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오년(權不五年)’, 권력이 무상하다

  • 입력 2012.07.25 14:34
  • 기자명 조성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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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불오년(權不五年)’, 권력이 무상하다

‘권력’에 취한 권력자들의 최후
현직 대통령 형, 최초 구속되기도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만든 장본인으로 현직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7월 10일 구속됐다. 저축은행 정관계 로비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이 전 의원의 혐의 내용은 ‘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다.
10일 밤 늦게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이 전 의원은 현 정권의 ‘상왕’으로 불릴 만큼 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형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구속된 이 전 의원의 몰락은 ‘권불십년’을 넘어 ‘권불오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더불어 역대 정권에서 불거진 측근비리가 또 다시 되풀이되는 상황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증폭되고 있다.

조성기 기자maarra21@epeopletoday.com 


‘상왕’의 구속 이후 수사의 향방은?

이상득 전 의원은 지난 2007년 대선 전 솔로몬 저축은행 임석 회장과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으로부터 각각 3억 원, 코오롱으로부터 2007년에서 2011년 사이 1억 5,0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아 구속됐다.
구속영장을 발부한 박병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 전 의원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진행 상황과 피의자의 지위 및 정치적 영향력에 비춰볼 때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10일, 밤늦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대검찰청에서 대기하던 이 전 의원에 대한 영장을 곧바로 집행하고 서울구치소에 이감했다.
이 전 의원에 대한 구속수사를 결정한 배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전 의원의 금품수수가 단순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아닌, 현 정권 2인자로서 금융당국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명목의 ‘알선수재’ 혐의 때문이다. 특히 이 전 부의장이 불법 자금을 수수한 시기가 대선 전후임을 들어 대선자금과 관계됐다는 의혹도 불거지고 있어 이번 수사가 추후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이 전 의원의 최측근 보좌관이던 박배수 씨가 SLS그룹의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구명로비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지난해말께였다. 이와 함께 이 전 의원의 여비서 계좌에서 7억 원이 발견되는 등 의혹들이 터져 나오면서 이 전 의원의 몰락이 예고됐었다.
또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사건이 터진 지난 5월, 현 정권의 또 다른 실세였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 사건과 관련해 구속 기소되면서 이 전 의원도 검찰 수사의 표적이 돼왔었다.  
결국 저축은행 문제가 터지면서 이 전 의원이 부실저축은행으로 퇴출된 솔로몬저축은행 임석 회장과 미래저축은행 임찬경 회장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이 전 의원은 자신이 대표로 있던 코오롱 그룹으로부터도 불법적인 정치후원금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또 지난 7월 16일자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2008년 2월 경 신한은행이 이 전 의원에 ‘MB당선축하금’으로 3억 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0년 신한은행의 횡령, 배임 사건 수사 때 용처가 밝혀지지 않았던 비자금 3억 원이 바로 ‘당선축하금’이라는 것.
만약 이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저축은행 비리수사의 칼날이 이 전 의원의 구속을 거쳐 대선자금수사 등 현 정권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득 전 의원은 코오롱의 대표이사 출신으로 1988년 경북 포항의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후 내리 6선에 성공한 중진 의원이다. 지난 4.11총선에 불출마하면서 6선에 그친 이 전 의원은 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동생인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권력의 날개를 달았다. 그러나 이번 구속으로 그의 시대도 종장을 고했다. ‘권불십년’, 아니 ‘권불오년’이라는 말이 증명된 셈이다.  

전방위 ‘비리’, 현 정부 붕괴의 뇌관으로

한편, 현 정부의 측근비리와 관련,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 전 의원만이 구속된 것은 아니었다. 저축은행으로부터 앞 다퉈 검은돈을 챙긴 이들은 대통령의 친인척을 비롯해 현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들이었다.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은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에게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최근 2심 재판 과정에서 판사로부터 “영부인의 친척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했는데도 경솔하게 처신해 누를 끼치고, 국민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는 질책을 듣기도 했다.
또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의 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을 지냈고 현 정부에서 실세로 알려졌던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역시 솔로몬저축은행에서 4억여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의원에 대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제19대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산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김해수 전 정무비서관은 2007년부터 세 차례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 과정에서 6,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책실장을 지낸 현 정부의 실세, 윤진식 새누리당 의원 역시 제일저축은행 유 회장에게 4,000만 원을 선거자금 명목으로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2010년에는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은진수 전 감사위원도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로비 대가로 금품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고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해 9월 부산은행 구명 로비를 맡았던 박태규에게 1억 3,000만 원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는 등 현 정권의 측근실세들과 친인척들이 전 방위로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15년간 이명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이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는 참모로 알려진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으면서 현 정권의 중심부는 그야말로 와해 분위기가 팽배하다.
저축은행 사태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관계자들도 “애초 수사 당시 이렇게 많은 관련자들이 나올 줄 몰랐다”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러한 비리수사들이 본격적으로 ‘대선자금’과 관련한 수사로 이어질 경우 예상하지 못한 권력형 비리는 더 커질 수도 있다. 더불어 수사의 방향이 정치권으로 확대되면서 올 12월에 있을 대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정권말기면 터지는 ‘권력형 비리’, 해결책은? 

역대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측근과 친인척 비리 때문에 정권말기 한결같이 몰락의 비운을 맞았다.
이승만 정부부터 군사정권에 이르는 권위주의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대통령의 아들들이 전격 구속됐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대통령의 형이 비리에 연루됐던 참여정부, 그리고 현 MB정부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중심에는 늘 ‘비리’가 뒤따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한보사태와 관련, 당시 ‘소통령’으로 불렸던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씨가 구속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 와서는 오른팔로 불리던 권노갑 의원이 구속됐고, 두 아들 역시 비리로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서민적이고 참신한 이미지를 무기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참여정부 실세였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비리사건에 휘말려 결국 감방 신세를 졌다. 또 노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가 구속됐고, 권양숙 여사 아들 노건호 씨, 그리고 본인까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졌다.
정권 말 측근 비리가 역대 모든 정권에서 터지는 이 기막힌 현실 속에서 우리는 권력과 그 권력에 연결된 측근들이 빚어내는 비극에 전 국민들이 실망감을 넘어 분노해 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측근과 친인척 비리에 속수무책이었을까? 가장 주된 이유는 청와대와 검찰 등 사정업무의 주요 요직이나 정권의 핵심자리에 부적격 인물들을 등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제치고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게 될 경우 ‘십중팔구’는 비리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권력구조다.
역대 대통령들은 학연, 지연, 혈연에 의지해 자신을 보좌할 수 있는 자리를 채워야 믿을 수 있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게 현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믿는 도끼’에 발 등 찍히는 결과를 보여 왔다.
사정 책임자들은 대통령의 측근과 친인척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그들의 비리를 축소하거나 감추는, ‘권력의 방탄복’ 구실을 해왔고 그런 특권을 이용해 권력층과의 친분을 쌓아 출세의 발판으로 삼아온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었다.
대통령 친인척 비리의 근절은 스스로 보다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갖는 것이 최선이다. 권력의 중심에 서면 무엇보다 자신과 주변인들의 몸가짐을 깨끗이 하는 등 철저한 자기검열이 있어야 한다고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많은 측근들에게 모두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기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친인척 비리 예방 기능과 사후 처벌이 강화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선 매 정권말기마다 터져 나오는 권력형 측근비리의 근본원인이 ‘대통령 5년 단임제’에 있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즉,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대해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거나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권력의 집중화를 막고 분산시켜 상대적으로 비리를 만들어내는 고리를 차단할 수 있고 4년 중임제의 경우 '중간심판‘의 개념에 따라 어느 정도 비리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권력에 대해 “상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권력자는 법이 정한 권한 밖의 것들을 얻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현실이다. 자신의 권한을 합법의 범주 안에서 사용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왔다.
옛말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그리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센 권력도 10년을 넘지 않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열흘 이상 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의 현 정부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를, 앞으로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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