통해 많은 대중들과 소통할 때 작가로서의 행복감을 느끼며 특히 외국의 전시회를 통해 세계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릴 때 매우 큰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그녀의 작품을 감상한 어느 외국인은 그림에 나타난 한국의 풍경에 반해 한국에 꼭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할 정도로 한국화의 깊은 호감을 표했다.
현재 그녀의 작업실에는 문학 작가, 서예가, 서양화가, 주부들을 대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주부들에게 자신의 옛 경험을 살려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자신의 그림세계를 강요하지 않으며 그들만의 개성, 독창성를 존중하고 격려하며 함께 한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 
붓을 들 때 자신만의 행복한 세상이 펼쳐진다는 그녀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며 전통미술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한국화를 통해 한국화가 세계 속에 널리 꽃피우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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