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을 떠나간 95세 현역 MC 송해 씨와 빈 스컬리

"전국~ 노래자랑, 빠바밤빰 빰빰!" 성일만 선임기자l승인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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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KBS

노욕(老慾)과 노익장(老益壯)은 엄연히 다르다. 마땅히 물러나야 할 때 민폐를 끼치며 남아 있으면 노욕이다. 반면 나이 들었어도 충분히 기여하는 바 있다면 노익장이다. 같은 노자 아래지만 욕과 익장은 천양지차다. 
국민 MC 송해 씨가 6월 8일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95세. 1955년 연예계에 데뷔해 66년 동안 꾸준히 웃음과 노래를 선물해 왔다.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던 1988년 5월 KBS의 <전국노래자랑>을 맡아 34년간 변함없이 국민과 더불어 살았다. 

지난 4월엔 '현역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도 꿋꿋하게 마이크 앞을 지켰고, 여전히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인다는 건강했던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는 너무 매정하게 느껴졌다. 
  
송해 씨는 40~50대 주부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최고 남편감' 1위로 꼽히기도 했다. "나이 들어서도 돈 잘 벌어다 주고 일 주일에 한 번씩 지역 특산물을 갖다 주니 너무 좋다."라는 이유에서다. 전국 노래 자랑 MC를 위해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빈손으로 집에 오진 않을 것이다.

송해 씨는 BMW 건강법을 꾸준히 지켰다. 독일산 고급 승용차를 말하는 게 아니다. 버스(BUS)와 지하철(METRO)을 타거나 웬만한 거리는 걷는다(WALKING). 앞 글자를 따 스스로 BMW 건강법이라 불렀다. 
송해 씨와 미 프로야구 캐스터 빈 스컬리 씨는 동갑이다. 아쉽게도 스컬리 씨는 6년 전 은퇴했다. 그와 송해 씨는 태어난 해(1927년)가 같을 뿐 아니라 여러모로 닮았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TV로 유명해졌고, 나이 들어서도 세월에 굴하지 않고 노익장으로 살았다. 

송해 씨는 황해도 재령 출신이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혼자서 고향을 빠져나왔다. 그곳에 두고 온 어머니와 여동생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 낡은 배 하나에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 자신의 예명을 바다 해(海)로 삼았다. 본명은 송복희 씨다. 
월남 이후 고생을 어찌 말로 다할까. 혼자 남겨진 타지 생활이 좀 녹녹했을까. 전쟁 중엔 통신병으로 복무하다 군 예술단으로 옮겼다. 제대 후 자연스럽게 악극단 활동으로 이어져 천직인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을 받는 자리에서도 "죽을 때까지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라고 당당히 밝혔다. 그는 조용필, 현숙과 함께 가장 안티 팬이 적은 연예인으로 뽑힐 만큼 세대를 아울러 사랑받았다. 

한창 인기를 얻어 가던 1986년 대학교 2학년이던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때 따라 죽을 결심으로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렸으나 나뭇가지에 걸려 구사일생했다. 2년 후 그는 운명처럼 ‘전국 노래자랑’ 사회를 맡았다. 그로 인해 국민은 즐거움을 누렸고, 송해 씨는 새 삶을 얻었다. 
빈 스컬리 씨는 어린 시절 신문 배달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오직 스포츠 아나운서의 꿈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1949년 보조 아나운서로 첫걸음을 시작했다. 이듬해 그는 정식 방송 데뷔를 했다. 
빈 스컬리 씨는 1950년부터 2016년까지 66년간 LA 다저스 방송 중계를 도맡아 했다. 미국에서 여든아홉의 나이에 생방송 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젊은 입들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데. 이는 송해 씨도 마찬가지였다. 

아흔다섯의 나이에 TV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TV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깡패(?)다. 인기 없으면 바로 하차다. 그런 '아사리판'에서 95세까지 마이크를 지켰다. 건강과 국민적 호감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2015년 7월 빈 스컬리씨는 다저스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가 내년에도 계속 마이크를 잡겠다고 발표하자 관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친 것이다. 약속대로 일 년 더 중계방송을 한 후 은퇴했다. 

빈 스컬리 씨는 박찬호 중계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대부분 현지 아나운서들이 "챈호 팍"이라고 부르지만 그만큼은 "찬호박"이라고 발음한다. 그만큼 정확한 발음을 위해 노력했다. 
야구를 어렵게 설명하지도 않았다. 투수가 던지는 구종은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스플리트 등 다양하다. 직구에도 투심과 포심이 있다. 스컬리 씨는 직구와 변화구 두 가지로만 말한다. 그러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가 은퇴를 발표하자 LA타임스 칼럼니스트 헬렌 엘리어트는 "스컬리 없는 다저스를 어찌 상상할 수 있겠나."라며 작별을 아쉬워했다. 스컬리 씨는 멋있게 퇴장했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웨일즈의 시인 딜란 토마스의 시를 인용해 다저스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이제 나의 종착역은 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신이 내게 준 시간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진 않겠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극렬하게 살아가겠다(I'll be raging)."

두 노익장은 우리 곁을 떠나갔다. 두 사람 모두 나이 들어서도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했으니 노익장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빈 스컬리 씨의 중계를 못 들은 지는 한참 지났다. 이제 송해 씨의 정겨운 목소리도 듣지 못하게 됐다. 일요일 정오가 되면 문득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질 것이다. 
  
“전국~ 노래자랑!”


성일만 선임기자  texan50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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