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예술 그리고 시대를 읽는 대한민국 1호 한국추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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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갑 화백
 
[피플투데이 박재찬 기자] 유산(酉山) 민경갑 화백은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대한민국 1세대 화가로 24세에 국전에서 한국화 부문 최연소 특선을 수상하며 화단에 입문했다. 31세에 국전 추천작가가 된 민경갑 화백은 60여 년 동안 한국인의 정서와 정체성을 ‘자연’이라는 큰 주제로 표현해왔다. 그는 자연 속에 있는 우리 고유의 성황당의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을 통해 한국화만의 새로운 멋스러움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예술계의 원로이자 우리시대의 어른 민경갑 화백을 만나 그의 작품세계와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듣고 우리 사회와 예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새로움과 우리 것의 공존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1호 한국추상화가
 

 
유산(酉山) 민경갑 화백은 1960년대 초 한국화 영역에 추상을 도입한 ‘대한민국 1호 한국추상화가’ 이다. 그는 묵묵히 외길을 걸으며 한국화의 ‘현대화’에 앞장섰고,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모두가 배고프고 어렵던 1950년대 거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의사, 판사가 되기를 희망하셨다. 민경갑 화백도 중학생 때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의사의 꿈을 가지고 생물반에서 공부했다. 생물반에서 해부도를 그리는데 그림에 재능이 있던 그는 해부도를 책보다 더 명확하고 깨끗하게 그렸다. 그림에 소질을 알아보신 생물 선생님은 그를 미술반에 가라고 권유했다. 이 일로 민경갑 화백의 미술의 길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미술선생님이 없어 혼자 그림을 그렸고, 서울대학교 입학을 위한 실기시험을 치루며 또다시 그에게 운명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당시 시험문제가 ‘해는 동쪽에서 뜨고 육각형 그릇에 있는 사과가 6개’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그림을 그리고 난후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니 다들 너무 잘 그렸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그림의 그림자는 모두 서쪽으로 있었습니다. 문제는 저는 그림자를 동쪽으로 그렸습니다. 해가 동쪽으로 뜨고 있기 때문에 그림자는 서쪽에 있어야 합니다. 제가 실수한 것입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지우개로 그림자를 황급하게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림은 더 지저분해지고, 다시 그림자를 그릴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서쪽의 그림자가 있는 그림을 제출할 때 저는 동쪽의 그림자가 있는 그림을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으로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봤을 때는 지우개로 지웠다 다시 그린 동쪽방향의 그림자가 질감도 있고 아주 특별한 작품세계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민경갑 화백은 2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동양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동양화는 난초나 대나무를 보고 그리는 것 정도로 동양화를 생각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아무것도 없는데 소나무와 새를 상상으로 너무 생생하고 똑같이 그리는 것을 보고 동양화가가 되기를 결심했다.
이후 민경갑 화백은 1953년 대학 3학년 재학시절 제 5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화단에 입문해 이후 1960년대에 초반 국전에서 동양화가로써는 한국 최초로 비구상으로 연속 3회 특선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민경갑 화백은 젊은 화가들과 함께 '묵림회'를 창립하는데 참여하여 전통수묵의 정신성을 현대회화에 도입하려고 했다. 이들은 대상을 단순화하고, 더 나아가 형태를 떠나 먹이 종이 위에 번지는 자발성 등을 추구하는 추상작업을 시도하여 한국화의 추상을 도입하고, 현대화를 주도했다.

끊임없이 ‘자연에 길을 묻다’ 민경갑 화백
 
 
지난 60년간 오로지 한국화라는 외길을 묵묵히 걸어온 민경갑 화백은 2012년 5월 무려 33년 만에 개인전을 가졌다. 대한민국 1호 한국 추상화가이자, 대표 원로 한국화가인 그가 이렇게 오랜만에 개인전을 갖게 된 데는 민경갑 화백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민경갑 화백은 한시도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고, 부스개인전 형식의 아트페어에도 간간히 참여했다. 그런데 개인전을 하게 되면 기왕이면 더 발전하고 완성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에 5년을 더 작업하고, 또 10년이 지나면서 작품이 변화 과정 중이었고 그렇게 5년에서 10년 시간이 흘러서 33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다.
 
민경백 화백의 작품의 변천과정은 우리 한국화의 산 역사이다. 1950년대 중반~1960년대에는 파괴와 도전의 시기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추상적 표현을 작품에 담았다.
이후 1970년대~ 1990년대 초반 자연과의 조화를 주제로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당시의 작품들은 ‘어떻게 하면 자연과 조화로울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작품을 그렸고, 산을 친화적으로 표현하는 작업들을 주로 했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에는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작품을 시작했고, 이 시기의 작품들은 산을 단순화시켜 감정으로 표현했다.
그동안 자연의 조화와 공존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온 민경갑 화백은 우연한 기회에 성황당을 보았다. 이때부터 성황당에 깔려있는 한국적인 정신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2000년~2002년에는 ‘자연 속으로’라는 자연이라는 큰 주제와 함께 성황당의 오방색 띠와 색조를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이러한 작품 활동은 발전되어 기학적으로 되었고, 이러한 작업들이 동양적인 것이 아니어서 이 작업을 중단하고 새로운 작업의 지평에 들어서게 된다. 2003년~2009년은 그는 이미 자연의 섭리가 다 정해져 있다는 의미의 무위라는 주제로 작업한다. 이 기간에 민경갑 화백의 작품은 자연에 정서적으로 접근한 표현을 했다.
이렇게 자연의 섭리가 다 정해져 있다는 무위를 주제에 너무 의존해서 작업하면서 작가로서의 창조성에 대한 반성을 했다. 이를 발판삼아 2010년~2013년에는 진여라는 주제로 작업하기 시작한다. 진여는 진실하게 작품세계를 파고자하는 의미이다. 이 진여를 주제로 한 작업은 색을 최소화하고 먹을 주로 사용하여 정신세계를 표현했다. 2014년부터는 잔상이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민경갑 화백의 작품은 자연과 조화와 공존에서 출발해서 자연 속으로 되돌아가 그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세계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그의 작품에는 동양철학의 천지만물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합일론에 근거하고, 이는 결국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고, 유는 다시 무로 통하는 순환원리를 담고 있다. 60여년을 작품 활동을 했고, 이제 팔순이 넘은 원로화가 민경갑 화백은 아직도 자연과 작품 앞에서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예술의 나아갈 길을 묻다
 
민경갑 화백의 고민은 자연과 작품뿐만이 아니다. 그는 다양한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시대의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걱정하고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상하좌우가 소통이 안돼는 사회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가정, 학교, 메스컴 등 수없이 많은 곳에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정교육의 문제가 심각한 합니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내 자녀만 옳고 내 자녀만 애지중지 키워 나밖에 모르는 아이들로 만들었습니다. 학교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선택과목과 필수과목이 나누어져 있어 지리, 윤리, 도덕, 습자, 음악, 미술 등은 접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동아리 활동도 없습니다. 내신점수로 아이들의 경쟁만 부축이고 있고 교사의 권위는 실추된 것이 현실입니다. 매스컴도 우리 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판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밖에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비판하지도 지적하지도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민경갑 화백은 예술과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예술은 우리 사회의 모든 행위의 기초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와 만들고 하는 모든 것들은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인간의 창의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창의성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데 이 창의성의 힘은 예술이다. 건강하고 힘있는 사회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에 힘이 되는 예술에 관심과 투자를 통해 사회의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이다.
추상한국화라는 우리 정서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늘 한결같이 고수하며 자연의 의미를 작품으로 재현하고, 우리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원로화가이자 우리시대의 진정한 선생님 민경갑 화백은 환갑이 지나 이제 22살이라고 말한다. 아직도 끊임없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주제의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유산 민경갑 화백의 앞으로 펼쳐질 작품세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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