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day 인터뷰] 정윤호 밀양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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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서성원 기자] =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과 함께 3대 아리랑의 고향. 이창동 감독의 영화 전도연과 송강호가 연기대결을 펼쳤던 장소, 삼랑진을 거쳐 낙동강이 몸을 푼다는 이곳. 경상남도 밀양시(密陽市)이다. 동쪽으로 가지산터널을 거쳐 울산광역시, 서쪽으로 우포늪이 유명한 창녕군, 북쪽으로 경북 청도와 접하고 있어 오래된 요지이기도 하다. 미리벌의 역사로 시작해 신라와 가야의 대립지역이었던 이 땅은 1895년 전국 36군으로 개편될 때 이미 밀양군이 되었다. 삼한시절부터 지방행정의 노른자위였던 밀양은 그 동안 지역유림의 반대로 직접적인 근현대 산업발전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근 밀양의 진정한 가치를 되살리고자는 힘이 밀양토박이들로부터 모이고 있다. 봄날처럼 따뜻한 겨울 어느날, 밀양 교동에서 정윤호 부의장을 만나 ‘밀양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커다란 체격 뒤에 숨은 세심한 ‘소통’의 배려
 
부의장의 일과는 아침에 사람진역 ‘민원방(민원을 위한 사무실)’ 방문부터 시작한다. 개인 사비를 들여 본인의 지역구 송지리에 만든 ‘민원사무실’은 풀뿌리 지방자치시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소이다. 간단한 응접테이블과 몇 개의 회의 테이블 및 직원 책상 한두개인 심플한 사무실이지만, 지역민들이 와서 언제라도 편하게 출입하며 민원방문할 수 있도록 한다.
180이 넘는 키의 정윤호 부의장의 장골을 보는 사람이 위축되기 십상이나 사람 좋은 웃음에 긴장이 녹는다. 생각외로 민원에 있어서도 매우 세밀하다.
“아침에 민원함을 보면 다양한 민원이 접수되어 있어요. 아마 이렇게 개인사비로 민원방을 준비한 지역시의원은 제가 유일할 겁니다. 모두가 가족같고 친구같은 지역민들을 위해 편하게 언제라도 민원을 제기 할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이 민원방은 정 부의장이 지난 6.4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가장 큰 부분이었다. 도시와 다르게 농민과 노인이 많은 지역에서 ‘민원’을 어떤식으로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지역노인분들은 대부분 민원제기에 대해 잘 모르고, 알더라도 절차를 불편해 해요. 또 대부분이 농민들이고요. 버스를 타서 1시간이나 1시간 반 와서 민원 내고 돌아가면 하루 반나절을 보내야 하면 하루 농사를 망치거든요. 이런 불편을 어떻게 감소시킬까 고민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지역내 민원방 개설이었죠. 하루 중 언제라도 편하게 와서 쪽지를 써 내고 가면, 다음날 모은 민원을 제가 한꺼번에 볼 수가 있습니다.”
 
안 되면 될 때까지 
 
정윤호 부의장은 민원방에서 모인 내용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보고, 가능여부를 판단한다. 오는 민원인은 서민층이 대부분이라 관심은 ‘복지’에 대해 많이 갖는다. 하지만, 최근 이슈가 되듯 ‘무상복지’가 그렇게 쉬운일은 아니다. 가능한 민원은 빨리 집행기관에 통보해 ‘처리가능’ 하도록 하고, 안 되면 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강구한다. 2~3번 연구하고 안 되면 비로소 민원인에게 안 되는 사유를 직접 설명한다.
“바로 보고 제가 대부분 판단하지만,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직접 현장방문을 해 봐요.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현장의 상황을 꼼꼼히 살펴보고 장기적으로 고민해야하는 내용인지를 봅니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사비를 털어 일본현장을 벤치마킹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밀양은 농업도시이고 딸기나 고추를 농사짓는 시설하우스가 많아요. 최근에 민원 중 많이 올라오는 것이 국제유가에 의해 요동치는 기름값 고민내용이었죠. 하우스를 ‘기름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었죠. 그래서, 바로 일본에 자문해 보니 쓰레기처리장 열을 이용하는 농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건너갔죠.”
정 부의장이 간 곳은 일본 남부에 위치한 규슈지방 나가사키 현이었다. 히로시마에 이어 제 2 원폭피해 도시인 나가사키는 무역항으로 전기와 조선, 철강이 주요산업으로 발전한 곳이라 하수종말처리장의 남은 슬러지를 또 다시 재활용하는 기술이 개발되어 있었다. 
“1박2일 일정으로 급하게 돌고 왔어요. 미쯔비시전기에서 개발한 기술력이 투입된 종말처리장에는 깨끗하게 슬러지를 건조하고 재가공해 무상으로 농촌에 공급하고 있었어요. 슬러지는 태워 열을 내고 무상으로 농가에서 지원받는 시스템이었죠. 굉장히 인상이 깊었습니다.”
벤치마킹한 신기술은 많았다. 특히 과일과 채소가 대부분 차지하는 밀양에 적용하면 좋은 예가 많았다. 지난 번 진주 바이오21센터를 견학하며 봤던 ‘기능성 과일채소’의 내용도 큰 감동이었다.
“전세계와의 FTA체결로 점점 농민들의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진주 바이오센터에서 오메가 3가 많이 함유된 기능성 농산물을 보니 꼭 우리시 농가에 접목시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유명한 얼음골 사과나 다른 브랜드들도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예를 들어 바람에 사과꼭지가 갈라져 상품성이 떨어지면 ‘사과쥬스’를 생산해 판매한다는 내용이죠. 이런 사과쥬스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맛 봤던 쥬스와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겠죠? 그래서 행정부인 시청과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며 지역 살리기에 애쓰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의 꽃, ‘자신감’
 
정윤호 부의장은 밀양 삼랑진 토박이다. 할아버지 시절부터 모두 밀양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7남매 중 6째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명랑하고 쾌활했던 정 부의장은 삼랑진초등학교 3학년때 ‘제1기 삼랑진 초등학교 야구부 창단멤버’로 합류했다. 
“야구를 한다고 처음부터 알리진 않았어요. 체격조건을 보고 선생님이 먼저 권유했죠. 내야를 보며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그렇게 슬슬 시작한 운동이 주가 되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요.”
고등학교 시절, 큰 사건이 일어나 더 이상 운동은 불가했다. 연습 때 날아오는 방망이를 보지 못해 그대로 맞고, 다친뒤에 늑막염까지 겹쳤던 것. 반년 이상 부상으로 쉬고 나니 휴유증도 심했다. 
야구를 포기해야 했고 꿈을 잃은 세상은 깜깜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운동을 접었으니, 대학포기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했다. 진로결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자 교사였던 매형은 오히려 반겼다. “어차피 운동을 계속 한다고 해도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선 사회를 몸으로 느껴봐라.”
정윤호 부의장은 6명의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가졌던 ‘아킬레스근’부터 치료하고자 했다. 부농이었던 집안이라 돈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가장 무서웠습니다. 사회에서 내가 갖고 있는 약점을 어떻게 극복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었죠. 그래서 사람을 많이 접해보고자 책세일즈 일을 시작했어요.”
그냥 사회를 접해보고 대인관계를 형성해 보고자 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책판매를 시작할 때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말을 꺼내지 못하기도 일쑤였다.하루 이틀 지나면서 몸과 입에 배이면서 자신감이 늘었다. ‘아 나도 노력하면 되겠구나’라는 희망도 생겼다. 과감하게 23세부터 시작한 사회 경험은 산전수전을 겪으며 ‘사나이의 세계’에 거침없이 파고들 수 있는 정도로 예리해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국제상사 관리과로 입사했다. 부산까지 출퇴근 하며 큰 기업의 인사관리, 조직의 생태를 배웠다. ‘경험’이라는 어깨 위에 ‘조직관리’라는 날개까지 달았다.
 
 
극심한 효심, 기회를 버리고 고향으로
 
승승장구, 사회에서 성공하며 위로 올라갔지만 편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는 것을 옆에 보면서 점차 초조해졌던 것. 
“아버지는 특히 제가 밭이나 논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농사를 아예 못하고 장사로 사회경험도 시작한 것이죠. 부산 회사에 출퇴근하면서도 하루하루 쇠약해지시는 부모님 옆에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졌어요. 그래서 아예 접고 밀양으로 내려온 것이죠. 외동아들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렇게 30대에 고향으로 내려온 정윤호 부의장은 민주산악회(YS 대통령후보 조직)에 들어가 조직부장일을 했다. 뛰어난 입담과 자신감으로 스피치맨 일을 도맡아 했으며, 대선 홍보활동에서 큰 경험을 쌓았다.
40대로 들어서면서 지역구 도의원 출마를 선언했지만, 보기처럼 쉽지 않았다. 공천이 불가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 큰 어려움이었다. 시의원 낙선과 재선성공. 정치를 하며 쓴 맛, 단 맛 다 경험했다.
“선거에 여러번 출마하면서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어요. 처음에 ‘세상을 바꿔보려고’ 정치를 시작했다면 지금은 ‘누가 한 명 희생해야, 다른 누군가가 편하게 발 뻗고 꿀휴식을 취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이 있고, 지역의 도의원, 시의원은 각각의 역할이 다른 거죠.” 


 
사심없는 정치를 실현시키며
 
정윤호 부의장은 그 동안 반 백년 가까이 봐 온 농업의 현실, 서민의 가려운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제7대 밀양시의회에서 제가 할 일은 지역대변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겁니다. 밀양의 농업이 제대로 살아나야 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타지역의 ‘성공농법’을 벤치마킹을 잘 해서 접목시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현장에서 나오는 소리를 직접 듣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우리 밀양이 지금은 열심히 벤치마킹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두고 보십시오. 2010년대를 거쳐 20년대에서는 전국, 전 세계에서 밀양으로 ‘선진농법’을 벤치마킹하러 오는 날이 있지 않겠습니다.(웃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긍정으로 오늘 하루도 열심히 논길, 밭길을 누비며 다닌다는 정윤호 밀양시 부의장. 그 땀의 결과로 선진농업도시 ‘밀양’이 새롭게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삼랑진> 
대부분 산지로 만어산, 천태산, 금오산이 북부와 동부의 경계지역에 솟아있다. 서부의 밀양강이 남으로 흐르다가 삼랑지 부근에서 낙동강과 만난다. 산지를 이용한 과일 채소재배가 많으며, 최근 시설하우스를 이용한 딸기나 고추재배가 활발하다. 경부선 철도가 통과해 경전선으로 갈라지는 경상남도 교통의 요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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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프로필>
삼랑진초등학교 졸
삼랑진중학교 졸
부산송도상고 졸
신한국당・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경남홍보위원
밀양경찰서행정발전위원회 부위원장
밀양시 축구협회 부회장
바르게살기협의회 밀양지회 부회장
민주평통밀양지회 협력위원장
법무부 밀양지청범방위 위원
제5대 밀양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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