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고민하던 청년, ‘노동법 학자’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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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고민하던 청년, ‘노동법 학자’로 거듭나다

이철수 서울대법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장

우리나라의 노동법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는데, 바로 그 노동법제의 정비를 위해 분주히 활동해오던 ‘노동법 학자’가 있다. 이철수 서울대법과대학 교수가 바로 그다. 특히 이 교수는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 제도, 전임자급여 등 노사관계법과 관련한 중요한 이슈들을 한꺼번에 쏟아졌던 지난해, 한국노동법학회장과 한국노사관계학회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흘러가고 있는지, 또 앞으로 추구해나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듣고자 이 교수를 찾아가 보았다.

이민정 기자 meua88@epeopletoday.com

우리나라에 ‘복수노조’가 어느새 시행된 지 1년째를 훌쩍 넘겼다. 정부는 무분별한 노조 추가나 큰 충돌 없이 안착하는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복수노조와 함께 도입됐던 ‘창구단일화 제도’의 이행률도 97%를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두 제도를 바라보는 기업과 노동계의 입장은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특히 노동계에서는 “복수노조 제도가 기존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하며 19대 국회 초 복수노조제 등 노조법 개정에 전면적으로 나서겠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복수노조’의 시대, 독일까 약일까

지난해 2011년 7월 우리나라에서 완전한 복수노조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1987년 법 개정 때 ‘기존 노조와 조직대상을 같이하는’ 제2노조의 설립을 금지해오던 입법이 완전히 폐지된 셈이다.
1997년 개정 때 초사업장 차원의 복수노자가 허용됐었지만 여전히 사업장 내의 제2노조 설립은 허용되지 않았는데, 2011년 법 개정을 통해 이를 완전히 허용한 것이다. 단, 완전한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새로운 조건이 추가됐는데 이른바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창구단일화제도이다.
반대론자들은 “헌법 제33조의 노동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찬성론자들은 “단체교섭상의 난맥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야당과 노동계에서는 소수노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창구단일화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철수 교수는 “현행의 창구단일화 제도는 ILO 협약에 반하지는 않지만, 위헌성의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제도”라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장 차원에서 대표 개념(single channel bargaining system)을 도입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라는 점을 감안, 이 제도의 전면 폐지보다는 소수노조의 보호를 위해 교섭단위를 분리하고 공정대표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측면에서 제도적 보완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 진단했다.
‘전임자 급여’는 복수노조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 노동관련 법안 중 하나. 지난 2010년 7월 이른바 타임오프(Time-off) 제도가 시행되면서 전임자 급여지급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전까지는 전임자의 급여를 어느 정도 지급할 것인가에 대해 완전히 노사의 자율에 맡겨져 왔으나, 무제한적 협약자율에서 제한적 협약자율을 도모하고자 입법정책이 바뀌면서 현행법으로는 법이 정한 상한선 이내에서 노사가 합의를 거쳐 정하도록 바꾼 것이다. 이를 두고 노동계에서는 현행법이 국제노동협약을 위반한 것이라 주장하며 강력히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앞으로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예측을 삼갔다.


변화해온 대한민국 노동법제와 그 발전

우리나라의 노동법제는 1953년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이 처음 제정되었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정변이 있을 때마다 비정상적 입법기구는 노동법을 개악시켜 왔는데, 대표적으로 19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와 1972년의 비상국무회의에 이어 1980년의 국가보위입법위원회가 치안유지 차원으로 노동법을 변질시켜 온 것이다.
이러한 개악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대투쟁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반전되기 시작했고, 특히 김영삼 전 정부에 이르러 대대적인 법 개정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며 그 이후 우리나라 노동법제는 단계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총평할 수 있다.
우리나라 노동법제는 헌법의 변천사만큼이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이철수 교수는 “짧은 시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국가이기 때문인지 우리의 노동법제에는 한국적 동태성이 여실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노동법제의 변화에 대해 다소 도식화한다면 1987년 이전 효율성을 추구하던 시기나 이후 형평성을 강조하던 시기를 지나 현재 형평성과 효율성 간의 조화를 모색하는 시기로 대별할 수 있겠으며, 이 교수는 “이러한 발전은 노동운동의 신장과 궤를 같이 한다”고 명쾌하게 전했다.


평등과 균형을 유지할 정책 확립의 필요

이철수 교수는 최근 각 당의 정책들을 미뤄보아 현재 노동법제의 최대 쟁점은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일 것으로 내다봤다. “비정규직과 복지문제가 정치적 agenda의 한복판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2008년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적, 시장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형평과 상생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양극화 해소 문제가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기초조건으로 인식되는 흐름을 “바람직한 현상”이라며 특히 우리나라는 평등의식이 강한 민족으로써 이것이 오늘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돼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고 전했다.
이 교수에게 앞으로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묻자, 그는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하긴 어렵다”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 내 파워구조나 헤게모니의 재편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며 정부조직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췄다.
더불어 그는 “전통적인 경제논리로는 일자리 창출이나 양극화 해소가 요원할 것”이라며 “성장과 분배, 자유와 평등 간에 존재하는 영원한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중용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모든 사물은 각기 제자리가 있기 마련이고(各得其所), 나의 처지를 미루어 남을 생각해야(推己及人) 타협과 상생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산업화 그늘 비추고자 선택한 ‘노동법 학자’의 길

이철수 교수는 권의주의가 짙었던 시절 속에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젊은 시절은 가치와 이념 문제에 대해 좀 더 민감한 시기”라고 하면서, 이 교수는 “특히 산업화의 그늘 밑에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향상시켜보고자 지금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교수는 ‘노동법 학자’로서, 노동자 인권을 위해 힘쓰며 우리나라 노동법제의 정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특히 김영삼 전 정부의 노사관계개혁위원회와 김대중, 노무현 전 정부의 노사정위원회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바 2008년 초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며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최근에는 이제까지의 대외적 활동을 자제하고, ‘학자’라는 본직에 맞게 학교와 학회 활동에 전념해오고 있다.
특히 이 교수는 전임자급여와 복수노조 시대의 창구단일화 등 우리나라의 집단적노사관계법의 향배를 가늠하는 중요한 이슈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던 지난해, 한국노동법학회장과 한국노사관계학회장을 맡았다. 그는 “어느 해보다 더 힘들고 분주한 때를 보냈지만 그만큼 보람 있었던 해”라고 전했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의 회장으로서 활동하며, 주로 노동법 교수 및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전문인들과 함께 일반 학회보다 좀 더 이론적이면서도 실무적인 주제를 심도 있게 연구해오고 있다.

‘학문을 통한 실천’을 이루고자 노력해왔다는 이 교수. 그러나 “아직도 뭐가 무엇인지 몰라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젊었을 때보다 내 스스로가 열정이나 진정성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하지만 그는 교수로서 누구보다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 교수는 늘 자신에게 “배워서 남주라”고 했던 김유성 은사(현 세명대학교 총장)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학생들에게 “선택받은 엘리트로써 개인적 영달보다 사회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봉사의 정신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노동자들의 그늘을 거둬주기 위한 길을 걸어갈 이 교수. 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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