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 칼럼] 인류 역사와 세잔의 사과

김여진 기자l승인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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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맛있게 먹던 사과는 이제 딸기와 수입산 오렌지에 과일의 왕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땅 심을 가장 많이 끌어당기는 채소가 당근이라며 매일 아침 사과를 넣어서 당근주스를 갈아 마시면 건강에 더없이 좋다고 한다. 제철 과일에 비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사과를 사려다 보니 새삼스럽게 사과가 한층 더 귀하게 느껴진다. 

때마침 어릴 적 금과옥조나 되는 것처럼 곧 잘 읊조리던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는 말이 생각나는가 하면 새엄마의 독 사과를 먹고 잠들어 있던 백설 공주가 왕자님을 만나 극적으로 살아나는 장면도 떠오른다. 

사과는 어쩜 그렇게도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는 과일이란 말이냐. 아담과 이브가 낙원에서 쫓겨난 이유도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정한 ‘금단의 열매’인 사과를 먹고서다. 이어 사과가 등장하는 ‘빌헬름 텔’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빌헬름은 정복자의 모자에 인사하지 않았다 해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쏘아 맞혀라’는 벌을 받는다. 화살이 빗나가 아들에게 꽂히기라도 한다면 아들의 목숨이 날아가는 판이다. 

그밖에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의 사과도 역사적인 일이다. 지구는 중력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원리는 인류의 과학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위대한 발견으로 자리매김한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고 이 중력은 우주에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가장 최근에 사과와 얽힌 이야기는 무엇인가?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회사의 이름을 애플사로 짓고 사과를  로고로 선택한 점이다.

2009년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연단에 올라 아이폰의 탄생을 알렸을 때를 기억한다. 외신이 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대중들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와 복음을 전하는 메시아를 보는 것처럼 아이폰을 조작하는 잡스의 모습에 열광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폰이 구현하는 모습은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는 결과를 낳는다. 사과는 이처럼 최첨단 산업인 IT 산업을 상징하는 로고가 되어 다시 한번 유명한 상징물이 되었다. 

예컨대 프랑스의 화가인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는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세잔의 사과에 대해서는 앞의 두 가지 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물 하면 세잔이고 세잔(?) 하면 정물 아닌가. 세잔의 후기 작품인 ‘생 빅토르 산’이나 ‘목욕하는 사람들’은 입체파 즉 큐비즘을 탄생케 한 가교역할을 한 위대한 작품이었다. 세잔은 사과를 그리면서도 기존의 원근법의 파괴를 통해서 물체를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기법을 사용했고 자유로운 공간구성을 창출하여 입체파 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자연은 구형, 원통형, 원추형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로 사물을 단순화된 기본형체로 집약하는 화면구성을 구축하고, 색채 분할법을 시도했으며 명암과 원근법을 포기하는 대신에 사물 고유의 입체감을 살려 인위적인 명암법을 구사하였다. 세잔이 1880년대 그린 인물화와 정물화는 바로 이 같은 형태와 구성이 빚어낸 조형적 질서를 추구하는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프랑스의 화가이자 평론가인 모리스 드니는 ‘세잔의 사과’에 대해서 또 이렇게 말한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껍질을 깎고 싶지 않다. 잘 그리기만 한 사과는 군침을 들게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기존의 개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사조를 여는 위대한 창조행위의 실험이었던 것이다. 세잔의 사과, 지금도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며 빛나는 마음을 건네고 있다.


김여진 기자  8434p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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