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석학교수가 추천하는 세계 문학 25선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응용화학공학부 하창식 석학교수

  • 입력 2022.03.08 18:47
  • 수정 2022.03.08 18:48
  • 기자명 서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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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어지럽게 건축자재가 쌓인 부산대학교 화공관 건물을 들어서자 노신사가 반갑게 인사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지만 동안에 편안하고 밝고 푸근한 미소가 '천성 교육자'의 이미지를 대신했다. 바로 부산대학교 하창식 전 부총장이다. 그는 '부총장'이라는 무게의 직함보다 '수필가'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융합'의 시대를 맞이해 이제는 공대생에게도 문학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문학적 기질을 바탕으로 대학생활, 대학원 생활을 이어 교수 생활 중에도 수필가로 활동해 온 하창식 부총장의 특별한 삶과 최근 발간한 두 권의 책 소개를 듣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의 기록 DNA
수필은 자신의 인생, 자연이나 현상에 대해 느낀 바를 자유롭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쓰는 글이다. 그 어원이 중국 남송시대로 올라가니 이미 1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창식 교수가 어린시절, 아버지는 홍매와 같은 분으로 기억한다. 철도공작창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 소반에 공책을 올려놓고 모나미 볼펜으로 매일매일 하루의 일을 기록하셨다. 그 내용이 특별하지는 않으나, 크고 작은 일을 활자로 남기는데 열중하신 분이셨다. 

항상 책상 앞에 앉아 계신 아버지의 영향이었는지 형과 누나 모두 모범생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중학교에 시절에는 성적이 좋아 담임선생님의 귀애를 독차지 했다. 국어 교과를 지도하셨던 담임은 종종 하창식 학생을 불러 '문제집'을 전했다. 넉넉치 못했던 시대에 여러 문제집을 가진 학생은 흔치 않았지만 하창식 학생은 여러 문제집을 풀며 '국어과목 사랑'의 동기를 얻었다.

전교생 절반이 '서울대'로 진학한다는 명문 부산고등학교로 진학 후에도 문예반과 고전반 활동에 열중했다. 전국을 무대로 진해 군항제 전국백일장이나 서울까지 가서 치루는 고전 경시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시험에 재밌던 기억이 있어요. 전체 성적에서 항상 국어는 월등히 좋았습니다. 특히 지문이 교과서 외에서 나오면 저에겐 보너스였죠. 한 번 시험을 못 쳤지만 평균 국어성적은 전교 1~2등 안에 들었어요."
중학교시절 풀었던 문제집은 자양분이 되어 고교시절 꽃피웠다. 수학에는 약하고 국어에는 강한 이과학생이었지만, 교지인 <청조(靑潮)>지 발간에 앞장서며 문학적 열정과 시간을 쏟았지만 10~20위권에서 성적은 유지했다. 

대학결정은 단순했다. 성적은 되었으나 하숙비 비싼 서울로 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당시 인기 높았던 지역국립대인 부산대학교 화공과로 정했다. 이미 큰형이 부산대 법대를 입학해, 집안에 법조인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다.

문학활동의 꽃은 부산대학교 화공과로 진학해 대학내 영자신문을 맡으며 활짝 피어났다. 직업 기자가 아닌 아마추어 언론인으로 대학언론은 주로 대학신문사에 집중됐다. 일반적인 동아리 생활에 비해 시간은 많이 뺏겼고 기수를 따지는 빡빡한 위계문화가 있었지만, 학과공부에 충실하며 수습을 거쳐 편집장까지 올랐다. 매주 발간하는 대학신문사 보다는 여유있게 매달 한 번씩 발간하는 영자신문 기자로 초기대학언론의 신뢰와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던 중 대학 2학년 때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바로 교토대학1호 한국인 이학박사로 유명한 이태규 박사가 부산대에 강연 왔던 것이다. 교토제국대 화학과를 졸업해, 양자화학을 가르친 이태규 박사는 경성제국대 이공학부 부장, 서울대학교가 출범하며 문리과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대한민국 대학교육의 선구자였으며 미국 유타대학 교수 은퇴 후 카이스트로 초빙된 분이다. 하 교수는 완전히 이태규 박사의 강연에 몰입해 순수한 과학자 모습을 바라보며 본격적인 연구와 미래의 꿈을 가슴속에 품으며 다짐했다.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진학해서는 격월간지 편집일을 맡았다. 석림지 창간호 바로 뒤에 합류해 2호부터 바로 하창식 교수와 교우의 손을 거쳐 하나씩 만들어 냈다. 대학원 수업은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석사 과정을 마치고 인생의 갈등이 다시 시작되었다.
'정말 화학공학과가 나에게 맞는 학문인가? 이 길로 가는게 맞을까? 인생에서 나는 뭘 선택해야 하나'
석사 후 몇 개월 동안 연지동 LG(럭키) 공장의 연구개발실로 취직해 활동하다 마치 기막힌 우연처럼 부산대 교수직 T/O 소식을 들었고 이듬해 1982년 모교로 발령났다.

교수로 부임 이후 연구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고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더 큰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중간중간 연구활동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모은 글을 엮어 '빨간타이어'라는 에세이집을  냈다.
"본격적 문학활동은 1996년으로 봐야하나요. 카이스트 박사를 마치고 10년 뒤 처음 낸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필전문지 <<수필>>을 발간하는 수필부산문학회 활동을 시작했고 등단했어요. 그리고, 한국고분자학회 공식학회지의 <쉼터> 코너에 칼럼을 3~4년간 투고했죠."

기본으로 돌아가라
하창식 교수는 이전 천주교 부산교구 40만 교인을 대표해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실에는 늘 베트남, 인도, 중국 등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제자 중 한 명은 베트남 과학기술원(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와 비슷한 기관) 부소장으로 승진되어 스승에게 공로메달을 전해 주기도 했다.

하창식 교수가 싫어하는 책도 있다. '자기계발서'류의 책이다. 
"코로나 이후 시간이 생기면서 50권 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생각의 정리도 할 수 있었고요. 다음 생에 다시 능력이 주어진다면 언어적 장점은 꼭 그대로 갖고 싶습니다. 영문서적, 번역서를 발간하고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생긴 깨달음이랄까요? 최근에는 라틴어를 매우 재밌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 속에 진리가 있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하 교수는 독자들에게 '고전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융합의 시대, 공대생은 어떤 책을 읽어야할까요? 사회에서도 알려주지 않고, 학생에게 기본만 전합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며 필요한 것,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말이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본질, 본성을 공부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려 하다보면 모든 개인과 사회는 평온해질 것입니다. 정의도 자연스럽게 지켜질 것이고요. 그래서 전 학생들에게 기본의 중요성, 특히 '고전문학'을 많이 읽어라고 말합니다. 2천년 전의 책이 오늘날을 사는 지혜를 알려주는 것이죠."
이에 <내게 울림 준 세계 문학, 스물 다섯>을 준비했다. 

 

<내게 울림 준 세계 문학, 스물다섯>
하루하루가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현대인, 특히 학생은 더욱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정말 시간이 없는데 기본적인 교양서를 읽어야 한다면 필히 이 책을 추천한다. 한 국립대학교에서 정년을 끝내고 석학교수로 재직중인 하창식 교수가 고르고 골라 추천하는 25개의 문학작품이다. 최소 준비에만 3~4년 이상이 준비되었으며 전세계를 아우르는 고전의 집합체다. 국내작품은 제외하고 대륙별 언어별로 서양작품으로만 구성한 점이 특이하다. 

 

<하창식 제5수필집 - 환승의 의미>
부산대학교 하창식 교수의 5번째 수필집, 산문집을 포함하면 10번째 책이다. 코로나시대 2020년 이후 글 쓰는 시간이 늘면서 일곱 주제의 수필을 엮었다. 39년 6개월 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석학교수로 특별 임용된 시점에서 '환승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이 책을 냈다. 무겁지 않은 주제로 손녀에 대한 사랑, 좋아하는 한식 이야기, 해외여행 추억과 문학적 기질이 강했던 그가 '공대'로 진학한 이유 등 마치 교수의 자서전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Profile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수필부산문학회 회장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회원

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회장
전 부산대학교 부총장

제50회 부산광역시 문화상
제26회 수필문학상
제15회 부산가톨릭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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