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화로 전하는 전통과 현대의 공존

운정 박등용 화백 임채은 기자l승인202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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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글의 조화, 그 속에 담긴 농담과 선의 섬세함은 간결하지만 동시에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간략한 묘사 속에 마음속의 사상을 담아 그린 문인화를 감상하다 보면 화백의 내면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문인화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현대화의 미감을 살려 독보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운정 박등용 화백은 현재 운정 서화실을 운영하며 문인화를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뜻을 이어 나간다. 

 

현대인이 즐길 수 있는 문인화
사물의 내면을 농담에 담아 표현하는 문인화는 먹과 붓이라는 단순한 재료를 사용하여 접근하기는 쉽지만, 이를 제대로 구사하기는 쉽지 않다.

문인화는 점과 선을 이해해야 하며,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와 시에 관한 연구도 필요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박등용 화백은 특유의 예술적 재능으로 도안사로 일하기도 하고, 산수화, 서예, 동양화를 막론한 그림을 다양하게 그려왔지만, 그중 제일 어려운 것은 문인화였다고 전했다.

“누구나 볼펜으로도 자기 이름 석 자 잘 쓰기가 힘들어요. 붓으로 쓰고 그리는 건 정말 노력해야 획 하나, 점 하나가 제대로 나올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항상 힘의 원리, 힘 있는 선을 강조합니다. 글씨든 그림이든 뼈와 살과 혈이 다 통하는, 그런 무게 있고 힘 있는 선이 우선되어야 해요.”
박 화백은 오랜 시간 한글 캘리그라피 서체 연구에 매진하여 ‘운정체’를 개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고전적인 문인화에 모두가 읽을 수 있는 한글 글씨를 아울러 일반 사람들 또한 문인화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한문을 열심히 공부해도, 사람들이 의미와 아름다움을 파악할 수 없다면 무용합니다. 앞으로는 일반 사람들의 눈에 들어와서 읽을 수 있고 마음에 들게 해야죠.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고 좋은 글씨가 있으니까 가급적 한문보다는 한글 연구를 진행합니다.”

이처럼, 박 화백은 문인화가 대중과 오랫동안 연결되기 위해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엮어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것을 탈피하지 않고, 전통의 근간을 이어 나가는 것이다. 박등용 화백의 그림은 옛날의 기법을 바탕으로 서양 재료를 사용하거나, 세밀한 그림을 접목하는 등 현대 회화 방식을 곁들이며 보는 이들에게 전통의 멋과 새로움을 안겨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성남시에서 운정 서화실을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많은 제자들이 박 화백을 거쳐 갔다. 또한, 지금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서화실을 방문한다. 
박등용 화백은 가르침에 있어서 점과 선의 ‘기본기’를 중시한다고 전했다. 기본기에는 왕도가 없다.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만이 결과로 증명된다. 결국 예술을 배울 때 우선되는 것은 처음의 실력과 기법의 능숙함보다는 그림에 관한 마음가짐과 태도다. 예술인으로서 품행이 정돈된 사람은 이미 기본기를 갖춘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사람의 글씨나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의 품행을 알 수 있고, 또 품행이 좋지 않으면 좋은 글씨를 쓸 수 없다는 얘기가 있죠. 자신이 좋아서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스로 작품 하나를 해봐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사람들은 그만큼 발전합니다. 마음가짐이 바른 이들이 붓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고, 그러므로 끝까지 할 수 있는 겁니다.”

재주가 있어도 그림의 깊이에 빠져들지 못하면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것이 박 화백의 설명이다. 

“노래를 잘해서 잠깐 활약하는 가수가 있는가 하면, 좀 못 불러도 노래를 좋아하니까 평생 가수 생활하는 사람도 있듯이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 이기지를 못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열정과 인내가 중요합니다.”

박등용 화백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한 연구에도 쉼 없이 매진한다. 그는 연구에 있어서 ‘자연이 제일 큰 공부’라고 말하며, 자연에서 얻어가는 것들이 참 많다고 전했다. 봄에는 매화가, 여름에는 장미가 좋고, 가을에는 국화나 코스모스가 예쁘게 피어있다. 박 화백은 철 따라 마음에 와닿는 것들을 그려내며 제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가기 위해
코로나19로 인해 미술업계 또한 타격을 입었지만, 규제 완화 등으로 점차 나아지고 있는 전망이다.

이러한 희망에 힘입어 박등용 화백은 문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전시회를 열어 문인화의 접근성을 높이고 싶다고 말한다. 박등용 화백의 바람처럼 앞으로 문인화가 더욱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코로나19 상황이 좀 풀리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시를 안 한 지가 좀 오래됐어요. 앞으로는 큰 욕심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문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전시를 자주 열어서 이런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몰랐던 분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계획입니다.”


임채은 기자  notalklat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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