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순수의 세계, '인간성'을 찾다

손문익 화백

  • 입력 2021.11.27 18:47
  • 수정 2021.11.27 18:51
  • 기자명 유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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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겨있는 특별한 곳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공통으로 갖게 되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여우도 죽을 때는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말처럼 한 번쯤은 누구나 자신의 근원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손문익 화백의 그림은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재현하며 고향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영위하던 공동체의 삶이 떠오를 것이며,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이들에게는 시골 풍경과 같은 자연적인 공간의 존재는 없을지라도 다시금 돌아가고 싶은 순수했던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동심의 세계에서 향(鄕)의 풍경을 재현한 손문익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향(鄕)을 통해 전해오는 '휴머니즘'자연을 가득 담은 따스한 감성
경상북도 영천 태생의 손문익 화백은 임고·금대초등학교, 영천중학교, 영천고등학교를 나오며 줄곧 영천지역에서 보냈다. 복잡한 도시와 달리 오염되지 않은 시골 마을은 그에게 자연의 감성을 일깨워주며 후에 화가로 성장하는데 큰 자양분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유독 자연의 품을 좋아했던 그는 산·하천을 뛰놀며 자연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감수성을 채워갔다. 산과 들에 핀 꽃과 그 위를 날아오르는 새 등 자연 속 피조물들은 훗날 그의 작품세계에 주요 소재로 등장하게 된다. 자연 속 동심의 세계는 그의 마음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미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표출됐다. 미술은 시나브로 그의 삶 속에 스며들며 그림 그리는 일은 그의 일과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었다. 
일찍이 그림 그리기에 소질을 보였던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참가한 미술대회마다 수상하며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후 본격적인 화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며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정진해갔다. 대학 졸업한 이후에는 대학 강단에서 약 8년간 강의하며 손 화백은 지금까지 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손문익 화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코 '향(鄕)'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공간 그 자체이면서 누구에게는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이상향이다. 어린 시절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소꿉친구들과 뛰놀던 공간, 그에게 고향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 그 자체인 곳이다. 손문익 화백은 지난 시절 아련한 추억들은 되새기며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아냈다. 
자연적 소재로 손 화백이 표출하는 그림의 언어는 세대와 상관없이 '고향'이라는 주제로 우리와 소통한다. 어른이 되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순수한 동심을 그림을 통해 잠시나마 돌아가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본다.
그가 이토록 향을 표현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머니 품과 같이 포근한 고향, 떠나간 연인 혹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그림 속에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모두 '인간'을 향하고 있다. 그림 속 자연적 소재들과 동화적 풍경들은 순순한 감성을 자아내며 감상하는 이들에게 넌지시 '어떻게 사는 삶이 좋은 삶인지' 묻고 있다. 
인간성(Humanism)을 담은 손문익 화백의 향 시리즈는 그간 우리가 잊고있던 어린 시절 순수하고 원초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그림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인간성을 회복하는 삶을 선택하기를 바라는 손 화백의 마음이다.  
"화폭 위에 단순히 물감이 아니라 따스함을 칠하고 싶습니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상실한 고향의 순수함을 표현해 현실에서 겪는 아픔과 슬픔을 치유하며, 인간 본연의 미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달·새·꽃 그리고 공간이 펼치는 앙상블
손문익 화백은 간결한 화면 구성과 함께 본질적인 속성을 담은 자연적 소재를 통해 고향의 따스한 온기를 전달하고자 했다. 단순히 그가 살았던 고향의 자연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고향의 정서를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손문익 화백만의 절제된 조형언어로 재구성해 그의 추억 속 고향을 화면에 채우고 있다. 특히 그의 그림을 대표하는 달과 새 그리고 꽃이라는 3가지 피조물은 그의 섬세한 표현기법을 통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자연적 소재들이 갖는 메타포는 그림마다 조금씩 변이해가며 그가 말하는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우선 화폭 맨 앞에 피어있는 꽃은 현재 우리가 딛고 있는 현재 삶 자체를 표현한다. 꽃이 가진 탄생과 죽음이라는 현실적인 가치들을 내포하면서 동시에 고운 빛깔을 머금은 채 피어난 꽃잎들은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성으로 승화했다.
그 위로 또렷하게 떠 오른 달은 왠지 모를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손 화백은 "달은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으로 항상 마음속에 사모하는 동경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이에게는 사랑의 장소가 되어 가족, 연인,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달을 향해 날갯짓하는 새는 이상향을 찾아 떠나는 자아를 투영시켰다. 잃어버린 고향이고도 하고 사랑의 장소이기도 한 달을 향해 펼치는 날갯짓은 사랑 그 자체이다. 두 마리의 새가 등장하는데 이는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며 간결한 붓 터치로 사랑의 언어를 온전히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향토적 소재와 더불어 손문익 화백의 화면 구성 역시 작품을 보는 감동을 배가시킨다. 조화롭게 배치한 각각의 이미지와 함께 넉넉하게 비워놓은 여백의 공간들은 많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화면 가득 꽉 채운 구성으로 답답함보다는 여유 있는 공간구성으로 대상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면서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전달한다.

영남미술계의 든든한 버팀목 
오랜 기간 '향(鄕)시리즈'로 사랑을 받아온 손문익 화가는 지역 내 작가뿐 아니라 미술계의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왔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면서도 문하생 단체를 만들어 수십 년간 꾸준히 운영하는 등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의 화풍을 단순히 가르치기보다는 화가 스스로 개인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예술에 대한 철학과 가치를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현재도 변함없이 영남미술을 대표하는 향토작가이자 구상회화의 대부로서 창작활동과 미술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구상작가회·대한민국회화제의 운영위원과 대구전업작가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하며 미술계에서는 끊임없이 열정을 쏟아내는 화가이자 스승으로 인정받고 있다. 향(鄕)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새롭게 풀어낸 손문익 화백. "인간 본연의 미(美)를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손 화백의 그림에서 휴머니즘이 전해진다. 사랑의 온기를 담은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이 미술이 선사하는 가치를 느껴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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