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끝에서 탄생하는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이미향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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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향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생생한 감정들이 전해진다. 이 작가는 본인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는 느낌이라고 얘기한다. 그에게 있어 그의 그림은 자신이 미처 돌보지 못한 내면의 감정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와 같다. 

그의 마음 깊은 곳 숨겨진 감정은 붓끝으로 전해지며 하나의 작품이 된다. 섬세한 붓질로 본인의 감정을 그려내는 이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일생 또한 스며들었다. 최근에는 그림에서 다 표현하지 못한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언제나 감정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이미향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보았다.  

 

바쁜 일상 속, 힘이 되어준 붓질
반구상 화법을 추구하며, 본인의 감정을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이미향 작가는 최근 자녀의 결혼과 출산이라는 경사와 동시에 개인적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느라 잠시 작품 활동에 휴식기를 갖고 있다는 근황을 전했다. 그런데도 이 작가는 하루도 붓을 놓지 않고 작업실에서 기본 2~3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예전에는 집에서 작업을 했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여유로워 3~4년 새에 집을 가득 채울 정도의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한다면 지금은 그림에 투자할 시간이 적어졌지만, 오히려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여유롭게 그림을 그리다 보면 긴장감이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지요. 최근에는 바쁜 일상에 잠깐 짬을 내 작업을 하게 되면서 긴장감도 생기고, 그 시간이 저를 이끌어주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평소 작업을 시작할 때, 작품 주제의 방향성을 잡는 것은 한 달 안에 가능할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방향성을 잡은 후부터 작품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작업 시간은 작품에 따라 1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 수도 있을 정도로 작업에 투자하는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다. 또, 이 작가는 원하는 색감이 나올 때까지 덧칠하고,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작품을 수정한다.  

“저는 작업할 때, 아크릴보다 유화를 더욱 선호합니다. 처음에 유화 시작할 때, 흰 백지에 힘이 들어가는 그 기분이 좋습니다. 또, 유화는 천천히 작업을 해도 된다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아크릴은 처음부터 50%의 완성도를 가지고 시작한다고 느끼기 때문에 밑그림 없이도 하다가 완성할 수 있는 유화가 좋습니다. 요즘은 그림을 긁어낸 후, 덧칠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통해 내면을 어루만지다
이 작가의 작품에는 항상 ‘장미’가 함께한다. 그에게 장미란 과거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사회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깊은 상처인 동시에 그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작품 소재 중 하나다. 이 작가는 장미가 아닌 새로운 소재를 찾아나서는 도전에 나섰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사실 요즘엔 장미로부터 탈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장미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어렸을 때부터 장미에 대한 기억이 계속 따라다녀서 작품 소재로 장미를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최근 장미에 너무 집착하는 기분이 들어 새로운 소재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장미를 포기하니 붓질이 많이 망설여지더군요. 결국 장미에서 벗어나고자 도전은 했었으나, 제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활짝 피어있는 장미뿐만 아니라 시간이 흘러 저물어가는 장미도 눈에 띈다. 새로운 미래에만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닌, 과거 지나간 시간까지 모두 경험으로 여기는 이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작가에게 작품은 다른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본인의 일생을 작품으로 기록하는 하나의 일기장인 셈이다.

이처럼, 이 작가에게 작품이란 미처 모르고 지나간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매개체다. 이 작가는 최근 심플해진 자신의 작품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다양한 감정을 겪고, 여러 경험을 했기에 큰 변화를 줄만한 자극이 없음을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가는 근래에 작업하고 있는 작품 앞에서 그가 느끼는 감정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바다 위로 바람이 불면 곧바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새로운 감정을 느끼면 마음속에 파도가 일렁이는 젊은 사람들과는 달리, 저는 바다 위에 내리는 잔잔한 비처럼 대부분 감정을 흡수한 상태입니다. 과거 힘들었을 때는 힘든 감정이 그림 속에 전부 스며들어 그림이 많이 어둡기도 했습니다. 이젠 세월이 흘러 쉽게 충격을 받거나 새로운 감정을 맞이할 일이 없다 보니 작품이 단순해진 것을 느낍니다. 과거보다 심플해진 작품처럼, 제 속에 어지러운 감정들을 덜어 내고자 합니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이 작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특별한 작품이 있다. 황금색 배경에 하나의 엉겅퀴가 담겨 있는 그림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한일교류전에 참여했을 때, 급하게 부탁받아 특별한 구상 하나 없이 급하게 그린 그림인데도 이 작가에게는 애정이 가는 작품이며,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구상하거나 심혈을 기울인 작품보다 어떠한 구상에서 벗어나 마음속에 있던 욕구들이 그의 붓질과 함께 흘러나오며 감정의 흐름대로 그린 그 작품에 더욱 애정이 간다며 웃어보였다.

 

틀에 갇히지 않은 ‘특별’하고 ‘다른’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이 작가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만날 수 있도록 작업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저는 그저 ‘틀에 매이지 않는 독특한 화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그림이 취향에 맞아 소장하는 분들이 더 많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 같아요. 또, 현재 저의 작품을 소장하고 계신 분들에게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제가 꾸준히 작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에 욕심이 컸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제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작품이 계속 공유되다 보니 조금씩 작품을 꺼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4년에는 개인전을 여는 것을 목표로 현재 작업을 진행 중에 있으며, 더 빠른 시일 내에 작품이 준비된다면 내년이라도 개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는 꽃처럼, 저물어도 다시 피어나는 ‘애(愛)’라는 메시지를 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어떠한 틀에 갇히지 않고 본인만의 작품 세계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특별하게 다르다’ 혹은 ‘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는 ‘독특하다’라는 표현을 빌려, 앞으로도 본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나갈 이미향 작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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