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925년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후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좌되어 3년형을 받고 투옥하였다. 그 때 그의 수인 번호는 264번이었는데 그는 독립에의 사명감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 번호에 착안해 호를 육사로 택하였다.
1929년 출옥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정의부·군정부·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해 독립투쟁을 벌였고, 몸을 사리지 않는 왕성한 독립운동 후 1933년 9월 귀국해 육사란 이름으로 시집을 발표하였다.
1935년 시 ‘황혼’을 시작으로, 시조 ‘춘추삼제’, 시 ‘실제’ 등을 쓰며 시 외에도 한시와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냈고 1937년 후세에 길이 남은 시 ‘청포도’, ‘교목’, ‘파초’ 등의 상징적인 시들을 발표해냈다.
시인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독립 투쟁에 헌신해 총 17회나 투옥되었으며, 그의 대표작인 ‘광야’와 ‘절정’을 통해 식민지 하의 강렬한 저항 의지와 민족정신을 장엄하게 노래했다.
현재 이육사의 강렬한 혼과 민족애는 우리들에게 영웅시 되어있고, 최근 11월에는 이성일 연세대 명예교수가 그의 혼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그의 시 전편(36편)과 이를 영어로 옮긴 영문시를 함께 실은 시집 ‘The Vertex(절정)’을 펴내기도 했다.
한편 이성일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에 대해 “(이육사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저널리스트였고 그의 삶은 엄청났다."며 "그의 시는 ‘청포도’처럼 쉽게 읽혀지는 것도 있지만 ‘해후’처럼 난해하기도 한데 이것이 특징이자 장점이다. 독자들이 달리 읽을 수 있는 여백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