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2006년 1월 29일 비디오예술의 선구자 백남준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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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백남준

독특한 비디오아트를 개척해낸 백남준. 그는 자신만의 파격적인 예술세계 안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정의와 표현의 범위를 확대한 예술가이다.
 

백남준는 1932년 7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경기중·고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에서 미술사와 미학, 음악학, 작곡을 공부했다.
1956년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뮌헨대와 프라이부르크 음악학교, 쾰른대학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백남준은 독일에 있을 때쯤 존 케이지, 조지 마치우나스 등의 영향을 받아 행위예술을 접한 뒤 행위예술가로 변신하게 된다. 머리카락에 먹을 묻혀 선을 그리는 것도 사실 백남준이 했던 퍼포먼스다. 이후 플럭서스의 일원이 되고, 미국 뉴욕과 독일을 오가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64년 미국 뉴욕에 입성한 백남준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B급 예술가였다. 주목받지 못하는 행위예술가였기 때문에 더욱 퍼포먼스의 강도는 세졌고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기도 했다.
백남준이 1967년 누드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과 공연하다가 샬롯이 경찰에 체포당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유명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백남준의 인지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었다. 기괴한 퍼포먼스 외에도 조금씩 시도했었던 비디오아트는 점점 백남준의 예술 세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백남준은 1974년부터 비디오 아트 설치 작업을 선보였으며 영상이 공중파 TV에 방영되는 등 점점 유명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전시되었고, 뉴욕뿐만이 아닌 전 세계 예술계에 큰 별로 남게 된다.
    

*플럭서스란?
 플럭서스는 '변화', '움직임',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으로, 플럭서스라는 용어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미국인 조지 마키우나스가 1962년 독일 헤센주의 비스바덴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플럭서스-국제 신음악 페스티벌'의 초청장 문구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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