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영 전 경찰청장

이민정l승인2012.03.05l수정2012.03.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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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는 새롭고 창의적인 리더십을 가진, 창조적 지도자를 필요로 하는 시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국가, 혹은 민족의 위기 국면에 그 국가와 민족 지도자의 지도력과 창조적인 리더십이 부재했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불어 어떤 국가나 민족의 발전과 부흥에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유능한 지도자가 존재했었다. 2012년 정치적, 사회적 전환기를 맞은 우리 사회는 그러한 창의와 원칙을 겸비한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고 밝고 투명한 사회의 건설을 위해 지난 30여 년간 경찰에 몸담아 온 이무영 전 경찰청장의 지난 삶이 바로 그러한 지도자상에 부합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라는 특수한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을 소유한 지식인이자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민정 기자 meua88@epeopletoday.com



새롭게 거듭나는 경찰상,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지난 2010년 한국경찰연구학회장인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의 연구논문 '바람직한 한국경찰의 리더십'에 따르면, 전국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현직 경찰이 가장 존경하는 경찰청장이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 경찰관들은 이무영 전 청장을 1위로 꼽았다. 일평생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했고 특히 경찰조직의 민주화를 통해 투명성을 만들며 경찰개혁을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렇듯 경찰 내부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꼽힌 그는 "과거처럼 낡은 권위의식을 지니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경찰이 아닌, 민중의 지팡이로서 국민들을 하늘처럼 섬기려는 마음, 국민들에게 봉사하려는 자세가 진정한 경찰의 마음가짐이자 책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장 재임기간 동안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경찰의 위상을 확립시킴으로써 경찰들 스스로 조직에 대한 자긍심과 애착을 갖도록 하는데 크게 일조한 이 전 청장은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경·검 간 수사권 분쟁'을 언급하며 경찰조직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현직이던 당시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했던 것에 안타까움을 전하면서도 경찰 수뇌부들이 지혜롭게 대처하길 바라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아직까지 경찰과 검찰이 수직적 관계에 놓여있는 비합리적 구조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으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작금의 우리나라 경찰이 주체적인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 전 청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내사까지 지휘하겠다는 검찰 측의 요구는 사실상 경찰의 존재 자체를 무력화 하겠다는 자세로 이번 기회에 주체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이 전 청장의 생각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경찰과 검찰이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 협력을 도모함으로써 대한민국에 선진적 법치문화가 자리할 수 있다고 이 전 청장은 강조한다. 2년간의 경찰청장 임기 동안 산적한 경찰개혁의 현안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는 그로서는 작금의 상황에 큰 관심을 갖고 그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경·검 분쟁의 본질이 경찰조직의 집단이기주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민들의 안위와 국가 발전을 위한 목적에서의 쟁투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한다.


'청년정신'으로 무장한 '경찰개혁'의 주역

이 전 청장이 경찰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지난 1971년이었다.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봉사경찰, 시민 편에 서서 자유를 지키는 질서경찰’을 부르짖은 ‘근대 경찰의 아버지’ 로버트 필 런던 수도경찰청장과 같은 경찰이 되겠노라고 그는 늘 다짐했었다고 한다.

일본 경찰대학에 유학을 했던 이 전 청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자리 잡은 일본의 경찰제도가 합리적이며 국민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선진적 조직임을 파악하고 그러한 시스템을 한국 경찰에 이식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게 됐다. 당시 일본경찰은 ‘3교대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고 경찰조직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에는 맥아더사령부에 의해 쇄신이 단행됐는데 바로 일본 군국주의 체제를 몰락시켰고 그로 인해 인권의 신장, 경찰과 검찰의 상호 협력관계로의 재조정 등을 이룩했다. 원칙과 추진력이 기초된 맥아더의 리더십에 의해 일본경찰은 새롭게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것. 이 전 청장은 이러한 일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경찰의 ‘환골탈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 경찰의 가장 고질적인 세 가지 현실, 즉 눈에 핏발이 설정도의 격무,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 하는데도 미치지 못하는 박봉, 수사권 독립과 같은 각종 제도의 개선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경찰이 선진 경찰로 거듭날 수 없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드디어 경찰간부교육의 전 과정을 마치고 마포 아현파출소장으로 첫 발령을 받으면서 30여 년간 이 전 청장은 '봉사와 질서의 경찰'로서의 한 길을 걷게 된다. 처음 기대와는 달리 이 전 청장은 경찰에 투신했을 때 많이 실망했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히려 선진 경찰에 다가선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해방 후 25년이 훨씬 지난 당시에까지 일제 식민지 경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유지한 채 흘러온 것.

이러한 경찰의 구조에 이 전 청장은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독재와 부정선거의 하수인으로, 박정희에서 전두환에 이르는 군부독재 시절에는 정권유지와 인권탄압의 도구로 이용돼 온 현실에 강한 회의를 느꼈다. 경찰조직에 발을 들인 이상 스스로 경찰개혁과 혁신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로 다짐한 그는 치안 실무자였던 파출소장 때부터 조직개혁의 연구와 구상을 착실히 키워가기 시작했다.

서울과 지방 등 일선 경찰서 근무를 거쳐 총경으로 승진한 1984년, 대구 달성경찰청서장을 시작으로 경찰 내부의 비중 있는 간부의 길에 들어선 이 전 청장은 경찰청 형사심의관, 서울지방경찰청 형사부장, 전남?북지방경찰청장, 경찰청 보안국장, 경찰종합학교장, 경찰대학장 등 경찰 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경찰대학장 재직 중에는 경찰대 역사상 최초로 교과서 편찬위원을 구성해 교재 11권과 실무전서를 편찬하는 등 경찰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도 했다. 당시 경찰대학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은 이 전 청장을, 후배를 사랑하고 격의 없던 선배인 동시에 배움과 경찰로서의 원칙에는 추호의 양보도 없는 ‘경찰의 아버지’ 같은 존재로 기억하고 있기도 하다.
 


이무영 전 경찰청장은 경찰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청장으로 경찰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청장으로 꼽히고 있다.



원칙과 소신의 철학으로 세상 빛내는 ‘봉사자’

요령이나 편법을 모르고 오로지 원칙에 맞거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길은 강단 있게 고수해 온 이 전 청장은 천성적으로 부드럽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그도 경찰조직의 개혁을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하고 철두철미한 '청년정신'을 지닌 완벽주의자였다.

그래서였을까. 1999년 1월 경찰 역사상 ‘최루탄 없는 경찰’ 시대를 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거쳐 같은 해 11월, 제9대 경찰청장으로 취임하는 날부터 이 전 청장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경찰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과 함께 온통 한국경찰 조직의 혁신에 대한 구상뿐이었다.

이 전 청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경찰 내부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취임 직후 ‘전일제’ 혹은 ‘2교대근무제’였던 것을 ‘3교대근무제’로 곧바로 전환했다. 아울러 명령을 받고 움직이던 과거의 체제를 ‘자율근무체제’로 바꿔나갔다. 이는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수동적 경찰’이 아닌 스스로 판단해 행동하는 ‘자율적, 능동적 경찰’로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또 매일 사무실에 남아 잠을 청하던 서장들에게는 감찰까지 동원하며 퇴근을 권했고 그래도 사무실에 남은 서장들에게는 농담으로 숙박비를 요구하기도 했다고. 경직되고 딱딱한 경찰의 얼굴에 ‘인간적인 모습’을 심은 것이다. 관행에 익숙해지면 고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로서는 재임 기간 동안 이처럼 선진 경찰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붙잡고 있는 잘못된 문제들을 고치기 위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 전 청장은 경찰의 격무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창경 이후 54년 간 이어져 온 박봉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 데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전 청장은 세 차례 김대중 대통령을 알현했다. 당시 IMF 시절이었음에도 김 대통령은 열악한 경찰 상황에 공감했고 당시 전윤철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7,000억 원의 예산을 증액시킴으로써 경찰들을 격려했다. 이는 경찰 내부에 공공연히 존재해오던 부정부패 등 비도덕적 행위들을 근절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2년의 재임 기간 동안 500여 개의 개혁과제들을 정력적으로 추진해 완수한 그에게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등 국내 언론의 상찬은 물론 세계적인 시사주간지인 미국의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는 이 전 청장을 '아시아 스타 5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터진 강희락 전 경찰청장 등 전·현직 경찰 수뇌부들의 비리사건 당시 가슴이 아팠다고 고백한 이 전 청장은 경찰비리를 근절하려면 ‘인사의 공정성’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찰 최고 책임자인 청장에게는 어떤 외압이나 청탁에도 굴하지 않고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소신과 철학이 있어야 하며 그런 자세가 경찰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올해 대선에서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뚜렷한 의지와 실행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 행정경험이 탁월하고 경륜이 풍부한 솔선수범형의 대통령이 선출돼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경찰조직에서 떠난 지금도 시간과 기회만 되면 언제 어디서든, 국민을 위한 봉사의 자리를 찾아다니는 이무영 전 경찰청장. 투명한 공직생활의 경험을 살려 국가를 위해 일하고자 지난 2008년 국회의원에 무소속 출마해 전주 완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됐으나 뜻하지 않은 일로 의원직을 상실하는 시련도 겪었지만 그의 마음 중심에는 국민을 위한 '봉사'가 늘 자리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경찰 개혁의 선봉에 섰던 의지와 열정으로 더욱 밝고 아름다운 우리 사회를 위해, 이 전 청장은 제 한 몸 불태워 어둠을 비추는 양초처럼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헌신하고자 지금도 분주하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민정  meua88@epeople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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