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day 인터뷰] 이현대 공화춘 대표

  • 입력 2015.02.28 20:22
  • 수정 2015.03.13 17:24
  • 기자명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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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공화춘 이현대 대표
사진 = 공화춘 이현대 대표

 

 

[피플투데이 이재형 기자] = 인천차이나타운의 발전은 중국요리 전문점인 ‘공화춘’이 들어서기 전 후로 나뉜다. 2004년 당시 인천차이나타운은 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상태. 이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나서 인천차이나타운의 투자유치를 진행했지만 차이나타운의 투자 가능성을 보지 못한 투자자들이 이에 더딘 관심을 보이며 발전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공화춘의 신축건물이 완공되고 간판이 걸린 후 영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인천차이나타운의 투자가 급증했다. 이후 공화춘 근처 상권들은 그에 따른 발전들이 속도를 이루기 시작하면서 부흥을 이어 나가 현재 인천차이나 타운이 지역경제의 큰 축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공화춘’ 이현대 대표가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의 명물이자 중심으로 자리잡은 공화춘. 공화춘은 1905년 인천 설린동에 위치해 자장면을 정식 메뉴로 탄생시킨 중국음식점으로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의 부흥을 이끈 음식점이다.
▲인천차이나타운의 명물이자 중심으로 자리잡은 공화춘. 공화춘은 1905년 인천 설린동에 위치해 자장면을 정식 메뉴로 탄생시킨 중국음식점으로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의 부흥을 이끈 음식점이다.

 

 

공화춘, 인천차이나타운에서 그 빛을 발하다
이현대 대표가 설린동의 공화춘을 방문했던 당시에는 폐허와 가깝도록 간판만 달려있었다. 그가 선경지명이 있었던 것일까. 이현대 대표는 지난 2004년 경제발전의 불모지라 여겼던 인천차이나타운에서 공화춘의 간판을 내건 뒤 기어코 성공의 신화를 이뤄내고야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공화춘이 성공하기까지는 이 대표의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했다. 이 대표는 매일 아침 마당을 쓸고 물을 뿌리며 마당쇠 역할과 일명 ‘셧터맨’을 자청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부지런함은 호텔리어부터 카센터, 월미도에 위치한 130평의 대형 커피숍 대표, 그리고 용산의 ‘용일탕’ 대표 등 다양한 경험을과 서비스 계통의 굵은 잔뼈가 보탬이 됐다. 특히 지역의 화교들도 이현대 대표의 이러한 모습에 감탄하며 이 대표와 더욱 좋은 교류를 쌓고자 했다. 특유의 부지런함. 가난의 역경을 이기고자 시작했던 수 많은 일들. 그리고 그안에서 자연스레 만들어진 투지와 의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지금의 이현대 대표와 공화춘을 만들었고, 현재 공화춘과 인천차이나타운 지역 모두 부흥을 이루게 됐다.

 

 

 

 

▲사진 = 공화춘
▲사진 = 공화춘

 

 

좌절과 절망속에서 피어오른 한줄의 희망. 그것은 ‘사람’
지금의 공화춘 건물은 사연이 많은 건물이다. 그는 초기 인천차이나타운에 공화춘 간판을 걸 신축건물을 짓고자 계획한 뒤 부족한 자금을 매꾸기 위해 여러 기관에 투자요청을 의뢰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인천차이나타운은 쇠퇴했기에 그 누구도 이 대표를 믿어주지 않았고 그의 시작을 시기하는 질투들도 그를 힘들게 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가장 힘들고 간절했던 시기가 이 때라 회상했다. 이 대표가 부지런히 산 덕의 보답일까.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었던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그를 믿어준 한 지점장의 믿음과 지원 덕분에 공화춘 신축건물을 완공해냈다. 이 대표는 당시 그의 아내 역시 힘든 시기를 극복하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주었다고 회상했다.
“내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다시 0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어요. 지금 이 99점에서 1점을 더해 100점이 되기 위해선 신의 시험을 넘어야 했죠. 그 시험의 끝자락에서 나를 믿어준 한 사람의 손길이 제게 희망의 1을 채울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받았던 이 희망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사진 = 공화춘
▲사진 = 공화춘

 

 

2%의 갈증을 채워줄 오아시스(OASIS)가 많아지길 바라며
이현대 대표는 인천의 28번째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다. 그가 1억원 이상을 기부해야 하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기까지의 결정은 너무나 어려웠다. 특히 그는 본래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작게나마 소년소녀 가장들만을 몰래 선택해 배움의 길이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대표는 처음 소년소녀 가장을 지원할 당시에도 3명 중 한명만을 택하라는 권유가 어려워 한꺼번에 3명을 모두 지원하게 됐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이 대표는 머뭇거렸던 처음과는 달리 이후 뿌듯해지는 자신의 감정에 또 다른 감사함을 느끼며 세상에 또 다른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누군가의 2%의 갈증을 채워주고 싶다는 이현대 대표. 그는 현재 NGO조직인 한국자유총연맹(KFF)의 인천중구 지회장을 엮임하며 인천 곳곳의 오아시스가 되고자 한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고 나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그동안 몰랐지만 기부란 돈만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저는 세상을 다시 보는 시각도 가질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살면서 누군가 저에게 2%라는 도움을 주었다면 공부던 사업이던 잘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습니다. 저는 항상 더 나은 것을 하고자 할 때마다 조금의 목마름을 느꼈었고, 그런 아쉬움들이 늘 제 가슴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었죠. 부족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2%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며 조그마한 소망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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