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 1926년 12월 28일은 나석주 열사가 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철도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후, 일본 경찰과 대치하던 중에 가지고 있던 총으로 자결한 날이다.
그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가 역시 일경과 대치 끝에 자결한 김상옥과 함께 1920년대의 무장 투쟁을 통한 의열단식 항일운동을 상징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나석주(羅錫疇, 1892.2.4~1926.12.28) 열사는 1892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당시 애국계몽운동단체인 신민회(新民會)의 서북지방 책임자인 백범 김구가 설립한 양산(楊山)학교가 있던 곳이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소년 석주는 양산학교를 거치며, 몸과 마음이 굳센 독립투사로 다져진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태극기를 만들고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국내에서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는 이 군자금들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송금하고 평산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관과 면장을 살해한 뒤 중국으로 피신했다. 이 후 임시정부에서 일하다가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6년 金昌淑(독립운동가)과 논의 한 뒤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식민 수탈 기관의 파괴를 목적으로 중국인으로 위장한 채 국내에 밀파되었다.
나석주 열사에게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 되었고 현재 명동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에 그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