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ICAAP) 조직위원장·건국대학교 이과대학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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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ICAAP)를 성황리에 마친 조명환 교수는 얼마 후 에티오피아에서 개최된 아프리카에이즈대회 폐막식에 올라 인상 깊은 연설을 남기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에 “덕분에 다른 나라에 원조 받았던 대한민국이 반세기만에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하자 무대 앞 앉아있던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그때 관중들의 얼굴엔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는데 이를 본 조 교수는 가슴 벅참을 느끼며 대한민국이 에이즈퇴치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짐하게 됐다.
 

이민정 기자 meua88@epeopletoday.com

‘에이즈’, 불치병이란 극단적 인식을 바꾸고

조명환 교수가 에이즈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85년, 에이즈가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1981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후였다. 머지않아 연구에 몰두하던 조 교수는 에이즈 퇴치는 과학의 발전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학의 힘으로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고 이로써 에이즈는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만성병으로 분류하게 됐지만 중요한 것은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조 교수는 아시아·태평양 에이즈 학회의 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사회활동에 뛰어들게 됐다.

에이즈에 대한 우리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그러나 조 교수는 에이즈가 전염되는 루트는 다른 전염병에 비해 한정적이고 특히 공기 감염이 아니라며 극단의 병이 아님을 전한다. 이어 에이즈는 주로 성관계에서 전염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에 수혈감염이나 모자감염, 정맥 주사감염이 있는데 이 나머지 셋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에 성 접촉에서 주의를 갖는다면 우리나라는 에이즈로부터 안전한 편에 속한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대략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감염자는 3,400만여 명에 달하는데 그중 아프리카에 2,400만여 명, 아시아에는 850만여 명이 에이즈와 싸우고 있다. 이 들은 대부분 가난을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있는 감염자들이 오히려 적은 숫자임에도 불구하고 더 우수한 치료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 교수는 과학의 한계를 느끼고 가난한 이들도 똑같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빌 게이츠 재단, 빌 클린턴 재단, UN기구 등 국제기구들을 통해 치료비 모금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세계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국가 위상을 높이다

우리나라 국민 5,000만 명 중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는 8,000여 명으로 그 수가 극히 드물다 하겠다. 그렇다보니 이에 대한 계몽운동이나 홍보가 부족한 데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에이즈 발견 30회를 맞아 지난 해 8월 아시아태평양에이즈대회(이하 ICAAP)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조 교수 역시 편견과 차별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이나 에이즈는 우리나라에서 큰 이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 교수는 굳이 ICAAP를 국내에 끌어오는 노력을 보였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던지는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어 그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에이즈는 우리나라의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는 에이즈로 인한 피해가 꾸준히 증가하며 그 수준은 어느 전쟁 못지않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라고 등한시할 시대는 지났습니다.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의 고통을 같이 분담하고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번 ICAAP를 국내에서 유치했던 것도 단순히 에이즈에 대해 알리려던 게 아니라 방금 말했던 화두를 우리나라 사회에 던져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주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조 교수의 움직임은 타이밍이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며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부를 쌓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몇몇의 사람들이 뜻한 바를 성취하고 나니 다른 차원의 행복을 갈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부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모르고 있던 중에 때마침 ICAAP이 유치되면서 그 방법들을 찾을 수 있었다.

조 교수가 에이즈 관련 전문가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단순히 에이즈를 퇴치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제 목적은 단순히 에이즈만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회에 기부문화를 고착시키고자 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 할 수 있는데 에이즈는 이를 위한 화두 중 하나입니다. 다만 에이즈 전문가로 알려진 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히 호소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난 8월에 열었던 ICAAP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따뜻한 사회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고 믿고 있습니다”며 이를 위한 조그마한 불씨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소소한 작은 재능들도 기부할 수 있습니다”

조 교수는 올해도 어김없이 분주할 예정이다.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에이즈·말리아아·결핵을 위한 국제기구인 UNITAID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운영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울러 국내에서는 ‘에이즈·말라리아·결핵 어린이를 위한 도네이션 아트페어’준비가 한창이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에서 얻어지는 수익금의 일부를 에이즈·말라리아·결핵 어린이에게 전할 기부금으로 사용하며 문화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조 교수는 내다봤다.

이번 행사에는 ICAAP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포함한 우리나라 300여 명의 유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기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정치적, 경제적 측면이 아닌 문화적 접근으로 재능기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평소 기부에 대한 뜻은 있었으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생각했던 작가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자신들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기뻐했다며 조 교수 역시 이번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또 다른 아이템을 구상해 다른 방식의 재능기부를 계속해서 찾아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ICAAP를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까지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던 조 교수. 각 나라에 원조를 받았던 우리나라가 반세기반에 이제는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났다는 것을 알리려 했던 목적만 달성해도 충분하다 생각했지만 각자 나름대로 기분문화가 스며있는 사회를 꿈꿔오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조 교수에게 새 목표와 의지를 다지게 만들었다. 방법을 몰라 망설이기만 하고 숨겨뒀던 기부문화에 대한 가치관들을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ICAAP 유치로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이라고 조 교수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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