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 8기의 정신과 피땀으로 이룬 연 매츨 100억의 성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전 8기의 정신과 피땀으로 이룬 연 매츨 100억의 성과

성호기공 김종근 대표

산 좋고 물 좋은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의 정기를 받으며,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인자하신 부모님과 든든한 동생들 속에 풍요롭고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행복했던 집안에 시련이 찾아온 건 그가 중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의 가세가 기울었고, 어린 나이에 감당 못할 삶의
무게를 줬다. 하지만 집안의 장남으로 그에겐 지켜야 할 부모님과 6명의 동생들이 있었다. 그는 좌절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이광순 기자 kwangsoon80@epeopletoday.com

그는 1969년도, 서울로 상경해 역경을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 중에 베어링을 만드는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어린시절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잘 적응해나갔고 집에 계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객지 생활의 외로움과 싸우고 이를 악물며 기술습득에 박차를 가했다.
노력은 조금씩 빛을 발휘했고, 회사도 그를 인정하면서 더욱 기술습득에 재미를 붙였다.
일에 열중하던 그도 어느덧 나이가 차 군대에 가고 앞으로 나아갈 삶에 대한 계획과 밝은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 성실한 군 생활을 했다. 
제대 후 기계 설비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던 그는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력을 토대로 86년도 5월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친구와 동업을 시작으로 성호기공 설립했다. 첫 사업의 시작은 그리 순탄치 않았고 동업은 2년 만에 끝났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1987년 9월 대형선반 및 부품 임가공, 부분적 Unit 제작을 시작으로 “Slitter Rewinder” 개발 및 제작. “Tape Coating M/C” 개발 및 제작, 레이저 천공용 “Rolling M/C” 및 주변기계를 제작하며 창의성과 기술력을 점차 확장해나갔고 성호기공은 규모가 커져 1992년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으로 확장 이전했다.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사업을 확장하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역경이 찾아온 것은 1995년 무렵이었다.
사람 좋은 그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 못 하고 40억 빚보증을 섰지만, 친구 회사의 부도로 그동안 쌓았던 모든 업적이 위기를 맞았다.
남들보다 빠른 사회생활과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며 강인하게 살던 그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그는 세상이 싫고, 앞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생각에 한강에서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가족들이 밟혀, 나약한 생각을 한 자신을 책망하며 간절한 기도와 함께 재기의 칼을 갈았다. 그의 바람은 서서히 이뤄졌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동종업계의 거래처에서 쌓아왔던 15년간의 그의 신용은 힘든 순간 빛을 발휘했고, 전폭적인 지원과 격려를 받으며, 불씨가 꺼져가던 성호기공에 다시 힘찬 엔진 소리가 들렸고 점차 회복의 단계에 들어섰다.
신용이 사업가의 최고 덕목인 것을 몸소 체험한 그는 결코 어려운 시절, 자신을 믿어준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1986년 창립 당시 거래처를 유지할 만큼 대인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거래처 대부분은 10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재기에 성공한 그는 더욱 사업에 몰두했고, 1998년 6월 경기도 김포시 현 부지로 본사 및 공장의 확장하고 1999년 6월 “주식회사 성호기공”으로 법인 전환을 마쳐 사업 세력을 넓혔다. 2000년 밀리어 시대가 열렸고, 그는 묵묵히 자신의 도전을 이어갔다.
2000년 2월 “Lip Coating Machine” 개발 제작을 시작으로 “Micro Gravure Coating Machine”과 “Roto Gravure Printing M/C”과 “Multi Coating Machine”과 “Prasma Converting Machin”과 “U/V Coating Machin” 등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한국산업안전공단 Clean 사업체 인증”과 “기업부설 연구소 설립 인가와 ISO 9001 인증”을 획득하며 동종업계에서 알아주는 실력자로 거듭났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한 그의 노력

장기간 경기침체에 많은 업체가 힘들어할 때 성호기공은 30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내실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일정이 잡혀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업을 구축했다.  
최근 확장 중인 사업은 폭 1미터당 코팅 1리미크롬을 1밀리로 1,000개로 쪼개어 1~2개를 계산해 분당 180미터의 속도로 맞추는 최첨단 기술력으로 슬롯다이 개발, 시판, 수출까지 진행 중이며, 현재 1대에 20억짜리 슬롯다이가 5대가 수출됐고, 3대가 발주 대기 상태이다.
또한, 액정 TV 속의 편광필름 코팅 라인 제작과 담배 필터 부분의 1차 밴드를 가공하는 코팅기계도 제작한다. 국산 담배의 대부분은 성호기공의 제품을 통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성호기공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그의 분명한 경영 신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이 없으면 중공업 분야에서 도태된다.
그는 성호기공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 미국, 일본, 독일 등 기술 선진국의 기술, 장비 전시회를 견학하며, 그들의 기술력을 답습하며 성호기공의 엔지니어를 육성, 지원하며 자체 기술력 향상에 힘쓰고 있다.
또한, 매출액의 20%는 반드시 기술개발비용으로 투자한다. 하지만 산업인력은 끊이지 않는 문제이다. 그는 입시교육 위주의 교육정책을 지적한다. 좁은 국토와 비자원 국가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확산, 발전을 통해 수출을 향상시키고 국가적 차원에서 더욱 강력한 실업계 학생들의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그는 요즘 청년들이 취업난에 힘들어하고 힘든 일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그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일이라도 감사한 마음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일은 결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한다. 그의 조언은 30년간 한 분야에서 외길을 걸어온 장인정신에서 나오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주)성호기공의 앞날에 대해 절대 자만하지 않는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고객과의 신용을 바탕으로 기반과 내실이 탄탄한 (주)성호기공으로 국내 중공업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30년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뚝심은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쉽게 포기하는 현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다.

 
 

저작권자 © 피플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