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 주한미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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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랑’ 뜨거운 갈색 눈의 미국 최고 외교관

자랑스런 한국계 미국인, 성 김 주한미국대사

“배우 대니얼 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 소설가 이창래 씨 등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이 외에도 강석희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 시장, 고홍주 미 국무부 법률고문, 미셸 리 전 워싱턴 교육감, 조지프 윤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등 정관계에서 활동하는 훌륭한 한국계 미국인들이 참 많죠.”
최근 자신의 블로그 ‘올 어바웃 성김’에 한국계 미국인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성 김 주한미국대사. 자신이 소개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들과 비교해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인물’로 전혀 손색이 없는 그는 지난해 11월 10일 한미 수교 이후 첫 한국계 대사로 부임하면서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의 표상이 됐다. 

한국민과 소통하고픈 뜨거운 의지

“따뜻한 환영,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뜻밖이었다. 일반인들의 예상을 깨고 또박또박한 한국 발음으로 그는 취재진들을 향해 밝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11월 10일 인천공항 입국장을 들어서며 한국 국민들과 한국말로 첫 대면을 한 성 김 대사. 1974년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김성용’이라는 한국이름을 가진 김 대사는 40여년 만에 세계 최고국가인 미국의 대사가 돼 금의환향한 것이다.
김 대사의 부임에 대해 국내외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동북아의 평화 정착과 북핵 등 현안 문제에 전문가인 김 대사의 역할에 대해 큰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당시 “미국정부가 김 대사를 한국대사에 임명한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배려”라고 평한 뒤 “김 대사가 양국관계를 한 단계 높여줄 뿐 아니라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지혜를 보여줄 것”이라고 환영했다. 
김 대사는 부임 직후 외교부 방문을 공식적인 첫 일정을 시작으로 업무를 시작해 지금까지 약 넉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는 미국으로 돌아가 동북아 정세에 대해 정부와 긴급 협의를 했고 올해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지자체 단체장 및 정부 관료들과 회동해 다양한 현안들을 논의하기도 했다. 
올 초 연두기자회견에서는 2012년이 개인적으로도 대사로서도 “분주하지만 흥미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의 다양한 음식을 먹어 보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풍광을 위해 여행도 다녀보고 싶다”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김 대사는 공식적인 업무 외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른 바 SNS를 통해 한국의 젊은 세대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어 주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블로그 ‘올 어바웃 성김’이 그 매개체로 김 대사는 ‘대사님, 질문있어요!(Ask the Ambassador, ATA)’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있는 것.
이곳에서는 개인적인 사소한 궁금증부터 FTA나 미국의 이란에 대한 핵조정 같은 국제 시사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논제들에 대한 의견피력과 공유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보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 이민 1세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사는 박정희 정권 당시 주일공사로 재직한 바 있는 김재권 공사의 아들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갔다가 미국 이민을 떠났는데 일각에서는 1973년에 발생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납치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사실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미국으로 건너간 김 대사는 1980년 미국시민권을 획득했고 펜실베이니아대학과 로욜라 로스쿨, 런던 정경대 등 최고학부를 거쳐 캘리포니아 검찰청의 검사로 임용돼 활동했다.
김 대사는 평소 성격이 온화하고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이러한 김 대사의 성향은 유독 동양인들에게만은 한없이 인색한 미국의 고위 관료직에 그가 짧은 시간 내에 오를 수 있도록 이끈 요인이기도 했다. 특히 김 대사는 대외적 발언을 극도로 자제하고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경계하는 등 자리관리가 철저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요직에 계속 등용될 수 있었다.
김 대사는 2003년 주한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재직 중 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극동지역의 전문가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6자 회담의 실무자로 참여하며 북한을 열 차례 이상 방문하기도 했다. 2006년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차관보에 의해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발탁돼 당시 주요 현안이었던 전시전작통제권 전환, 북핵문제 등의 업무를 훌륭히 처리하면서 주위에 국내외에 인상을 남겼다.
2008년 상원의 인준을 거쳐 ‘대사’의 타이틀을 얻은 이후부터는 6자 회담의 수석대표 겸 대북특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해 5월에는 북한이 제출한 1만 8,000쪽 분량의 영변원자로 가동 기록을 넘겨받아 미국대표단을 이끌고 영변원자력발전소 냉각탑 폭파현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화려한 경력은 미국 내 북한 정보와 극동지역에 대한 최고 전문가로서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갈 수 없게 만들었다. 심지어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조차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과정에서 김 대사의 의견을 반드시 참고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경력에 힘입어 김 대사는 지난해 6월 24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주한미국대사로 지명되었고 10월 13일 미의회의 최종 인준을 거쳐 지명 5개월 뒤인 11월 10일, 드디어 가장 성공한 한국 이민자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 기대감이 너무 커 부담스럽다는 성 김 대사.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조금은 민감한 문제에 “미국의 국익이 한국의 국익에 반하지 않는다”고 지혜롭게 말하는 그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김 대사가 구상하고 펼치려는 외교관으로서의 꿈과 비전이 훌륭하게 수행되길 바란다. 그리하여 한국 땅을 떠날 때 뜨거운 박수를 받는, 최초의 미국대사로 남길 우리 국민들은 바랄 것이다.

조성기 기자maarra21@epeopl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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