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한옥’, 미래를 그리다

  • 입력 2012.07.25 18:21
  • 기자명 조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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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한옥’, 미래를 그리다
효율과 편리를 입은 전통의 ‘집’

‘한옥(韓屋)’.
말 그대로 ‘한국의 집’,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사용해 지은 재래식 집’을 말한다. 흔히 ‘조선집’이라고도 불리는 한옥은,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물을 마주하며 남쪽으로 짓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원칙을 지켜 짓는 등 철저하게 자연친화적인 가옥이다.
또 바람의 진행통로와 흐르는 물의 위치, 산과 평야와의 거리와 방향 등의 풍수지리적 요건과 집의 활용목적, 거주자의 생활 성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다르게 짓기도 했던, 과학적인 가옥 건축물이기도 하다.

조성기 기자maarra21@epeopletoday.com

온돌로 방바닥을 데워 추운 겨울을 나고, 마루가 있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도록 구조화된 한옥은 지난 수천 년간 우리 땅에서 형성된 주거문화의 종합체라고 할 수 있다.
한옥은 이미 우리 문화와 삶의 양식, 우리 민족의 혼을 담아내고 있는 귀한 생명체에 다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조를 거쳐 조선왕조 500년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동안 각 시대의 공기와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삶이 녹아있는 한옥은 그 시대의 모든 것들을 반영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산업화를 맞으면서 양옥과 아파트 등 서구의 주거양식이 한옥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한옥이 지방의 쇠락한 지역이나 일부 보존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이렇듯 우리의 뇌리 속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던 한옥이 최근 일반인들의 관심에 힘입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한옥이 주거지로서의 효용성에서만 주목받던 차원에서 벗어나 건축학적으로 그리고 디자인학적으로 한옥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활발히 일고 있다.

삭막한 현대거주지에 대한 대안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아태문화유산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서촌이 한옥지정지역으로 서울시로부터 지정됐다. 이러한 사실은 전통한옥 보존의 차원을 넘어 다시금 우리의 주거문화로서의 한옥에 대한 높은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하다.
이와 관련해 일부 한옥전문가들은 “다시 우리의 땅에 한옥이 들어서야 하며, 전통의 토대 위에 21세기 현재의 삶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한옥의 위상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지난 2008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전국의 16개 광역시도에 거주하고 있는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한옥에 대한 인식과 수요 조사’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거주선호도’를 물은 결과 뜻밖에도 아파트보다 한옥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결과가, 한옥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30대 이하의 연령을 포함해 전 연령층에서 골고루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현대인들의 주요 주거지로 자리 잡은 아파트가 생활하기에는 편리한 점이 많지만 아직도 우리의 내면에는 한옥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옥의 상황은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생활의 불편함과 공간의 비효율성이 공존해 현대생활에 적합하지 않는 주거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지금의 한옥은 전통의 한옥구조에서 탈피해 다양한 형태의 개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실내 공간을 넓히기 위해 마당까지 거실로 개조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서울의 경우 ‘재개발’ 논리와 ‘민속문화보존’ 논리가 맞부딪치면서 한옥 가옥을 둘러싼 첨예한 충돌을 빚는 곳도 생겨났다. 지난 2008년, 서울시가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한 종로구 청운동과 효자동 등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에 위치한 서촌은 그런 양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지역이다. 한옥마을과 다수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개발계획이 세워졌지만 양 진영이 모두 불만스러워 하는 것.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이 사안에 접근하다보면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즉, 한옥의 현재화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는 자연친화적이며 사람을 배려하는, 한국의 문화와 철학의 집합체인 한옥이,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문화의 대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의 토대가 이미 만들어졌음을 증명한다.

거주공간을 뛰어넘는, 우리 삶의 뿌리

지난 수백 년간 한옥이 우리 민족의 주요한 주거형태를 유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30여 년 동안은 철저하게 소외된 것이 사실이다. 춥고 불편한 구식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상류층들만 사는 고급 한옥에 대한 편견, 서구에서 수입된 아파트의 편리함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준 것.
하지만 한옥에 대한 인식변화의 바람은 예상외로 크다. 특히 다수의 TV 예능프로그램이나 교양프로그램이 한옥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거나 그 주거적 우수성을 소개하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기도 했다. 지난 2009년에는 주택공사가, 아파트에 한옥의 건축원리를 결합한 ‘한옥 아파트’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이즈음 한옥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한옥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한옥 속에 내장된 ‘느림’의 가치가 각박해진 현대인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나는 한옥에서 풍경놀이를 즐긴다>를 쓴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는 자연의 풍광을 그대로 끌어안는 한옥의 너그러움과 그로인한 풍류의 미감을 한옥의 최고의 가치로 꼽는다. 이는 사람과 자연을 합일시키고 서로의 자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존중하는 배려의 철학을 맛보게 한다.
다음으로 한옥은 고유의 전통이면서도 과학적 원리를 극대화한 가옥이라는 점이다. 한옥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특히, 온돌은 뛰어난 과학 원리를 적용한 예다. 온돌의 주재료인 진흙은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 그 습기를 흡수했다가 건조할 때 방출해 실내의 습도를 조절해준다. 천연가습기인 셈이다. 또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는 구들고래가 막아주고 겨울에는 지열을 저장해 발산함으로써 난방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건강을 제1의 가치로 여기는 최근의 웰빙 열풍과도 연관된다. 아파트로 떠났던 이들이 다시금 한옥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한옥이 친환경 건축물로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한옥의 재료들은 모두 친환경 재료다. 목재로 세운 뼈대에 흙을 구워 만든 기와를 얹고 흙과 돌로 마감하는 등 한옥은 시작부터 끝까지 몸과 자연에 좋은 재료만 쓰인다. 그래서인지 대다수 현대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 하는 집이 바로 한옥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사실은 한옥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부정적 전망을 동시에 드러내게 하는 요소다. 즉, 바쁘고 생활의 효용성을 고려해야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거주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
일부 전문가들은 한옥의 대중적 보급과 활성화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관련법의 마련과 제도 정비, 새로운 한옥, 바로 퓨전한옥의 연구와 개발의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와 관련해 한 한옥전문가는, 전통의 고수보다는 현대의 주거 환경에 맞게 어떻게 기존의 한옥을 재창조하는가가 중요하며 앞으로 한옥의 미래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작금의 ‘한옥 열풍’에 대해 재론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이제 한옥은 우리 생활에 부쩍 가깝게 다가왔다. 하지만 관심과 수요에 비해 생산 활동과 보전 노력을 지원할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한옥에 대한 향수를 갖고 다시 한옥을 찾는다는 사실은 분명 특이할 만한 상황이다. 한옥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고려하는 수요자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가는 추세에 대해 관계당국과 범정부적 차원에서 정책적 대처와 배려로 화답해야 할 시점인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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