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여성적 카리스마’로 정권 창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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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여성적 카리스마’로 정권 창출하겠다

한국 정치계 ‘철의 여인’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모바일 투표는 범국민적 요구이자,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최고의 정치쇄신을 위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난 2월 6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의에는 정치쇄신에 대한 또 하나의 실험적인 의견이 제시됐다. 한명숙 대표는 4.11 총선 후보자 공천에 모바일 투표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을 역설하며 이를 위해 민주통합당은 물론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1.15 전당대회 당대표 투표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모바일 투표를 공천에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인 것.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은 4.11 총선 전체 245개 지역구의 최대 30%인 74개 지역에 대해 경선 없이 전략공천을 실시하고, 15%인 37개 지역에는 여성후보를 공천키로 결정하는 등 당 전체가 총선체제로 변환했다.
지난 1월 15일 치러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되며 정치인으로서 새롭게 중앙무대로 등장한 한명숙 대표는 그렇게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숱한 고난과 역경, 인고의 세월을 이기다
지난 1월 15일 고양의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한명숙 대표는 민주통합당의 첫 대표로 선출됐다. 이로써 지난 2월 초 당명을 바꾼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통합진보당의 심상정, 이정희 대표 등 여야 주요 3당의 대표들이 모두 여성 정치인으로 선출되는 ‘여성당수’ 시대가 열렸다. 그 가운데 한명숙 대표는 정치적 경륜으로나, 여성적 리더십으로 보나 가장 안정적인 면모를 보인다.  
한명숙 대표는 선거인단들의 전체 표 가운데 24.5%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민주통합당을 이끌 첫 번째 당수가 됐다. 한 대표는 당초 조직력에서 앞선 박지원 후보나 대중적 인지도에 기댄 문성근 후보, 참신한 이미지의 박영선 후보 등과 팽팽한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 밖의 대승을 거둬 당내 장악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추후 4.11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친노 그룹’의 대표적 주자이기도 한 한명숙 대표는 그동안 검찰과 뇌물수수 혐의로 긴 공방을 이어왔다. 지난 2009년 12월, 총리재임 시절 곽영욱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검찰측에 의해 기소된 것. 하지만 법정 공방 속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데 이어 지난 1월 13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며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입증해 내기도 했다.  
1944년 평양에서 출생한 한명숙 대표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부모를 따라 월남한 실향민 정치인이다. 이화여대 재학 중 결혼한 남편 박성준 교수가 통혁당 사건으로 수감되면서 13년간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던 한 대표는 1974년부터 ‘크리스천 아카데미’ 운동에 투신하며 여성 사회활동가로 활약했다. 환경과 현실이 그를 ‘활동가’로 만든 것.
1979년 긴급조치로 구속되는 등 우리나라 민주화 여정의 한 복판을 걸어온 그는 1989년부터 여성민우회장과 한국여성단체연합회의 가족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 한국여성단체연합회 부회장과 공동대표 등을 거치며 한국 여성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석이 됐다. 
이후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거쳐 1999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가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하는 과정에 여성분과위원장으로 참여,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이듬해인 2000년 제16대 국회에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입성, 본격적인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됐다.

한국 여성 정치인의 ‘표상’으로 
한명숙 대표의 이력에는 ‘초대’와 ‘최초’라는 꼬리표가 비중 있는 두 직책에 붙어있다. 지난 2001년 처음 출범한 여성부의 초대장관직과 2006년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직이 그 것이다.
여권의 신장과 양성평등을 위해 만들어진 여성부 초대 수장으로 그가 선임됐던 사실은 여성계에서 한 대표가 갖는 상징성이 작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더불어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에 이름을 올린 그는 이후 정계와 관료직의 여성비율이 크게 느는데 디딤돌이 됐다.
여성부장관 재직 시절 한 대표는 ‘모성보호법’을 발의해 통과시켰고, 남녀차별개선위원회를 통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을 넓혔으며,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등 여권신장을 위한 소신을 현실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또 약 1년간의 총리직을 담당하면서 한 대표는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에 대해 국회에서 반발하자 강하게 국회를 질타하는 등 제 목소리를 확실히 낼 줄 아는 총리로 인식되기도 했다.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던 한명숙 대표는 제16대와 제17대 국회에서도 열정적인 여성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17대 회기 동안에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등 다양한 현안들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고 국감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에 대한 2005년 5월 국회 표결에서 찬성 당론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당초 내용이 후퇴했다며 기권하는 등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당시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치적 경쟁자이기도 한 한나라당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는 비판을 해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MB정부가 들어선 후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며 잠시 국회를 떠나기도 했던 한 대표는 지난 2010년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새롭게 정치적 회생을 도모했지만 검찰의 무리한 기소의 영향으로 아깝게 낙선, 또 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지난 1월 15일 민주통합당 대표로 선출되며 또 다시 화려하게 재기한 한명숙 대표는 그간의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한국여성운동계에 커다란 족적을 만들고, 정치에 입문해서는 여성으로서 남성세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정치판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여성 정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여성 정치계의 거목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올 4월에 있을 제19대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국민이 이기는 시대, 99% 서민이 승리하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역설하는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그가 이끌 민주통합당이 현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고 또 정치냉소주의에 빠진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되돌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성기 기자maarra21@epeopl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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