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직의 뒤안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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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그라운드’ - 방송에 출연하는 뮤지션들을 통칭하는 말

‘언더그라운드’ - 방송에 나가지 않고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뮤지션, 혹은 주류 음악계를 탈피하고자 하는 뮤지션들을 통칭하는 말.

Keyword - 저항(Resistance), 독립(Independence), 비주류(the Nonmainstream)


부흥(復興) - late 1990s

오버와 언더의 경계가 명료해지던 1990년대 중반, 인디음악의 분야는 록에서 블루스, 펑크 등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인디 뮤지션들은 음악적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취지는 그대로 이어가되 그들 스스로의 음악인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찾아 나섰다. 98년 데뷔 앨범 <말 달리자>로 공연 문화에 불을 지핀 펑크의 선두주자 크라잉 넛, 96년 1집 앨범 <비둘기는 하늘의 쥐>로 헤비메탈 일색이었던 홍대 공연장에 편안한 모던락을 가져온 ‘언니네 이발관’ 등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밴드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 강렬한 기타 사운드에 익숙지 않았던 관객들도 밝고 편안한 음색을 가진 인디밴드의 공연장을 찾기 시작했다. 방송에 나오지 않아도 홍대 인근 상업구에 있는 많은 소규모 공연장들은 연일 인디밴드의 공연과 그들을 찾는 관객으로 북적였다.

90년대 중반 방송가에 본격적인 ‘아이돌’ 열풍이 불기 시작하며 인디 씬의 인기는 반등(反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나마 발라드, 댄스, 트로트 등 대부분의 장르 음악을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획일화의 길을 걷게 된다. 2012년 현재의 가요 프로그램이 겪고 있는 단순반복적 리듬을 이용한 획일화와 퀄리티 저하의 위기는 이 때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소규모 공연장에서 먼저 주목받고 음악 전문방송에서 소개되는 인디밴드가 음악의 질적 차원은 월등히 높다. 인디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굳건히 다지며 장르의 다양화와 소리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반면, 방송에서 카메라 앞에 서는 가수들은 쉬운 리듬과 반복적 율동으로 10~20대 팬 층의 환심을 사기 위한 무대 구성에 여념이 없었다. 그에 따라 가수들의 정규앨범 발매는 점점 뜸해지고 싱글 앨범, 미니 앨범의 형식으로 두세 곡만을 수록한 소모성 앨범들이 시장을 잠식하게 됐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가끔 가수들이 방송에서 ‘불법 다운로드가 음반 시장을 죽이고 있다’고 호소하는 장면이 보인다. 어불성설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도저히 그들을 위해 돈을 지불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불법 공유사이트에서조차 그들의 음악은 ‘인스턴트’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미국의 팝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의 리더 윌 아이 엠(Will I Am)은 한 인터뷰에서 음원의 불법 유통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가수는 청취자가 그들의 음악을 들어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불법이더라도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하고 반문했다. 불법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특성상 대중의 관심의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자신들의 음악을 누군가가 듣는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은 공존(共存)해야 그 의미가 있는 만큼 제작자와 청취자 간의 적극적인 의견 교류가 필요하다. 불법은 철폐돼야 하지만 소비의 강요 역시 있어서는 안된다.


아직도 부족한 전문 공연장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듯 국내의 공연장 문화 역시 초기에는 구색만 갖춘 곳이 많았다. 기본적인 밴드의 구성인 보컬,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가 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를 갖춘 곳에서도 밴드의 공연은 이뤄졌다. 방송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인디 뮤지션들은 작은 장소에서라도 공연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다행히 90년대 말 다양한 장르의 인디 뮤지션들이 대폭 증가하며 공연장 역시 규모를 확대하고 고급 장비를 들이기 시작했다. 공연장의 필수 장비인 앰프는 과거 앰프 다이렉트 출력 방식에서 PA(Public Address) 시스템을 통한 2Kw 이상의 대형 스피커로 성능이 향상됐다. 드럼의 전 파츠에 전용 마이크가 설치되고 기타, 베이스 앰프에도 마이크가 설치돼 모든 소리를 PA 시스템에서 컨트롤한다. 음향 전문가의 세팅으로 연주자들과 관객들이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조절한다. 시스템적인 면에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점점 옅어지는 좋은 현상이다.

오히려 대형 공연장이 부족해 가수들이 올림픽 체조경기장 등지에 무대부터 조명까지 따로 설치‧철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덜하고 그에 따른 비용 또한 저렴하다. 한 유명 가수는 이에 대해 ‘콘서트 티켓이 비싼 것은 대형 전문공연장이 부족해 무대 설치비 및 제반 비용까지 티켓 값에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수익성과 효율 때문에 5천 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도 찾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예술의 전당 등의 경우는 대중음악 공연이 주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배제한다)

일례로 역삼동의 한 공연장의 무대와 음향 시스템은 압도적이다. 100평 남짓한 공간에 악기, 앰프, PA를 포함한 음향 시스템에 무려 3억 원을 쏟아 붓기도 했다. 이곳에서 공연을 해 본 인디밴드와 직장인밴드는 정식 공연장에 버금가는 사운드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공연 문화의 확산에 기여하는 KT&G의 ‘상상마당’ 또한 좋은 공연장으로 손꼽히는 장소다. 무대가 넓고 값비싼 장비가 있는 것만이 좋은 공연장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연장과 뮤지션의 순서를 따지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없다. ‘좋은 공연장이 있어야 좋은 뮤지션들이 많이 나온다’는 주장과 ‘좋은 뮤지션이 많아야 좋은 공연장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처럼 합치될 수 없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다. 공연장의 범위를 홍대 주변으로 국한한다 해도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과 음악을 즐기는 직장인밴드가 갈 수 있는 공연장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적인 경제 논리에서 수요를 감안하지 않는 공급은 어폐가 있지만, 지금은 양보다 질이 우선시되는 세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중과 뮤지션, 그리고 그들의 다리가 되는 공연장. 세 무리의 적절한 합의점이 도출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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