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전통아악 및 무용문화 교류에 앞장서

  • 입력 2014.01.15 17:59
  • 수정 2017.02.02 16:47
  • 기자명 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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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투데이 정혜미기자]= 음악과 내면을 일치시키는 듯한 우아한 몸짓, 한국적 정서가 담긴 정겨운 가락 속 여성의 섬세한 곡선이 돋보이는 춤사위. 무용 40여년의 역사를 가슴에 품고 열정의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의 가슴에 영혼의 진동을 불러일으킨다. 한국무용계의 중견무용가로서, 대한민국 국악계의 진흥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정재연구회 김영숙 예술감독이 그 주인공. 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 석좌교수로 위촉된 그는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불리며 전통무악의 보존과 재현에 힘쓴 심소 김천흥 선생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정재연구회를 이끌며 심소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한‧중 전통아악 및 무용문화 교류에 앞장서는 김 감독을 만나 그의 ‘무용인생’을 듣고,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해봤다.

 

국악의 우수성을 알리는 예인을 만나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12월의 오후,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정재연구회를 찾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영숙 감독은 한국 무용가답게 단아한 자태를 뽐내며, 환한 미소로 기자를 반겨주었다. 김 감독은 “최근 정재연구회를 이끌며,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춤세계를 연구하고 있고, 아악을 통한 중국과의 인연으로 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 석좌교수로 위촉돼 중국 학생들에게 아악과 당악정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중국예술연구원과 공동주최로 ‘한중 전통악무 학술회의’를 열어 한국의 궁중무와 일무를 소개하고, 교류공연과 학술연토를 하였으며, 이어 2009년 11월에는 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한국 정재연구회․일본 서수아악회가 연합 주최한 ‘한중일 전통아악무용 국제학술포럼’에서 한국의 궁중무용 공연과 학술발표로 참여했다. 오는 12월 27일에는 중국 항주사범대학의 특별프로젝트《남송아악무 복건과 악무 일체화의 학과건설》의 일환으로 발표하는 “남송아악회성(南宋雅樂回聲)”에서 그간 지도해온 한국의 궁중무 공연이 예정돼 있어 여러가지 도움을 주고 있다”라며 근황을 밝혔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종묘제례악’의 우수성
종묘제례악은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5월 18일 유네스코에 의해 종묘제례와 함께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돼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종묘의 제례는 선왕이 이룩한 업적을 찬미해 신명(神明)에게 고하고, 후손들의 창성(昌盛)과 복록(福祿)을 구하기 위해 지극한 예와 조화로운 가무악으로 공경을 표현하는 엄숙한 의식이다. 종묘제례악은 제례가 진행될 때 노래하는 악장(樂章)이란 이름의 성악과 당상악(堂上樂)과 당하악(堂下樂)의 기악(器樂), 그리고 일무(佾舞)가 동시에 연행된다. 현재 매년 5월 첫째 일요일 오후부터 어가행렬로부터 영령전과 정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말기까지 조선시대의 국립국악원인 장악원(掌樂院)과 일제강점기의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현대의 국립국악원(國立國樂院) 등 국가 음악기관을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종묘제례악의 일무는 문무(文舞)인 보태평의 춤과 무무(武舞)인 정대업 의 춤 두 종류가 있다. 지난 2007년도와 2008년에는 한국음악의 재발견 ‘종묘제례악과 판소리’ 공연이 서울, 춘천, 거제, 남원, 영동, 전주, 창원에서 개최돼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2011년부터 전통예술 고궁 공연 관광자원화사업 일환으로 창덕궁과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4대궁과 종묘에서 ‘고궁에서 우리음악듣기’ 공연을 펼쳤다. 매년 10회에 걸쳐 종묘 재궁에서 열린 ‘해설이 있는 종묘제례악’에서 해설을 맡은 진옥섭 예술감독은 종묘제례악의 특징에 대해 잘 알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일반인들은 종묘제례악에 대해 생소하게 느끼죠. 실제 한국인들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찾는 편입니다. 연주곡만 들으면 지루할텐데, 역사적인 배경 등 설명을 통해 음악을 소개하니 다들 흥미를 갖고 지켜봐주셨습니다.”

 

 

 
 

평화를 부르는 소리 ‘만파식적’ 성황리에 마쳐 

지난 10월 2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무용극 ‘평화를 부르는 소리-만파식적’이 무대에 올랐다. 정재연구회와 이화여대 공연문화연구센터가 준비한 이 무대는 심소 김천흥(1909-2007) 의 예술자료를 이용한 ‘기억 속에 살아있는 무용극’의 두 번째 작품이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설화를 죽헌 김기수가 작곡한 국악창작음악 실황연주에 김천흥이 안무해 발표한 최초의 한국무용극 작품으로, 1969년 12월 서울 중구 명동에 있던 국립극장에서 처음 발표됐으며, 1970년에는 예술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심소는 1923년 무동(舞童)으로 뽑혀 순종 황제 50세 생신축하연에서 춤솜씨를 선보였는데, 이 때문에 '조선의 마지막 무동'으로 불리기도 한다. 2007년 향년 99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전통무악의 보존과 재현에 힘썼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보유자, 제39호 처용무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김영숙 감독은 “한국 근현대 예술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심소선생님의 유품을 바탕으로 작품을 재현함으로써 예술자료의 창조적 활용방안과 예술의 옛 시대정신을 구현했다는 평을 들었다”며 “개인무용가의 예술세계 및 근현대 한국무용사를 재조명하는 것이 본 공연의 목적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번 재현공연을 통해 1960년대 근현대 예술세계를 폭넓게 조명할 수 있으며, 자료를 적극 활용해 과거 작품을 오늘날 재현함으로써 살아있는 역사, 과거와 현대가 소통하는 통로를 모색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전통음악’에 매료돼 운명처럼 국악인이 되다
김 감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교육조교로서, 심소 김천흥 문하에서 1970년부터 수학했으며, 1960년대 <춘앵전>을 공연했던 KBS연구생 황옥선(黃玉仙)에게 2009년부터 유일하게 지도받아 전승해 3대를 이어오고 있다. 현재 그는 정재연구회 예술감독, 중국 항주사범대학 석좌교수로서 국제무대에서 한국 전통무용의 가치와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데 공헌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근처에 무용학원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가는데 장구소리가 들렸죠. 그 소리가 신기해서 안을 들여다봤고, 무용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매료돼 집에 오자마자 무용을 배우겠다고 부모님을 졸랐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서 극구 반대하셨지만, 그것이 계기가 되어 무용인의 길을 걷게 되었죠.(웃음)”
어린 시절 가족들 앞에서 춤추며 재롱을 피웠던 막내딸이었다는 김 감독. 남다른 춤사위를 펼치며 끼를 발산했던 그의 모습에 일찍이 무용가로서 성장할 것이라 모두 예상했을 것이다. “국악의 소리가 좋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한복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도 한복을 즐겨 입는다며 기품있는 자태를 뽐냈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외모가 한복의 고운 색감과 어울리면서 더욱 빛이 났다.
김 감독은 이화여중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무용의 소질을 키워나갔고, 고교 3학년 때 열린 이대콩쿨에서 한국무용부문 1등을 수상하면서 이대 무용과에 진학했다. 이후 대학교 4학년 말 국립국악원 무용단원으로 차출됐다.
“대학시절에는 궁중무를 실기 중심으로 배웠는데, 국악원에 들어가면서 이론적인 깊이도 쌓게 됐지요. 궁중무가 유학에 관련된 것이 흥미를 유발해 더욱 배움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졸업 후 76년 초까지 국악원에서 근무하다가, 이후 국악고에 재직했다. 국악고에서 종묘대제의 8일무와 봄‧가을 성균관에서 열리는 석전 문묘제례일무 지도를 맡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82년도에 이화여대에서 ‘현행일무고(現行佾無考)’라는 일무와 관련된 논문을 집필한 바 있다. 이후 1988년 종묘제례일무 전장을 발표하면서 종묘제례악 일무 이수자가 되었고, 1990년도에 전수교육조교가 됐다.
“성대 유학과에서 예악학 전공 박사과정을 이수했으며, 박사논문으로 ‘한국일무예술의 미학사상 연구’를 썼습니다. 일무와 관련된 일을 쭉 해오고 있으며, 내년에도 북경무도학원에서 일무를 지도하기로 예정돼 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으로 무용인생의 꽃을 피우다
“저는 심소 김천흥 선생님과 운창 성계옥 선생님, 이선주 이사장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심소선생님은 해금을 전공하셨지만 악과 무를 다 하셨죠. 궁중무를 지속적으로 지도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아호 심소의 뜻처럼 늘 밝은 미소로 사람들을 대해주셨고, 제자들보다 생각과 실천이 앞서는 배워야 할 부분이 많았던 분이십니다. 또 운창선생님은 76년도 국악고 재직당시 신혼여행지였던 진주에서 인연을 맺었고, 진주검무를 전수해 주셨습니다. 당시 선생님께 진주검무를 배운 계기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었고, 국립국악원과 중앙에서 진주검무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죠. 이선주 이사장님은 인천지역에 종묘일무와 문묘일무를 전승할 수 있는 터전을 열어주신 분입니다.”
“무용인이기 보다 생활인이자 국악인”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김 감독은 무용계에서 인기 예술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제가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과의 호흡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게도 원칙이 있었죠. 사심 없이 원리원칙으로 운영하는 것. 예술적으로 욕심을 내면서 단원들에게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지속적으로 정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왔습니다”라며 소신을 밝혔다.

정재연구회, 심소 김천흥 선생의 뒤를 이어 ‘국악의 대중화’에 힘써
정재연구회는 1996년 국악고, 국립국악원 무용단 출신의 무용가들이 결혼 후 설 자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것에 착안하여 창단되었으며, 초기 동호회 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월요일 궁중무, 토요일에는 일무를 연습해 공연준비에 열의를 쏟는 등 그 무대영역을 넓히고자 노력해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궁중무 계승을 위해 2007년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화동정재예술단을 창단해 2008년 ‘태후마마께 아름다운 춤을 올리나니’를 올렸고, 2009년 꽃과 나비의 궁중향연, 2010년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오순탄신연 등의 공연을 가졌으며, 단원들은 국립국악원 온나라무용경연대회에서 문화관광체육부장관상, 국립국악원장상, 동아일보사장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우리 정재연구회는 작은 단체이지만, 국가 중요 행사에 많이 참여했습니다. 심소선생님의 탄신 100주년 행사뿐 아니라, 지난해에는 선생님께서 1959년 창작한 처용랑 작품을 재현해서 공연을 했지요. 올해 만파식적 전장을 이대 삼성홀에서 재현했고요. 심소선생님의 일무, 궁중무 등이 그 시대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현‧발굴해, 다음 세대로 이어갈 수 있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 정재연구회의 역할입니다.”

또한 그는 후배들에게 “늘 공부하는 무용가이길 바란다”며 “이론과 실기의 조화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연구회의 발전을 위해 김영숙 감독은 늘 교육에 중점을 둔다.
“정재연구회는 의상과 소도구 등이 구축돼 있습니다. (사)아트컴판 후원뿐 아니라, 전문단체들의 지원이 확보돼 있어 회원들은 춤에 매진할 수 있죠. 행사에 초청받았을 때, 상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궁중무와 일무 발전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김 감독은 지난 2009년부터 종묘제례악 전장 발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계승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종묘제례악의 발전을 위해 토, 일요일만이라도 정재연구회에게 종묘의 악공청 공간을 제공해주면, 그곳에서 궁중무와 일무를 연습하고 발표하는 공간으로 활용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흥미를 갖고 있는 관광객이나 외국인들에게 일부 춤동작도 가르쳐주면서 한국의 전통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한다면, 대한민국을, 국악을 더욱 친숙하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한편, 김 감독은 최근 심소의 전통예술관련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것에 반색했다. 심소의 기록물은 사후 유족에 의해 (사)한국춤문화자료원에 기증됐으며, 기록물은 그의 생애와 예술 활동을 두루 아우르는 것으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공연현장에서 직접 제작‧활용된 대본, 프로그램, 사진, 의상과 소품 등 2.400여점의 다양한 기록물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김 감독은 “심소선생님의 기록물은 예술가 한 사람의 기록 차원을 넘어, 근현대 한국 예술의 역사를 담고 있는 사료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습니다. 또한 전통예술의 전승과 복원은 물론 새로운 예술의 창작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라는 것이 국가지정기록물 지정 사유입니다”라며 자부심을 표했다.

 

“앞으로 그간 연구한 것을 집대성해서 무보(舞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고자 합니다. 특히 궁중무를 이야기책 형식의 전집과 DVD 등을 제작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국악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전통춤의 원형을 지키면서 대중의 정서와 감수성을 반영한 창조적 무대를 추구하는 김영숙 예술감독.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단아하면서도 농익은 춤사위의 미(美)를 전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한국 국악계의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다. 앞으로 정재연구회를 주축으로 국제무대에서 국악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를 바란다.

 

<프로필>
이화여자대학교 체육대학 무용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유학과 예악학 전공(철학박사)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일무 전수교육조교
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 석좌교수
정재연구회 예술감독
인천향토춤사위연구회 부이사장
심소김천흥무악예술보존회 이사
운창성계옥교방문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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