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를 의미하는 빈 의자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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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철 화가
 
한 개인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상징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가치가 된다. 지석철 화가는 ‘빈 의자’의 작가로 통한다. 그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의자는 마치 만들다 말았거나 아주 오래되어 골격만 남은 듯하다. 적지 않은 세월과 만만치 않은 사연을 담고 있을 법한 표정의 의자 혹은 의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절대적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들은 여러 겹의 스토리텔링이 함축된 한 편의 시에 가깝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 의자’ 속 함축하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지석철 화가를 만나서 들어보았다.
 
화가의 길을 향해 묵묵하게 노력한 시간들
 

 
산과 바다가 있는 마산에서 7남매의 막내로 자란 지석철 화가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성악을 했다. 어릴적 성악을 했지만 미술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던 지석철 화가는 중학교 3학년 때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때부터 막연하게 홍익대학교라는 목표를 가지고 미술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그림의 처음 배울 때 첫 번째 선생님은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고 기초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그림을 시작하며 그림의 기초가 되는 데싱을 수 없이 많이 연습했다. 그는 예술가적 기질과 막내라는 자신감, 무엇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로 화가의 길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 가지 길만 보고 무지하게 화가의 길을 달려왔다.
 
지석철 화가가 목표로 했던 홍익대학교에 입학한 초창기에는 당시 유행하던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등의 전형적인 아카데믹한 수업을 받았다. 70년대 초 비틀즈문화가 밀려들면서 통기타가 득세하던 시절답게 혈기에 넘치던 대학생활의 기분을 홍대주변에서 자유로운 생활로 만끽하면서도 예술가적 기질을 발휘해서 오로지 실기시간에는 열심을 다해서 공부했다.
군 제대 후 복학하면서 ‘나를 지탱해주고, 자신 있어 하는 조형어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미술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쌓아온 뛰어난 데싱 실력에서 그 답으로 얻는다. 그래서 처음 시작하게 된 소재가 군대생활을 내내 함께 보낸 매트리스 쿠션이다. 이도 유화작업이 아닌 캔버스에 연필로 최대한 자세하면서도 미니멀하게 표현했다.
 
익숙한 것에서 찾은 새로운 시각

 
졸업 후에도 취업의 길을 가지 않고 홍대주변에서 작업실을 얻고 입시생 몇 명을 가르치며 작업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지석철 화가에게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제 1회 중앙미술대전에 출전하여 26살의 젊은 나이로 서양화부분에서 대상없는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이때 작품이 ‘가죽쇼파’ 시리즈로, 지석철 화가를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준 상징적인 작품들이다.
 
가죽쇼파는 홍익대학교 앞에 자주 들렀던 유정다방에서 그리게 되었다. 지석철 화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이 거쳐간 세월의 무게와 수많은 사연이 담긴 가죽의자의 등받이에서 묘한 감흥을 받게 되어, 가죽의 질감과 쿠션의 단추부분을 극대화 시켜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이렇게 아주 우연하게 늘 익숙하게 보던 낡은 가죽의자의 등받이를 클로즈업해서 그린 것이 ‘가죽쇼파’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그의 가죽쇼파 등받이는 작은 것을 크게 클로즈업함으로써 관객들은 전혀 다른 것들을 연상했다. 가죽쇼파 작품을 계기로 지석철 화가는 극사실주의 작업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사실처럼 작품을 그려도 관객들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것으로 작품이 해석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보는 즉시 이해될 수 있을 정도의 사실적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담겨있는 내면의 감성들은 관객들 마다 각각의 다양한 해석으로 열려있다.
 
이후 1982년 다시 한번 그의 작품세계의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왔다. 지석철 화가가 한국을 대표해서 설치작가로 제 12호 파리비엔날레에 초청받아 참여한 것이다. 파리비엔날레는 35세 미만의 젊은 작가만을 초대하는 국제 비엔날레로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꿈과 같은 행사이다. 이 파리비엔날레 때 그의 지금의 트레이드마크인 ‘빈 의자’를 만들게 된다.
지석철 화가는 배나무 과수원에서 배나무가지를 잔득 가져와 껍질을 벗겨보았다. 배나무 가지의 껍질 속에 있는 그 색이 자연의 세월과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아서 빈 의자의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배나무 원형의 의자를 공예기법에 쓰이는 특수 정밀주물로 떠낸 의자를 맥주잔 정도의 크기(12×6×6cm)로 200개를 준비했다. 파리비엔날레에서 이 의자들을 7m 길이의 벽면아래에 나란히 일렬로 배열했고, 설치물은 공간에 비해 아주 작았지만, 특별한 연극 무대처럼 경이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지석철 화가는 미니의자 설치작품으로 제 12회 파리비엔날레에서 120개국의 참가 작가들 중 ‘TOP 10 아티스트’에 선정된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또 다른 나 ‘빈 의자’
 
 
지석철 작가에게 앉지도 못하는 형태의 의자이면서 의자이기를 거부하는 미니의자는 현대생활에 찌들어 있는 인간과 동의어이다. 그의 작품에서 빈 의자는 인간 존재를 은유․의미 한다. 부재라는 명제가 역설하는 존재에 대한 기억과 소중함, 만남과 이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밀려오는 고독, 그 존재가 꿈꾸는 희망의 메시지들, 그리고 지난 세월의 속내 깊은 흔적들에 대한 애착과 연민 등, 의자는 오랜 시간 의자가 아닌 또 다른 어떤 것이 되어도 좋을 존재의 표상으로 대중들에게 읽혀지고 다가가기를 원한다.
미니의자가 갖고 있는 외로움과 우울한 정서와 지석철 화가의 작품에만 느껴지는 특유의 서정성과 현대적인 배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작품에서 다양한 정서를 만드는 것은 그가 살아온 배경과 연관이 있다. 마산이라는 산과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 보낸 학창시절의 정서가 현대적 배경과 미니의자를 만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외로움과 고독함 등의 다양한 정서들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이 모든 정서들은 지석철 화가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지석철 작가는 작품들에 대해서 망망 대해에 덩그러니 초라한 고물차 한 대가 간신히 몸을 버티고 서 있다.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미니 의자들의 잔상은 미미한 인간의 존재처럼 언제나 애틋하고 쓸쓸하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작품들의 소재도 시골 어느 농가에서 발견된 고물 자동차와 버려진 돌, 암울했던 시절의 난로 시들어버린 낙엽, 그리고 이제는 흔적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영웅들 이러한 것들이 미니의자와 어우러져 하나의 은유적인 현실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지석철 화가는 그림도 백화점의 진열대와 같다고 말한다. 백화점의 똑같은 물건을 보고도 사람의 취향마다 그 반응과 평가가 다르듯 그림도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그의 성향과 체질, 그림을 공감하는 대중들이 있을 것이고 지석철의 그림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감성적으로는 멋쟁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러한 면에서 대중이 가까이 하기 쉬운 의자는 지석철 화가에게 굉장한 강점이다.
미니의자와 자연과의 만남은 분명 현실 저편, 심연의 것에 대한 갈망이며, 비록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의 삶이지만 미니의자의 도상은 어쩌면 저 너머에 있는 희망찬 삶의 환희를 꿈꾸고 있다. 지석철 화가는 앞으로도 계속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계속될 다양하고 신선한 그의 작품세계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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