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산고을’식당, 맛과 질로 성공하여 우뚝 솟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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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기자 박정례] = 명산대찰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산에 좋은 절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5%가 산으로 돼있어서 전국 어디서고 고개만 돌리면 동네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조금 먼 곳에도 크고 작은 산이 즐비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조급한 마음과 생활의 찌꺼기들만 잔뜩 쌓인 기분이 든다. 하루 빨리 피곤한 일상을 털어내야겠다. 시원한 꽃바람 쐬러 절집과 가람이라도 찾아 가야겠다.

 

4월 초, 마음으로만 벼르던 수덕사를 찾았다. 때마침 수덕사는 꽃이 한창이었다. 어디라서 눈을 비켜 시선을 고장시키지 않을 수 있으랴 싶었다. 사방이 봄꽃이었다. 예년 보다 꽃소식이 일찍 찾아왔다는 말 그대로 앞 다퉈 꽃 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서 대웅전과 환희대까지 절 내부 곳곳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청정한 바람을 맞으며 원 없이 둘러보았다. 단청을 칠하지 않은 대웅전을 수덕사에서 처음 보았다. 옹이와 결이 살아 있는 나무 색깔 본래의 맨살을 내보이며 배흘림기둥이 서있었다. 신기했다. 이제까지 보아왔던 절집들은 하나 같이 갖은 치장을 마다하지 않은 여인네처럼 화려 찬란하건만 수덕사는 그렇지 않았다. 목조건물의 속성을 그대로 지닌 대웅전을 맞닥뜨리게 됐다. 장중하고도 멋있다. 앗, 그런데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배도 고프다.

 

끼니를 해결해야겠다. 들어오면서 보니 길 양쪽으로 음식점과 토산품가게가 즐비했다. 그런데 음식 맛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집을 선택하는 문제는 그날의 성공적인 여행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오랜만에 밥 한 번 잘 먹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은 집이 걸렸으면 좋겠다. 행복한 망설임의 순간이다. “음식은 잘 되는 집에 들어가야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친구의 당부가 삼삼하게 떠올랐다. 간판을 훑어보느라 바쁘면서도 획일적이고도 개성 없는 음식점의 겉모습들이 마뜩찮았다. 알지 못하니 딱히 가고 싶은 집도 없었다. S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다고 한 집이 어디야?”

“산고을, 거기 친절하고 좋아!”

“친절은 그렇다 치고 음식 맛은 어때?”

“음식 맛, 좋아. 좋으니까 권하는 거지......”

 

통화를 끝내고 식당을 찾아 갔다. 안을 들여다보려는데 앞치마를 입은 아저씨 한분이 어르신들을 부축하며 나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지나는 손님을 보면서 “어서 오십시오!”하며 손님맞이 인사를 쉬지 않았다. 친구 S도 저렇게 낚였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 일행은 셋이었다. 근처의 박물관에 볼일이 있어서 찾았다가 절 구경까지 하고 난 후 찾아든 곳이다. 들어오기가 힘들었지 자리에 앉자마자 우리 일행은 주문을 서둘렀다. 그러는 우리를 보고 “뭐 그리 급하시유~” 물 쟁반을 들고 오며 주인장이 방긋이 웃는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리가 나올까요?” 이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더덕정식, 산채정식, 비빔밥 다 맛있어요.”한다.

 

반찬 솜씨를 알려면 무엇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더덕정식을 골랐다. 일행 둘도 더덕 정식으로 통일했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위에 하나 둘 반찬이 놓이기 시작하며 부침개가 나왔다. “이게 무슨 전이에요?”하고 일제히 물었다. “도토리묵전입니다.” 하양, 빨강, 초록, 노랑...... 밥상에 놓이는 반찬의 가지 수를 보면서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풍성한 상차림에 감동했는지 K는 어느덧 주인아저씨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곰살맞게 굴었다.

 

“사장님, 반찬 다 나온 거예요? 이 친구 사진 찍고 싶어 해서요.”한다.

“아직 몇 가지 남았는데유~~”

“기다렸다가 반찬 다 나오면 사진 한 장 찍을래?”

때마침 k가 멍석을 깔아주니 잘됐다 싶어서 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저희가 모르는 반찬이 많네요. 호호 ” k가 다시 사장님을 바라보며 말한다.

 

처음엔 서빙 하는 틈틈이 한마디 씩 주고받다가 자연스럽게 인터뷰 모드로 들어갔다. ‘산고을식당’ 주인아저씨는 이름이 김영교 씨였고 주인아주머니는 손미숙 씨라 했다. 나이는 53세 동갑내기라고 한다. 다행이 바쁜 시간은 지난 것 같아서 미안한 감이 조금 덜했지만 이유 없이 캐묻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 같아서 르포작가라고 하자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시종일관 주방에서 빠른 손놀림으로 정신없던 바쁘던 안주인이 우리 앞에 마주 앉게 되니 진심으로 고마웠다.

 

반찬가지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많을 때는 서른세 가지 정도를 냅니다.”하며 음식점 창업을 하기 위해서 10년 이상을 준비한 이야기를 했다. “이건 오이꽃나물인데요. 산에서 직접 채취한 거예요.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납니다.”며 나물접시를 앞에 놔준다. 작은 열매가 오돌돌하게 맺힌 것이 뭐냐고 궁금해 하자 산야초장아찌라고 했다.

 

손미숙 사장의 설명을 들으면서, 버섯 반찬이야 익히 아는 바고, 더덕이나 두릅, 머위나물이나 우렁이무침 그리고 도토리묵무침아라든지 파장아찌 같은 것도 먹어본 식품이었지만 오가피나물과 방풍나물과 뽕잎장아찌와 산초장아찌 이런 것은 뭔가 싶었다. 방풍나물은 풍을 예방한다 해서 방풍나물이고, 오가피나물은 첫 순이 나올 때 잠깐 채취해서 나물재로로 사용한다고 했다. 남들하고 똑같은 반찬만 내놓게 되면 차별화가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반찬과 요리를 개발하는 노력을 많이 기울인 결과라고 했다.

 

사장님만의 요리 비법이 있는지 궁금했다. “음식을 잘 하려면 참기름 들기름 정도는 직접 짜서 쓰는 것은 기본이고요. 시래기나 장 종류도 농사를 짓거나 직접 담가서 일 년 쓸 것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음식 만들다가 재료 떨어지면 낭패에요. 오늘 더덕정식을 드셨잖아요? 저흰 자연식 위주로 하니까 천연조미료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요.” 나물을 무칠 때는 고유의 향이 살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마늘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산고을정식’의 특징이라고 했다. “음식이란 미묘한 것이라서 열 사람의 입맛을 다 맞출 수는 없다.”는 지론도 폈다. 열에 일곱 여덟을 만족시키는 데 목표를 두고 꾸준히 노력할 뿐이라고 했다.

 

주부로서 30년 차인 손미숙 사장이다. 살아오면서 “내가 만약 사업을 한다면 음식점을 해야지!” 가정하고 자연식을 배우고 준비하는데 보낸 햇수가 10년이라고 했다. 그 중 수덕사에서만 4년째인데 365일 문을 여는 동안에 가게를 쉰 것은 단 이틀뿐이었단다. 한 번은 작년에 85세 된 시어머니가 동네에서 가는 관광여행을 가고 싶어 해서 모시고 다녀오느라 쉬었고 또 한 번은 동갑내기들 모임에 참석하느라 쉰 것이 전부라고 했다. 하지만 바깥사장님인 김영교 씨는 ‘산고을식당’ 개업 이래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고 한다.

 

음식점은 누가 먼저 하자고 했는가 물었더니 “여건이 그렇게 흘러갔어요.” 하면서 IMF 때 얘기를 꺼냈다. 역곡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온 게 13년 째 되는데 건설업을 하다가 부도가 난 끝이었다는 사정이 있었다. 고향에 내려와서는 누님의 소개로 학교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서 흑자경영을 하면서도 부도를 맞았다고 한다. 전주(錢主)가 욕심을 내어 일부러 자금줄을 막는 바람에 거래처를 다 뺐기고 하루아침에 일손을 놓아야 했다는 것이다.

 


IMF 때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친 거다. 다시는 실패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며 불철주야 뛴 끝이라 충격이 더 컸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심신을 추스르느라 매일 아침 마라톤을 하며 ‘건강이라는 가장 큰 자산’이 있음을 깨닫고 재기의 칼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돈을 모아보니 수중에 쥔 돈이 500만원이었다. 산고을 식당은 후미진 장소에 있는 관계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들어오는 사람마다 큰 재를 못 본 곳이라서 그런지 때마침 비어있었다. 주인도 열심히 하길 바라며 싸게 임대해줬다. 보증금도 90일 동안 유예해주는 조건이었다. 아무리 그렇지만 주변에서는 “수덕사에 잘 못 들어가면 망해서 나온다.”는 속설을 들이대며 극구 말렸다. 주변에 음식점이 42곳이나 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경쟁이 여간 심하다 보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우리 애 아빠 고생 많이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하느라고 등이 굽었을 정도에요. 처음에 손님들은 ‘아저씨가 인사를 하도 열심히 하니까 들어왔습니다!’ 하는 거예요.” 한 번 온 손님을 다시 찾게 하려면 “아무리 그래도 음식이 맛있어야 하잖아요? 저희 집사람 손맛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답니다.” 김영교 씨는 아내인 손미숙 씨의 공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관광지라서 뜨내기손님일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경쟁도 심하고, 근무시간도 길고, 인건비도 비싼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서 자영업자들은 흑자를 내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음식 맛과 친절, 근면의 삼박자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주인인 손미숙 사장은 아침 7시 반만 되면 출근을 한다. 이날 이때껏 늘 그래왔다. 해서 8시 반에 출근하는 직원들이 오기 전에 주방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나물 삶아놓기, 밥 한 솥 해놓기, 된장 앉히기를 미리 해놓는다. 이 장사는 잘못하면 인건비 까먹는 장사라면서 손미숙 사장이 주방을 총괄하고, 김영교 사장이 홀 서빙과 손님맞이를 담당한다. 1년 동안은 절 입구에 서서 올라가는 관광객들에게 허리가 닳도록 인사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이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하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김영교 사장 같은 겸손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라토너의 집념과 헝그리정신과 정성스럽고도 뛰어난 손맛이 합을 이뤄 식당업으로 다시 일어선 케이스다.

 

반듯하게 커준 자식들도 이들 부부에게는 큰 자산이다. 주말마다 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는 24살 먹은 딸과 27세인 아들이 있어 더없이 든든하다. 김영교 사장님의 ‘산고을’ 식당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루 좋은 평판을 받는 이유는 이렇듯이 많다. 오직 하나(Only one)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식맛과 친절한 서비스와 부지런한 보살핌을 받으며 조용한 산사를 끼고 앉아 탐미(耽味)의 시간을 갖는 나그네도 덕분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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