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왈종 화백, 제주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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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왈종 화백/ 왈종미술관 설립자

[피플투데이 정혜미기자]=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창작의 근원으로,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온 이왈종 화백. 그는 전통 민화풍의 독특한 색감으로 한국적 자연미를 표출하며,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 즉 무릉도원(武陵桃源)의 세계를 화폭에 담는다. 이는 물질만능주의의 각박한 사회에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기정신을 담고 있는 것. 순수한 감성으로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감성적인 예술세계를 펼치는 이왈종 화백. 제주에서의 평화로운 일상, 인간과 자연의 어울림이 빛나는 그의 작품을 만나, 현대인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느껴보는 한편, 그가 추구하는 ‘중도와 연기’의 예술철학을 들어봤다.

 


깊어가는 가을녘, 왈종미술관을 찾다

제주의 절경, 서귀포의 푸른 바다를 감싸 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듯, 여유로운 미소를 보내는 왈종미술관을 찾았다. 한국 예술계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블루칩작가 이왈종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다양한 장르에 끊임없이 도전하던 이 화백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을 만들고픈 욕구로 미술관 설립을 계획했다. 미술관 건축은 스위스 건축가 DAVIDE MACULLO와 건축사 한만원 씨가 공동설계했다. 연면적 992m²의 3층 건물로 조선시대 백자 찻잔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는 미술관은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쳤다. 미술관 주위로 잘 가꾸어진 정원은 갖가지 꽃나무들이 가득해 향긋한 꽃내음이 진동했다. 깊어가는 가을 녘, 제주의 바람이 넘실대고 있었다.

 

전시실에 걸린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와 연기(緣起)’라는 글은 미술관 1층 바닥에 적힌 생활신조 ‘일체유심조 심외무법(一切唯心造 心外無法: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고, 마음이 곧 법이다)’과 함께 그의 예술관과 사상을 알려줬다. 미술관 3층은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 꾸며져 있으며, 2층 전시실에는 이 화백의 원화와 도자기, 목조각, 판화, 비디오아트 등 102점이 전시돼 있다. 또 한쪽에는 춘화(春畵)집과 춘화가 그려진 술잔이 전시된 ‘미성년자 관람불가’ 코너도 있다. 미술관 1층에는 수장고와 도예실과 더불어 ‘어린이 미술교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서귀포 평생학습센터 등에서 해온 서귀포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미술 지도를 이어가겠다는 작가의 의지였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배우는 것이 더 많다”며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이 화백은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소년의 감성으로 돌아간 듯 했다.
 

 


행복을 추구하며 그림에 일생을 바치다

 

지금껏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를 테마로 연작을 이어온 이왈종 화백. 그의 작품 화두는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가?”의 문제다. 이 화백은 “인간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덧없이 지나가는 나그네란 생각이 든다. 세상은 참으로 험난하고, 고달픈 인생이란 사실을 느끼곤 한다”며 “살다보니 새로운 조건이 갖춰지면 또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이어 없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에서 연기(緣起)라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중도(中道)와 더불어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일생을 걸었다”며 작품관을 밝혔다.

 

“사랑과 증오, 탐욕과 비움, 번뇌와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 모두가 다 마음에서 비롯됨을 그 누구나 알지만, 말처럼 그리 마음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니. 이러한 마음이 내재하는 한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서히 흰머리로 덮여가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작가노트 中

 

제주에서의 일상, 소박하고 풍요로운 풍경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이 화백은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소위 잘나가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홀연히 제주로 떠나 정착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추계예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사회의 혼란함 속에 속세를 벗어나고자 택한 길이었다고 한다. 그간 제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에 작업실을 마련해, 치열하게 그림을 그려왔다. 제주 특유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풍광은 그의 사람과 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됐다.

 

이왈종 화백의 화면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슴에 품고, 자연을 관조하는 작가의 따스함이 주조를 이룬다. 사랑의 멜로디와 자연의 아기자기한 형상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마치 동화나라에 초대된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작품 내용은 극히 제한된 소재의 반복이라 할 정도로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그것은 제주에서의 일상 풍경이다. 환한 낮에는 방안에 남자가 누워 책을 읽는가 하면, 남녀가 작은 차탁을 마주앉아 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정원에는 개와 사슴, 그리고 닭이 한가롭게 노닌다. 장독대와 담, 승용차, 그리고 한쪽에는 골프채가 놓여 있다. 이 화백 일상의 단면이 극히 서술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집 뒤로는 거대한 꽃나무가 화면을 감싸고, 활짝 핀 꽃들과 잎 새 사이로 새와 물고기, 배와 방갈로, 그리고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골프장의 풍경은 제주의 삶이 지닌 또 다른 풍요를 반영해주기도 한다. 골프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은밀히 암시되고, 무르익어가는 자연의 형상은 해학적이다. 화면마다 넘쳐나는 것은 꽃나무들이다. 동백, 유두화, 수선, 매화, 감귤나무,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제주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늑한 정취가 투명하고도 밝은 색채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순수한 구조적 진실함을 담아 예술의 깊이를 더하다

 

이왈종 화백은 물질문명의 저편에 감춰진 정신세계를 갈구하며, 지금껏 지치지 않는 자세로 붓을 들어왔다.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관을 화폭에 담고자 노력해온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자세는 순수한 구도적 진실함으로 캔버스에 피어오른다. 이러한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작품 속 꿈과 현실의 접경은, 작가의 갈망과 자연과의 교감을 담은 이미지로 시각화해 보는 이로 하여금 꿈결 같은 속삭임을 경험케 한다. 동양화법을 구사하는 그의 화력이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인 표현기법 속에 살아 약동한다.

 

이 화백의 작품은 예술을 향한 도전과 사유의 결과다. 조형적 틀이나 체계성을 벗어던지고, 속삭이듯 행복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그의 작품은 산들거리는 제주의 바람으로, 혹은 꽃잎의 날갯짓으로 우리의 귓가를 간질인다. 어린아이의 감성이 담긴 듯 소박하고 여유로우며, 단순화된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선다. 무엇보다 그가 이룩한 모던한 스타일은 회화적 풍미를 더한다. 이 화백이 추구하는 전통의 발전적 변용은 소재가 가진 진부성을 회화적 실험으로 보완하기에, 소위 ‘모던한 클래식’이라는 수사적 표현이 어울린다. 아울러 그가 만들어가는 표현 기법은 구도의 과정 속에서 깨우친 삶의 철학과 한국적인 자연미가 어우러져 있다. 매일 행복한 창작을 이어가는 이왈종 화백의 속내가 반영됐기 때문일까. 그의 캔버스는 행복한 얼굴이다. 미소가 가득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색감은 더없이 밝고 화사하다. 물질문명의 각박한 틈바구니에서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인들은 행복한 제주도 풍경 속 유토피아를 보며 저마다의 이상을 꿈꾸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쉼 없이 전진할 것”

 

“불교의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 했다. ‘인연으로 지어진 일체 모든 것은 꿈이나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고, 이슬방울이나 번갯불 같나니 응당 이같이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실체는 잠시 머물다 가는 것. 시간이 지나면 다 소멸된다. 세상만물이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심각하게 살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항상 긍정적으로 운명에 맡기며, 주어진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터뷰 말미, 이 화백에게 언제 가장 행복을 느끼는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새벽 3시’라고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고요한 새벽녘 잠에서 깨어, 막걸리 한 잔 그윽하게 마실 때 느껴지는 희열, 그것이 일상에서의 소박한 행복인 것 같다”고 말이다. 이 화백은 인터뷰 내내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만큼 진중했고, 더 없이 따뜻했다. 함축된 언어로, 표정으로, 때론 미소로 그리고 작품으로 뜻을 전달했기에 그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다가왔다. 손끝이 아닌,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는 그의 열정을 통해 위대한 예술작품의 탄생을 알리는 세계적인 작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다.

 

행복과 불행, 자유와 꿈,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꽃과 새, 물고기, 자동차, 동백꽃, 노루, 그리고 골프 등으로 표현하면서 오늘도 이왈종 화백은 그림 속으로 빠져든다. 붓에 그 자신을 맡기고. 이왈종 화백의 붓 끝에는 행복을 갈망하는 예술가의 심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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