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직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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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거(基據) - late 1980s

1988년 대도레코드사에서 출반한 ‘Friday Afternoon’ 1집으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대중가요 음반만을 제작하던 대도레코드는 무명 뮤지션들을 모아 한국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스래쉬 메탈(Thresh Metal) 장르를 선보였다. 메탈 전문 프로듀서도 없었고 장비 또한 열악했던 환경에서 만들어진 이 앨범은 믹싱, 녹음 상태 등 퀄리티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송 등 오버그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고 지하에서 활동하던 언더 뮤지션들에게 이 앨범의 발매는 일종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국내 메탈의 중흥기였던 80년대 후반 최초의 옴니버스 시리즈이기도 한 이 앨범은 1989년 2집, 1990년 3집이 연이어 발매돼 이례적으로 전국의 음반시장에서 대중가요 못지 않은 판매량을 올리기도 했다.

‘Friday Afternoon’ 앨범의 라인업은 현재의 록을 이끌었던 거장들이 돋보인다. 이미 1집을 발표했던 블랙신드롬과 피노키오, 그리고 보컬 김성면이 참여했던 밴드 ‘철장미’까지 쟁쟁하다. 또한 보컬 마경식과 기타리스트 이태섭의 조합 ‘아발란쉬’의 참여곡 ‘Farewall 99’는 국내 최초로 스래쉬 메탈 사운드를 들려준 수작이다. 이후 기타리스트 이태섭은 ‘철장미’의 김성면과 그룹 ‘K2’를 결성해 오버그라운드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작년 8월 재발매된 이 세장의 앨범을 들어보면 국내 록음악의 흐름은 물론 한국 록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록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록 중에서도 상당히 매니악(maniac)한 장르인 스래쉬 메탈과 헤비메탈을 주도한 점은 언더그라운드를 떠나 한국음악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거점이 된다.

기획 음반의 한계, 대중성을 배제한 위험의 결과

대도레코드에 이어 록그룹 ‘산울림’을 발매해 록음악 프로듀싱 경험을 쌓았던 서라벌레코드 역시 헤비메탈에 눈을 돌렸다. 역시 국내에 전무하다시피 했던 바로크 메탈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디오니소스’, ‘스트레인저’ 등 옴니버스가 아닌 언더 뮤지션 정규음반을 발매한 서라벌레코드. 특히 보컬 유현상과 걸출한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백두산’을 발매한 것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서라벌레코드는 작년 초 TV 음악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로 돌아온 임재범과 김도균, 그리고 김영진과 유상원이 합류해 영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아시아나’ 앨범 발매로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그룹 ‘아시아나’의 임재범과 김도균은 한국 록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한 뮤지션들이다. 특히 임재범은 ‘한국의 데이빗 커버데일’이라 불릴 정도로 주목받았고, 일본의 록그룹 ‘라우드니스’와 견줄 정도로 탈(脫) 아시아 그룹으로 위상을 떨칠 준비가 돼 있었다. 당시 영국의 언론에서도 아시아나를 주목하고 임재범에 대한 관심을 보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라벌레코드의 금전적 문제로 제대로 홍보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그룹 ‘아시아나’의 세계 진출은 성공하지 못했다. 서라벌레코드는 1992년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공연 유치 문제가 불거졌다. 공연 사고와 적자 문제를 감당하지 못한 음반사는 사회적 비난을 받으며 부도를 냈고 더 이상 음반을 기획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대도레코드의 기획자 김재선 역시 국내의 열악한 음반 제작 상황에 한계를 느끼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 뒤 록 음반을 기획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람과 듣고 싶은 사람은 많았지만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당시의 많은 록그룹들이 빛을 발하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이 때문에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는 더욱 명확해졌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은 점점 더 깊은 지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Rock in Korea - 1989

1989년 발매된 옴니버스 앨범 ‘Rock in Korea’는 현재까지도 록 컴필레이션 음반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정동 헤비메탈과 하드록을 표방한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현재에도 활동 중인 메이저 뮤지션들이다. 백두산, 시나위, 작은하늘, 카리스마, 외인부대, 사랑과 평화, 어린왕자 등 80년대 록을 선도했던 그룹들이 이 앨범에서 수퍼 잼(Super Jam) 열연을 펼친다.

임재범, 김종서, 홍성민, 김성헌 등이 보컬로 참여했고 강기영, 오태호 등이 앨범의 수록곡을 썼다. 작곡과 보컬 외에 록밴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타리스트의 리프(riff)다. 곡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주는 묵직한 기타 사운드는 록의 지향점이자 헤비 사운드의 정점이다. 백두산의 김도균, 리자드의 오태호, 시나위의 김민기, 사랑과 평화의 이병일, 무당의 이중산 등 쟁쟁한 기타리스트들이 세션에 참여했다.

이중 가장 주목할 인물은 그룹 ‘무당’의 기타리스트 이중산이다. 시나위의 신대철에게 베이시스트 정현철(서태지)을 소개했던 그는 한국의 개리 무어, 로이 뷰캐넌 등으로 불리기에도 아쉬울 정도로 뛰어난 기타리스트였다. 앨범 수록곡 ‘멈추지 않는 강’이나 ‘파라다이스’에서 펼친 그의 테크닉은 너무나 현란하다. 한때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 잠시 가입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적이다. 임재범, 김도균의 엽기적 행각과 달리 오로지 고행과 도의 경지를 위해 살아가는 듯한 그의 행보는 너무나 아쉽다.

안정적인 보컬과 파워풀한 세션 플레이의 조화가 돋보이는 이 앨범은 모든 수록곡이 시대를 뛰어넘은 수작(秀作)이라 할 수 있다. 임재범의 중저음을 매력적으로 살린 ‘the Same Old Story’, 김종서의 보이스 라인이 살아 있는 ‘파라다이스’, 오태호의 극에 달한 기타 테크닉이 돋보이는 ‘미로’와 ‘허상’까지 한국 록의 역사가 된 이 앨범을 꼭 들어보기를 권한다.(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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