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Today 인터뷰] 구승재 홈가이드 대표, 부산 제1의 생활정보지로 우뚝 선 홈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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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서성원 기자] = 늦가을 청사포의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한 조용한 사무실. 전망 좋은 언덕에 위치한 홈가이드는 여기 달맞이 언덕처럼 해운대 지역 상가지로 우뚝 솟았다. 1995년 창간 이후 2000년대 초반 지역 상가지의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현재까지 홈가이드를 이어오는데 우여곡절도 많았다. 여기 홈가이드 발전의 중심에는 ‘구승재 대표’의 호수 속 백조의 발과 같은 역동성이 존재했다. 이제는 생활정보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구승재 대표. 그의 경영철학과 지나온 청사진을 들여다본다.
 
 
19년간 550만 부! 해운대의 대표 생활정보지
 
부산벡스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 마린시티 등 부산의 새로운 심장이 되고 있는 해운대구. 이곳에는 20년간 집집이 제공하는 무료생활정보지, <홈가이드가> 있다. 홈가이드는 지난 1995년에 창간한 이래 19년 동안 550만 부가 넘게 발행되었다. 지역특색에 맞춰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하여 알찬 생활정보・최신정보를 격월로 공급한다. 단지 상가 광고영업에 급급한 다른 지역의 생활지와 차별성을 두며, 편리하게 색인하고 가정에서 하나의 ‘지역DB’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고 있다.
구승재 대표는 생활정보지 홈가이드의 개편작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가 전격적으로 개편작업을 진행하며 먼저 봉착했던 고민은 ‘생활정보지의 개념이 무엇인가’였습니다. 말 그대로 이런 잡지를 통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고 이로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고 생각하니 ‘과연 지금의 홈가이드가 나아가는 방향이 잘 된 것인가?’라는 고민이 시작되었고, 전혀 다른 홈가이드 편집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편집구성과 방법을 거쳐 지금의 홈가이드가 탄생한 것입니다.”
 
부산의 대표구, 해운대구의 생활정보지 홈가이드는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졌다.
우선 홈가이드는 해운대구의 5개 지역을 나눠 다른 책자로 배포 중이다. 해운대신도시, 해운대 우동(마린시티), 센텀시티, 재송지역과 반여지역이다. 표지부터가 ‘화이트’로 깔끔하며 디자인이 신선했다. 
가장 상가와 아파트가 밀집한 신시가지 지역의 책자는 명성만큼이나 두꺼운 지면을 자랑한다. 옆 색인은 색깔별 색인으로 되어 업종별로 보기가 간편하다. 
홈가이드의 첫 지면 역시 상가광고가 아니다. ‘해운대의 숨은 명소, 그곳을 찾다’ 섹션으로 지역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자전거 기획기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전거 전문점. 그 기획력이 웬만한 잡지보다 낫다. 음식점 분류도 횟집부터 분식, 한식, 아귀찜, 야식까지 최신 앱들을 따라간다. 요즘 한창 뜨는 배달앱인 ‘배달의 민족’과 MOU를 맺고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었다.
 
 
한국얀센 출신, 전국 1위의 영업력 - ‘한 번에 되는 일 있나요?’
 
구승재 대표는 오전에 출근해 정리작업을 간단히 하고 외근준비를 한다. 점심때 나가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는 현장업무에서는 상가 사장님들과의 대면 인사가 흔하다.
“지역 구석구석 안 다니는 곳이 없어요. 한 번에 되는 일이 있나요? 눈도장 찍고 또 다음에 들러 인사해야 마음이 움직이는 거죠.”
구 대표는 한국얀센에서 16년간 근무했으며 영남지부장을 지낸 엘리트 출신이다. 
“한국얀센을 지난 1999년에 그만두고 무엇을 할지 고심했어요. 쌀장사도 해 보고 했지만, 너무 쉽게 생각해서 실패했죠. 그 뒤로 눈높이를 많이 낮췄어요. 그리고 지난날 생각이 났죠.”
그가 한국얀센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던 인물은 바로 마케팅의 전략가로 알려진 장정훈 회장(전 존슨앤드존슨 국제담당 부사장)이다. “나는 매일 꿈꾸고 도전합니다. 그리고,무조건 성공할 것이라고, 내게는 성공할 권리가 있다고 자신에게 마법을 겁니다”라는 동기부여 이야기들이다.
구승재 대표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운 어떤 것’을 찾아 헤매는 방랑자이다. “모든 영업이 필드 중심의 영업이 되어야 한다”고 전하며 직원들에게 차별화된 전략과 집중력, 추진력을 강조한다.
이 차별화 전략처럼, 홈가이드의 표지부터가 바뀌었다. 마치 스티브잡스가 강조했던 애플의 디자인과 흡사하게. 
“차별화?!! 회의를 거쳐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지가 먼저더라고요. 선택 자체가 쉽지는 않았어요. 기존에 업체 광고와 다양한 박스문구로 가득했던 표지를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죠. 이를 거쳐 표지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구승재 대표의 캐치프레이즈는 ‘CHANGE INTO SOMETHING NEW’이다.
 
 
경쟁심리를 게임으로 즐긴 생각
 
구승재 대표는 초량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3형제 중 장남으로 성실함을 전해준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부산고등학교 구내매점을 36년간 운영하셨던 부모님은 새벽4시만 되면 준비를 하고 나가셨고, 해가 져야 들어와 항상 구 대표가 동생들을 챙기면서 가장 역할을 어릴 적부터 해야 했다.
수영중학교, 동아고등학교를 거쳐 동아대학교 ROTC를 경험하기까지 과정에서도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여주려 애썼다.
틈만 나면 구 대표에게 “봉창(옛이름)아,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가 자리 잡을때까지 뒷바라지할 테니. 최선을 다해 일하고 빨리 자리 잡아라”며 장남을 격려하면서도 남에게 지는 것은 매우 싫어해, 모든 경쟁을 게임으로 생각하고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렇게 경쟁심을 게임으로 유도하셨으니 전 자연스레 공부보다 운동이 좋아졌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육상은 잘 했어요.”
체육특기가 탁월하여 대학도 동아대학교 체육대학으로 진학했고 교수를 꿈꿨다. 하지만 높은 현실의 벽에 봉착했다. 체육교사를 하려고 해도 준비자금이 필요했다. 1983년, 먼저 돈부터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간 곳이 제약회사 부광약품이다. 그리고 짧은 기간 만에 전국 1위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연간 계약만 5억 이상이었다.
우수한 능력으로 1985년 한국얀센으로 스카웃되어 옮겼고, 3년 연속 전국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에 대해 두려움도 없고, 체육대학 출신이라 추진력이 남달랐어요. 무엇보다 몸에 고된 일을 하면서도 즐거웠으니깐요. 아침에 가서 사안 되면, 점심에 가 보고. 병원에는 야간이나 새벽방문도 많이 했어요. 시골에서 사 온 토종 참기름이나 수산시장 들러 해산물도 선물로 주고 그랬죠.”
이렇게 몸을 움직여 만든 결과는 ‘마음이 움직이는 기적’이었다. 점점 제품주문량은 늘어났고, 고속승진이 이어졌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한 때 도산의 위기도 극복해 왔다는 구 대표. 하지만 홈가이드는 현재 오프라인 온라인 광고시장을 따로 보며 새 도약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구승재 대표는 협력사 ‘배달의 민족’앱과 스마트앱 광고를 통해 지역지 사업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자리를 마쳤다.

<박스문 : 한국얀센 장정훈 회장은?>
제켜주도에서 2년 동안 독학으로 대입준비를 거쳐 서울대 약학대에 입학했고, 29살에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당당하게 한 학기의 등록금만 갖고 미 MBA유학을 떠났던 인물로 방년 34세에 한국얀센 초대사장이 된 전설적 인물. 
 
<구승재 대표발행인 프로필>
부산 초량 출신
수영중, 동아고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ROTC 19기 / 중위 전역
한국얀센 영남지부장 역임
현 모바일솔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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