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1598년12월16일, 이순신 장군 전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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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순신
사진 = 이순신

[피플투데이 정근태 기자] = 오늘로부터 416년 전 노량해전이 발발,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끝나고, 노량해전을 이끈 수장 이순신은 전사했다.

노량해전(露梁海戰)은 임진왜란 당시 1598년(선조31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과 벌인 마지막 해전을 일컫는다. 이 해전을 마지막으로 7년간 계속되었던 조선과 일본의 전쟁은 끝났고, 이순신도 이때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 80여척은 1598년 11월 18일(이하 음력) 명나라 수군과 함께 노량으로 진군했다. 1597년 9월16일 명랑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한 일본군이 이듬해 8월 18일 총사령관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까지 사망하면서 철수를 위해 노량 일대에 집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노량은 경남 남해군 노량리(설천면)와 하동군 노량리(금남면) 사이를 흐르는,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빠른 해협이다. 현재 남해대교가 서 있는 바로 그 곳이다.

사진 = 노량해전
사진 = 노량해전

이순신은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과 함께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부터 노량해협에 모여 있던 일본군을 공격했다. 조명(朝明) 연합함대는 하루밤 사이에 왜선 500여 척 중 200여 척 이상을 격파하고 150여 척을 부셨다. 나머지 150여 척이 다급히 도주에 나서자 조명 연합함대는 추격전을 전개했다.

 

바로 이 때, 갑자기 날아든 탄환이 관음포로 달아나는 왜군을 추적하던 이순신의 왼쪽 가슴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그는 “싸움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추격전은 계속됐다. 도주하던 150여 척의 왜군 함선 중 100여 척이 나포돼 단 50여 척만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용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뒤 명랑해전에서 참패한 왜장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은 회고록에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 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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