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안의 숨은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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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인상안의 숨은 실체

열대야가 식지 않는 새벽, 뜨거운 바람만 몸에 칭칭 감기는 선풍기 바람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록적인 폭염에 에어컨을 끄면 금세 실내온도가 30도를 훌쩍 넘어갔다. 열대야가 지속된 2주 동안은 에어컨을 끼고 살았고, 그만큼 전기를 많이 썼다. 습관적인 낭비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펑펑 써댄 에어컨 탓에 당장 올 여름 전기요금 폭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매년 5월이 되면 반복되는 뉴스가 있다. “전기요금 너무 싸고 펑펑 쓴다”, “1인당 전기 소비량 선진국보다 많아”, “억눌린 전기 요금에 전기는 펑펑” 초여름에 임박해서 쏟아내는 이런 뉴스는 서민들에게 낭비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함께 콘센트 하나라도 더 뽑아야 한다는 애국심을 강요한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0만 원을 호가하는 에어컨 광고는 끊임없이 서민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면서 정작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서는 선풍기를 이용하라니. 값비싼 에어컨은 장식용인가? 다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절약하고 살기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낭비가 심하다고 하는지 궁금했다.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우리 국민들의 전기사용량이 많다는 논리는 통계의 악의적 왜곡에 불과하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OECD 국가별 1인당 전력소비량(OECD. 2007년 통계)을 보면 미국이 1인당 1만 2417kwh고, 우리나라는 7691kwh로 일본이나 프랑스. 독일 국민들보다 사용하는 전력이 많다. 그러나 이 통계는 국가전체 전기사용량을 인구수로 나눈 통계일 뿐이다. 국가전체 전기사용량에는 산업용이나 일반용도 포함되어 있다.
가정에서 소비하는 1인당 가정용 소비전력량(OECD.2007년 통계)은 미국의 1/4, 일본의 절반에도 미치는 못하는 1088kwh에 불과하다.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가정용 전기사용량 통계는 숨긴 채,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까지 합쳐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력 소비가 많다는 보도는 이제 그만 나왔으며 좋겠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의 79.1%(2011.9월 기준)를 쓰는 산업용과 일반용 전기 사용을 국민들에게 떠넘겨서는 곤란하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도 마찬가지다. 5월부터 시작된 요금 인상 논의는 무려 3개월이나 지속됐다. 결국 지난 6일 주택용 2.7%, 일반용 3.9%, 산업용 고압 6.0% 등 평균 4.9% 인상안이 확정되었다. 산업계와 한전 그리고 정부의 지루한 줄다리기는 각자의 실익과 명분을 얻은 채 끝이 났고, 처음부터 논의에 끼어들지 못한 국민들은 다음달부터 2.7%가 오른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앞에서 올리고 뒤에서 깎아주는 산업용 전기 요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두 자리 수 인상을 고집했던 한전.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어느 정도 요금 인상이 불가피 하다는 정부. 그러나 6단계 누진제가 엄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은 야당 뿐 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의 5월 15일 '산업용을 올리려면 주택용도 올려라'라는 억지 주장에 정부가 화답했고, 결국 6단계 누진제는 방치한 채 가정용 2.7% 인상안을 확정했다. 경제계의 물귀신 작전은 주효했다. 정부와 한전은 어려운 가정 경제를 고려해 2.7% (한달에 800원 인상 효과) 최소한 인상안을 만들었다고 속보이는 변명을 하고 나섰다.
100kwh 초과 때마다 6단계로 누진되는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흑백 TV, 소형 냉장고가 가전제품의 전부이던 7,80년대의 전력 사용량을 기준으로 한 누진제를 전기사용량이 늘어난 현실에 맞게 고쳐야 됨에도 불구하고, 사용량은 그대로 둔 채 누진제 단계만 늘려왔다. 1975년 누진제 신설 당시 누진제 요금 차이(1단계 50kWh까지 kWh당 22원 12전. 4단계 500kWh까지 kWh당 49원 80전)는 2.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6단계 누진제로 인한 요금 차이가 사용요금 기준으로 11.7배에 달한다.
소득의 형평성을 고려한 요금이라는 명분은 사라지고 사용량이 늘어날수록 요금 폭탄이 되는 셈이다. 이는 요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다. 이런 누진제를 방치하고도 주택용 전기는 2.7% 최소로 올렸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한전과 정부는 물귀신 작전으로 주택용 요금인상을 요구했던 경제계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인상내용을 보면 대용량 사업장에 부과되는 산업용(을)의 인상률이 6%로 가장 높다. 그러나 과연 6% 인상 효과를 한전이 고스란히 챙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인상안에는 9월부터 토요일 중간요금부하제 시행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최대부하 시간대(11-12시 13-17시 여름,봄, 가을철 기준)로 가장 높은 요금이었던 kwh당 181.0원을 토요일에 한해 중간부하 요금105.7원으로 인하해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토요일 전기사용량을 부추기고, 대기업 요금을 편법으로 깎아 주는 조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휴일 최저요금제(공휴일은 가장 싼 경부하요금을 적용한다)의 확대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 대형마트 등에 적용되는 일반용(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앞에서는 올리고 뒤에서는 깎아 주는 전기요금 인상은 대기업 밀어주기 아닌가?
전력거래소가 발전회사에 전기를 사오는 구매 과정 또한 대기업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전력거래소가 발전회사에서 전기를 구입할 때 구입가격은 매시간 최고가격을 지불하도록 만든 계통한계가격(SMP)결정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런 가격 결정방식은 발전회사에 적정이윤을 보장한다는 명분이지만 결과는 대기업 위주의 민간발전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보장해 주는 꼴이 되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국수력원자력 발전에서 kwh당 구매가격은 52.56원인데 반하여 민자발전회사에서 구매한 가격은 kwh당 169.85원으로 세배가 넘는다고 한다. 때문에 포스코, GS,SK 등 대기업 운영 발전회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해마다 영업이익률이 15-30%에 이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기업 발전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가져다 둔 전기구매방식은 결과적으로 한전의 적자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게는 절전지원금까지 주면서...
이명박 정권하에서 전기요금은 구매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대기업 위주로 짜여졌다고 볼 수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7월 27일 전력거래소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운데 전기 아낀다고 공장에 전기 사용을 못하게 하는 건 중대한 실책이다. 기업들에 전기를 쓰지 말라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며 관계자들을 질책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의 전력거래소 방문 며칠 후 발표된 전기요금 인상안은 대통령의 의중을 철저하게 반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전력사용량이 늘어나 예비전력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자 기업에게 절전지원금까지 주어가며 전력사용량을 줄일 것을 권고한다고 한다. 이 비용도 지난해보다 4배 늘어난 4천억 원이 소요될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값싼 요금에 전기를 공급하고 또 절전지원금까지 줘가며 전력예비율을 높이려는 한전의 노력,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민들에게는 6단계 누진제를 통해 징벌적인 요금을 부과하면서 기업에는 절전지원금으로 절약을 유도하는 이중성, 과연 적절한 걸까?
열대야로 실내온도가 30도를 훌쩍 넘어서는 폭염에 에어컨을 두고 부채질 강요하는 절전 대책은 그만두어야 한다. 누진제가 벌금이 아니라면 전력 사용량에 맞는 개편이 필요하다. 대기업 발전회사에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전기 구매방식, 공휴일에 토요일까지 전기요금을 깎아 주는 기업위주의 요금정책은 변경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요금인상에 이런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산업계 전기요금을 많이 올리고 주택용 요금은 인상은 최소화했다는 전기요금 인상? 그 말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함은 바로 이런 여러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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