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고향"

김석기의 미술여행 김석기 작가l승인2021.07.28l수정2021.07.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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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크프르트의 풍경

독일 최대의, 금융과 상업 그리고 교통의 중심지로 유명한 프랑크프르트는 중세와 현대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고층 건물들이 대부분 은행이어서 뱅크푸르트(Bankfurt) 혹은 독일의 맨해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의 가장 큰 자랑은 무엇보다도 프랑크푸르트의 위대한 아들, 괴테(1749-1832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고향이라는 사실이다. 

 

▲ 프랑크푸르트 가는길_김석기 작가

중앙역에서 카이저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괴테의 생가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갈색조의 5층 건물, 괴테의 생가는 당시 상류층의 생활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저택이다. 1749년 이곳에서 괴테가 태어나 청년기를 보냈다. 괴테는 북독일 혈통의 부친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모친 ‘카타리네 엘리자베트 텍스토’ 사이에서 태어난 8명의 자녀 가운데 맏이였다. 아버지는 법률가로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교양 있는 사람으로 경제적으로 풍부하고 여유 있는 생활을, 어머니는 자유도시 프랑크푸르트의 귀족 계급과 맺어진 귀한 친분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괴테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혈통을 통해 북독일의 지적이고 도덕적인 엄격성과 남독일의 자유분방한 예술적 감수성을 함께 공유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현재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괴테의 생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재건한 것으로, 1층에는 식당과 작은 거실이 있고, 2층에는 외조부모의 초상화와 함께 괴테가 사용했던 피아노가 있다. 3층에는 부모의 방과 함께 괴테가 태어난 방이 있고, 4층에는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쓰고 '파우스트'를 시작한 '시인의 방'이 있다. 괴테의 초상화와 친필 원고를 만나면서 그의 살아있는 체취를 느낀다.   

 

▲ 프랑크푸르트 광장_김석기 작가

르네상스의 마지막 거장답게 그는 82년간의 생애를 통하여 인간의 한계를 넘는 신적 존재로 인정받을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다양한 주제를 다재다능한 뛰어난 솜씨로 서정성 짙은 문학 작품뿐만 아니라 과학에 관한 저서로 14권이나 남겼다. 그의 작품은 정신분석학자들의 기초자료로 사용된 동화(童話)로부터 시(詩)적으로 정제된 단편 및 중편소설, 희곡과 산문, 근대문학의 걸작‘파우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풍부하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병으로 인하여 1768년 귀향한 후 자아성찰과 종교적 신비주의, 연금술, 점성술, 신비철학에 도취한 바 있으며,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위대성을 배우게 되었고, 자연에 대한 감정의 순수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들장미'를 탄생시켰으며, 그 당시 '프리데리케 브리온'과의 목가적인 사랑을 하면서 그에게 바친 제젠하임 시가집(Sesenheimer Lieder)은 독일 서정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771년 고향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1772년 고등법원 견습생으로 베츨러에 머물면서 '샬로테부프'와의 비련(悲戀)을 겪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탄생시켰다. 1775년 괴테는 바이마르 영주의 초청으로 바이마르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여러 공직을 거쳐 재상에까지 오르면서 국정에 참여하였다. 지질학, 광물학, 자연과학 연구에 몰두하여 1784년에는 동물에만 있고 인간에게는 없다는 간악골(間顎骨)을 발견하여 비교해부학의 선구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곳에서‘샤를로테 폰 슈타인’을 만나 새로운 전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은 새로워진다. 

▲ 프랑크푸르트의 새벽_김석기 작가

이탈리아 여행은 그에게 더 많은 것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서정시 '로마의 비가'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고양된 의식과 애욕적인 부드러움을 결합해 냈고, 1,000점의 스케치를 하면서 로마의 화가 친구들과 열심히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통해서는 자신의 심오한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각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과학저서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에도 많은 흔적을 남겼고, 미학에 관한 글과 평론은 더욱 리얼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가 모든 공직을 포기하고 자신의 재능을 문학과 과학에 바치기로 결심한 것도 이 여행에서였다.

1788년 바이마르로 돌아온 괴테는 궁정극장의 감독이 되었고, 1992년 바이마르 대공과 함께 프랑스로 종군도 했으며, 새로운 여인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를 만나 1806년 정식 결혼도 하게 됐다. 비순응주의자인 그가 사회관습인 결혼에 순응하게 된 것은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결혼식은 전쟁이 끝난 4년 뒤 바이마르 궁정에서 거행되었고,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 창작에도 재착수 했다. 23세 때 시작하여 83세로 죽기 전인 1831년에 완성된 생애의 대작 '파우스트'는 세계문학의 최대 걸작이다. 파우스트에서 괴테는 인간 존재의 양극성에 대해 '여성은 그에게 남성의 영원한 인도자요 창조적 삶의 원천인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가장 숭고한 노력의 구심점'이라 요약했다. 영국의 역사가이며 수필가였던 칼라일은 R.W.에머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명랑하게 보이는 고상한 괴테가 자신의 내부에는 단테처럼 예언자적인 깊은 슬픔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괴테를 평가했고, 나폴레옹은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라는 유명한 말로 괴테를 표현했다.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였으며 불멸의 세계적인 문호, 괴테가 사랑했던 많은 여인들과 그를 좋아했던 바이마르 대공과 그의 친구였던 실러는 그를 통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진리를 알아낸 것이 아니었을까? 

 

▲ 독일의 알프스_김석기 작가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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