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칼럼] 가을이 온 이유 -불합리의 합리성

  • 입력 2022.10.12 07:54
  • 수정 2022.10.12 07:56
  • 기자명 김용희 시인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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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가 그랬다 "자본사회에서는 비정상이 정상"이라고, 즉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면 비정상적 인간이 된다고…
한때 부동산 중개업을 했다. 2001년 도로변 작은 상가빌딩을 8억에 중개했다. 당시 보증금 제외하면 6억이면 구입 가능했다. 그 빌딩 구입자는 현재 월세가 650만원 입금된다. 어느 분이 2011년 부산 도심이 확장되는 지하철 입구에 15억에 작은 빌딩을 샀다. 지금 월세가 1500만원이다. 1층에 파리바게뜨 월세만 500만원. 그 빵집은 본 건물이 매매되는지도 몰랐단다. 빵집 월세만 해도 구입자금 이자 감당된다.
즉 건물 구입 당시에도 월세가 200만원 여분이 발생했다. 정보가 없어서, 초기 투자 자금이 부족해서 한정된 소위 운 좋은 사람이 구입한다.
명품매장에서 샌드백 하나 구입하려니 매장대기 순번이 한 시간가량 소요되어 몇 군데 돌다 왔다고 어느 분이 전한다. 친구들이 수백만원 짜리 가방 들고 나오니 혼자 몇만원 천 가방 가지고 다니는 게 기가 눌려 돌아봤단다.
윤정부 주택 100채 이상 가진 분 100명의 총 주택수가 2만 채 이상이다. 종부세 11억을 3억으로 낮춰주었다고 신문이 보도하고 있다.

친구가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밤에는 경비 낮에는 오토바이 음식배달을 한다. 배달료 한 건에 약 3~4천원 받는다고 한다. 지난번 그 오토바이 넘어져서 꽤 고생했다. 비 오는 여름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배달 오토바이가 뒤따르던 승용차에 부딪혔다. 도로에 넘어졌는데 다행히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우리 자본주의사회 구조다. 월세 몇백 몇천 받는 분들 많다. 그래서 명품 가방매장에서 물건 구입하는 것 자체가 기다림과 경쟁의 수고다. 

 

부동산 얘기라면 그 불합리한 구조 너도 나도 할 얘기 참으로 많겠다. 이러니 왜 힘든 근로 노동하려고 하겠는가. 식당 아르바이트해도 월 백여만원 남짓 받는데. 이런 사회구조에서는 끝없이 부는 편중되고 축적된다. 자본에 의한 종속현상이 불가피한 사회 그게 자본주의 사회다. 때문에 비정상이 정상인 사회, 정상적 온전한 정신으로는 비정상이 되는 사회다.

문정부 시절 서울아파트 평균 가격 6억이 12억 되었다. 그 가격 요즘 평균 11억 정도에 극히 제한적으로 매매된다.
뭐가 문제일까? 영끌족의 고통이? 상계역 벽산아파트 소형 월세 60만원이 요즘 80만원으로 올랐다.

부동산 불합리 구조 얘기하려면 끝이 없다. 무주택 세대비율 47%,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다. 이 문제 누가 해결해 줘야 할까? 무주택 인구수 약 2천만명, 그들은 목소리를 낼 줄 모른다. 조용하다. 무주택자 데모? 들어본 적 있나? 자신의 무능력과 숙명으로 산다. 싱가폴은 임대주택 80프로인데…

이제까지 소유론에 기반한 얘기했다. 
이제 존재론으로 가보자. 막스 베버는 건강한 자본주의를 말한다. 기독교 원리는 칼뱅과 루터의 직업 소명설을 말한다. 직업이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소명(calling)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의무이자 일할 수 있는 것이 또한 권리라는 것. 저번 시골 방문 시 형님 따라 논에서 피를 뽑았다. 벼 속에서 하는 작업이 힘든다. 밤을 주우러 가면 정말 허리가 아프다. 직장 재직 시는 수십년 동안 늘 오너의 시야에서 감시 당하며 상사 눈치 보며 몇 번의 해고의 고비를 넘겠다.
재직 시 회사 선전 로고송만 들어도 역겨워질 정도였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로 가고 싶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이런 이상사회? 그게 공산주의 구조다."
워련버핏이 그랬다 "왜 내 임대소득에 대한 세율이 근로소득세율보다 낮느냐"라고. 나에게 세금 더 부과하라고.

후배 교수와 음식배달 친구와 셋이서 가을 토요일에 만나 설렁탕에 막걸리 김치전으로 점심을 하고 도로변 야외에서 커피를 마셨다. 가을 하늘이 푸르고 바람은 피부 깊속이 청량감을 넣어주고 있었다. 가을 가로변 야외에서 마시는 커피가 향기로웠다. 이게 존재론이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의 고통이 잠시 존재의 즐거움으로 치환되는 시간. 우린 그 사이를 오가며 사는 것이다. 한가로워 보이는 중랑천의 해오라기는 사실은 물속의 고기를 사냥하고 있고, 엊그제 범고래 무리가 상어를 사냥하는 뉴스를 보여주는 것이 생태계의 현실인 게다.

세상구조를, 자본주의 사회의 메카니즘을 본다. 그렇다고 그 체제 부수고 공산체제로 가면 그건 이상사회가 아니라 전제적 독재의 전형이 된다는 것도 역사가 보여줬다. 해서 '유토피아'는 없는 장소라는 낱말 해석이다. 생태계의 구조는 약육강식 구조다.

시 공간 위에 잠시 머무는 모든 생명체, 아니 사실은 무생물도 생명체다. 지구도, 흙도 생성소멸하니 생명체다. 유라시아 판이 타 판과 부딪혀 융기하면 에베레스트산이 되는 모두가 생명체다. 그게 오묘함이라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고 따라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숱한 철인들이 알려줬다. 분노 질투하는 신은 인위적 신이요 오묘함은 신비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의 신에게 구원하고 희망하는 게다. 인간이기에…

 

불합리의 합리성이다. 가을은 바로 불합리의 합리성, 소유와 존재가 얽혀서 융화되고 화광동진 하는 것. 그게 모든 만물들이 서로 얽혀 상호 공존한다는 원리 아닐까. 요즘은 참 좋은 시절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가만히 느껴보면 모두가 신비요 환희요 감사의 계절이다. 소유론적 사회에서 존재론으로 사는 것,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온 이유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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