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정치인 ‘정동영’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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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존이(求同存異)’,
따스한 정치인 ‘정동영’의 재구성

17대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일상적인 얘기로 <피플투데이> 독자와 만나다

‘11시’ 대한문이다. 이 무슨 조화 속이란 말인가. 뜻하지 않은 장소로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민주당의 지난 17대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찾아서다. ‘개인 인터뷰는 없다’는 연락을 받고 그 불씨를 살려보려고 회견장인 대한문으로 달려갔다. 그로부터 열흘 후, 기자는 정동영 고문과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다. 지금부터 맛있는 안주를 놓고 ‘캬! 쏘주 맛 한 번 죽여주네’하는 것처럼 도수 높은 그의 사생활 속으로 들어가 본다.

박정례 기자jrpark@epeopletoday.com

 
“안녕하세요? 정 고문님 어렵게 만나 뵙습니다.”
기자의 인사에 정동영 고문도 손을 맞잡으면서 반갑게 맞아줬다. 속으론 “휴~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준비해 간 질문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그래도 대선 판에서 살짝 비켜선 기분이 어떠냐는 정치적인 질문을 배놓을 수 없었다. 첫 질문에서부터 아픈 곳을 찌른 셈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담담하게 대답을 한다. “어깨에 올려놓은 무거운 돌덩이를 치운 것처럼 홀가분한 기분”이라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느낌도 들고, 열심히 달리던 마라토너가 갑자기 멈춰 섰을 때 아마 이런 심정일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정 고문님, 이번 불출마를 특단의 반성문으로 해석해도 되나요?” 정동영 고문은 과거 민주정부 10년간의 잘못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여러 번 반성문을 쓴 적이 있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질문을 또 던진 셈이다.

미덥고 아름다운 ‘워커홀릭’

이에 정 고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무거운 침묵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할 말이 없으면 건강에 대해서 물으랬다’고, 건강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질문이 가벼워지자 드디어 답변이 술술 나온다. 아내 민혜경 여사의 “당신은 쉼 없이 움직이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인 것 같다”는 말을 들려주면서 자신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것 보다는 걸으면서 하는 쪽이 훨씬 편할 정도로 동적이고도 건강한 체질이라고 했다. 그런데 “말씀은 꽤나 천천히 하십니다”고 하니, 말을 천천히 하면 생각하면서 말할 수 있어서 말을 천천히 하는 편이라고 했다.
주말이나 한가한 틈이 생길 땐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했다. “잠도 자고, 밀린 전화도 걸고 트위터도 하지요. 신간서적도 뒤지고 그래요.”
정 고문은 잠이 많은 체질이라서 책을 읽다가도 쪽잠을 자는데 한 10분쯤 눈을 붙이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피곤이 풀리고 정신이 맑아진단다. 그래서 그는 쪽잠의 매력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며 싱그럽게 웃는다.
듣고 보니 정 고문의 건강비법은 왕성한 활동에 잠을 잘 자는 것이었다. 주말은 또 ‘천하없어도 가족과 함께’를 신봉하는 사람이란다. 가족을 데리고 외식을 한다거나 영화감상을 하며 지내는 생활방식이 그의 오랜 습관이다. 이런 소소한 철칙들이 쌓여 남부럽지 않은 건강과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튼튼한 비결이 됐다.
“최근에 본 영화도 있으시겠네요?”라고 묻자 <코리아>, <두 개의 문>, <건축학개론>등의 영화제목이 그의 입에서 나온다.
“모두 집사람과 함께 봤어요. <코리아>는 두 개의 한국으로 갈라진 남북한이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단일팀을 구성해 우승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에요. <두 개의 문>은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죠.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묵직한 질문을 안겨주는 다큐멘터리죠. <건축학개론>은 서정적인 영화로 감동을 주는 영화였어요.”
그의 앞에 있는 질문지에는 어느새 새까만 밑줄이 가득했다. 중요하다 싶은 곳에 밑줄을 긋고 키워드를 적어 그것을 보면서 답변하는 식이었으니까. 내친 김에 지금껏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 한 편을 꼽아 달라고 하니 군대 가기 전날 본 <빠삐용>이라 했다. 자유를 갈구하며 외딴 섬에서 탈출을 도모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군대’라는 또 다른 공간에서 3년을 지내야 하는 수많은 청춘의 모습이 대비되는 시간이었다.

 

‘국가’의 주된 역할은 ‘국민의 보호자’

정 고문의 어릴 적 꿈은 농촌운동가, 시인, 변호사, 그리고 기자였다. 학창시절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라진 꿈도 있고 좀 더 구체화된 꿈도 있었다. 그 가운데 직업으로 연결된 것이 바로 MBC 기자였다. 직업에 관한 그의 조언은 자신의 ‘꿈을 뾰족하고 두드러지게 다듬어라’는 것이었다. 해당분야에 대한 실력과 정보를 철저히 갖춘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정 고문은 많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어른들이 짜 놓은 틀에 아이들을 가두지 말고 자유롭게 풀어줄 것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유로운 나라일수록 생태도, 정치도, 공동체도 깨끗하다. 북유럽처럼 우리도 아이들에게 자유와 꿈을 되돌려줘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기자’와 ‘정치인’, 두 가지 직업을 경험해 본 그에게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점에서 두 직업이 동일한데, 그중 정치인은 좀 더 공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자라고 정 고문은 정의했다. 무대로 비유하자면 정치인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언론인은 객석 앉아 행위자들의 모습을 전달하는 역할이라고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스스럼없이 답변했다. “국가란 국민의 비빌 언덕이 돼야 하고, 재난에 처했을 때 고마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지금부터 약 2년 전 남미의 온두라스에서 살인누명을 쓰고 갇혀있던 ‘한지수’라는 여성을 구출해 낸 이가 바로 정동영 고문이었다. 한진중공업사태만 해도 한 여성이 85호 크레인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으면 국가는 “대체 ‘김진숙’이라는 저 여성이 무슨 일 때문에 저러는가?”하고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일상적인 문제로 돌아가 보자. 국내 여행지로 인상에 남는 곳은 어딘지, 좋아하는 과목은 뭐고, 남들 앞에서 혼자 부를 수 있는 유행가는 몇 곡이나 되는지 아주 개인적인 일상사를 건드려 봤다.
그가 잘하는 과목은 ‘국어’와 ‘국사’였고, ‘수학’은 너무 못해서 이 때문에 재수까지 할 정도였다고 했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은 자신의 고향 순창을 꼽았다. 우리나라가 생각 보다 넓은 나라라는 전제를 깔고, 순창만 해도 11개면이 있는데 아직도 가보지 않은 곳이 많아서란다.
다음은 강원도 양구와 제주도 산방산을 들었다. 양구의 해안면 ‘펀치골’이라는 마을을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데 펀치골은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로 햇볕정책의 상징성을 모두 안고 있는 유의미한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산방산 역시 역사의 현장이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수려한 그 어느 특급관광지를 말해 줄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의 장소만 말한다. 민통선 안에 꼭꼭 숨어있다는, 펀치골이라는 마을에 기자도 한 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불쑥 솟았다.

‘막춤’을 잘 추고 김치찌개를 좋아하며 김민기의 ‘친구’와 양희은의 ‘아침이슬’을 즐겨 부른다는 소탈한 성격의 정동영 고문. 어떤 며느리감을 원하냐는 질문에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조화를 만들어낼 줄 아는 지혜로운 이면 무조건 환영한다”는 그의 성품은 우리 시대 격조 있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정동영 고문의 좌우명이 ‘구동존이(求同存異)’임이 머리를 스친다. ‘서로 다른 차이점을 인정하면서도 화합한다’는 의미의 ‘구동존이’. 위로는 대통령에서부터 아래로 모든 국민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이 통 크게 ‘구동존이’한다면 세대 간, 계층 간 갈등과 우리 사회를 정체시키는 모든 문제들이 단 번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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