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환경 그리고 작가, 공존을 모색하다

조병철 작가

  • 입력 2022.01.17 23:42
  • 수정 2022.01.18 00:49
  • 기자명 설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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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록적인 폭우·폭설에 폭염과 한파 등 단순히 이상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바다 또한 어업 도구와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에 바다 생명체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는 계속해 인간에게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폐기물 및 재활용 소재에 기계적인 움직임을 더하며 환경과 생명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가 있다. 키네틱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조병철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치열한 삶 속 피어나는 예술 이야기
어릴 적부터 호기심 많던 그는 등교하던 중 나비를 쫓다 길을 잃기도 하고 개미를 보고 굴 안이 궁금해 온종일 땅을 파헤치기도 했다. 무언가 한 가지에 꽂히면 몰두하는 성격이었기에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 당시 자동차 공압식 엔진을 연구하시던 아버지 영향 탓에 집 안에 있던 각종 공구는 놀기 좋은 장난감이 됐다. 연구하는 아버지를 흉내 내듯 자신도 무언가 조립하며 만드는 일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는 부쩍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미술대학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혼자 힘으로 학비를 벌고자 이른 나이부터 평범치 않은 일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커피 자판기를 직접 수리해가며 자판기를 운영했으며, 대학에 와서는 새벽 신문배달로 시작해 저녁에는 학원 아르바이트까지 하루하루 치열하게 보냈다. 이후에는 요식업, 이사업, 자동차 세차 및 주차장 사업 등 남들이 한 번 하기 힘든 사업을 두루 경험해봤다. 몸소 부딪치며 쌓아온 사회경험들은 다양한 상상력을 끌어내며 훗날 작품활동의 원천이 됐다. 

 

생계비와 작품활동비를 마련해가며 어렵사리 작품활동을 이어 가던 그는 경기도 용인에 작업실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막상 작품을 바로 만들기보다는 난로 앞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정적인 조각품에 기계적인 움직임을 더하여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조병철 작가는 키네틱 아트로는 첫 작품인 ‘고슴도치’를 탄생시켰다. 폐철 소재로 만들어진 고슴도치는 날이 선 가시와 화난듯한 눈빛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작품은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정크아트 공모전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일터와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다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작업장에 화재가 발생해 그동안 만든 작품과 도구들이 새까맣게 전소한 것이다. 2개월 뒤 국제조각페스타를 앞두고 있었던 만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버려진 살구나무에 새 생명을 불어넣듯 'Root of Human'이라는 작품으로 일어섰다. 현재 중국 허베이성 국립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이 작품은 자그마한 모터에서 나오는 동력이 일련의 나무조각에 움직임을 불어넣으며 생명의 복원 과정을 담았다.

 

'자기 목소리 내는 작가' 위한 문화·환경 필요해
키네틱 아트 특성상 작품 판매수익이 거의 없다 보니 작품활동에만 전념할 수 없었지만, 그는 외부의 간섭이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기 생각을 자유로이 작품에 표현해냈다.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와인병을 매달아 갈등과 공존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Wave wine bottle'은 2017년 12월 중국 우한서 열린 제1회 생태비엔날레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세계 평론가로부터 그의 독창적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조병철 작가는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CPU전자 제어장치를 이용하기보다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오랜 기계장치의 감성을 전달하고 있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일상생활 혹은 꿈에서 얻은 영감을 스케치하고 머릿속으로 설계와 제작과정을 그려본다. 이후 능숙한 손의 감각에 따라 비례와 균형을 맞춰가며 움직임을 구현해낸다. 일반적인 작가들과 달리 오브제를 먼저 습득하고 오브제마다 새로운 역할과 물리적인 운동성을 부여하며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우리 시대 중요 화두인 파괴된 환경과 생명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또렷하게 전달하고자 한다. 네 자녀를 둔 아버지로서 ‘아이’와 ‘환경’은 그에겐 동일한 주제어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를 돌려줘야 하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이런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주체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현재 그는 어린 시절 체험했던 것들이 특별한 경험으로 각인되는 만큼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들을 구상하고 있다.

일과 작품활동을 병행하며 지칠 법도 하지만 예술창작은 그에게 뗄 수 없는 삶의 필수적인 활동이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변 시선이나 유행 때문에 조금씩 타협해가다 보면 작가는 결국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게 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들이 많을수록 우리 문화예술계가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한편 주위 작가들이 생계문제로 작품활동을 포기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빠진 걸 보며 많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여전히 작가들이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 여건은 부족한 실정이다. 지자체와 협회 등 단체의 지원은 미비한 수준이고, 제도적인 장치가 있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가령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설치되는 미술품의 경우 일부 작가들에게만 편중되거나 인맥으로 연결되며 다른 작가들에게 기회가 부여되지 않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작가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들이 우리 사회에서 향유되게끔 보다 실질적인 행정적 지원과 성숙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는 조병철 작가. 삶에 대한 진정성과 치열함이 느껴지는 그의 말과 작품 속에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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