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웃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미는 대변인

박태석 법무법인 월드 대표변호사

  • 입력 2021.03.29 11:08
  • 수정 2021.03.29 12:09
  • 기자명 박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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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상품백화점 붕괴사건, 1998년 한보그룹 동아시아가스 외화유출사건, 2021년 디도스 특검 등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들이다. 피플투데이가 만난 법무법인 월드의 박태석 변호사는 이 사건들의 ‘해결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국가에 보탬이 되는 일에 앞장서며 굵직한 사건을 맡아오며 족적을 남겨온 박태석 변호사는 2006년 법무법인 월드를 설립한 이래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법률전문가로서 남다른 사명감으로 사회에 빛이 되어주고 있는 박태석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잊을 수 없는 '국가부도의 날'을 기억하다
20여 년간 검사로 재직하며 국가의 질서를 확립하는 일에 보탬이 되어 온 박태석 변호사. 그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서도 1998년 수사한 한보그룹 동아시아가스 외화도피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1998년 당시 외환위기로 인해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저는 서울중앙지검의 외사부 부부장으로 근무하며 재벌들이 국가부도 상태에서 외화를 빼돌려 개인의 이익을 착복하는 사례가 없는지 수사를 했지요. 그러던 중 경제기획원의 초임 사무관으로부터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확인 결과, 한보그룹의 자회사 동아시아가스가 러시아에 투자한 가스전 개발의 지분 27% 중 20%를 러시아 시단코 회사를 경유하여 영국 정유회사 BP에 매각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가스의 회장이었던 정한근과 한보그룹 회장 정태수 등 회사 관계자를 수사했고, 한보 측은 400억원을 투자해 구입한 지분을 800억원으로 매각했음에도 400억원만 신고한 후 나머지 400억원을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로 입금해 도피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한보그룹은 IMF를 초래한 주범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비윤리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박 변호사는 수사팀을 이끌고 당시 회사 대표 등 간부들을 상대로 끈질긴 설득 끝에 스위스 은행에 숨겨둔 수백억원을 모두 국내로 반입해 탈세 세금으로 국고에 입금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정한근은 외화도피내용을 모두 부인한 채 해외로 도피했으나 지난 2020년 에콰도르에서 체포돼 한국으로 들어와 재판을 받고 수감 중에 있다. 박 변호사는 22년만에 한국에 체포되어 들어온 50대의 정한근을 TV로 보면서 당시 그는 30대 초반의 엘리트였는데 인생무상과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하였다.

 

논란 속 정치개혁, '중립성'과 '공적 신뢰' 확보가 관건
한편, 박 변호사는 1997년 법무부의 지원으로 미국의 공무원 부패방지제도 연구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 검찰과 연방법원, 공정정치 실행위원회 (Fair Political Practice Commission, FPPC) 등을 방문해 연수했다. 그는 당시 FPPC 연수경험을 바탕으로 2000년에는 ‘공무원의 공적 신뢰(Public Trust) 확보’에 대해서도 연구해 정치자금 규제 및 공무원의 윤리 및 부패방지, 로비스트 규제에 관한 제도 등 미국의 정치개혁제도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룬 <정치개혁 이렇게 한다>라는 저서를 출간하여 국내 선거제도 발전 및 공무원 윤리 개선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정치개혁 이렇게 한다>에는 공무원 윤리나 선거기부금제도, 이해충돌문제, 주식의 백지위임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집필 당시에만 해도 국내에선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이제는 공무원 윤리 법률과 선거 관련 법률로 국내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공정정치실행위원회의 선거직 고위공무원 수사제도가 논란 끝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에 부분적으로 반영이 되었습니다. 해당 기구가 원만하게 운영되기 위해선 미국처럼 중립성 확보와 공적 신뢰 확보가 관건이겠지요. 또, 아직도 다양한 분야에서 로비스트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투명한 행정집행과 사법제도 실행을 위해서는 로비스트 관련 법률을 제정해 그들의 활동과 수입을 공개하고 투명성을 높여야만 행정과 사법의 공적신뢰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법조인의 사명감으로"
박태석 변호사는 지난 2006년 20여 년간 몸담았던 검찰청을 떠나 변호사사무소를 개업한 이후에도 2012년 서울시장 선거 관련 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공격에 대한 진상규명 특별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특별검사로 일하면서 3개월의 수사기간동안 약 100명의 수사팀을 이끌고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하면서 수백명을 소환하여 조사하는 등 고강도의 수사였지만 최선을 다하여 수사를 하였고, 그 수사 자료를 종합해 세간의 의혹과 달리 정치권 고위층의 개입으로 인한 사건은 아니었다는 법률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는 "특검보, 특별수사관, 파견 검사 모두 사명감과 정의감을 바탕으로 성실하게 수사를 진행한 바, 국가의 선거 질서 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보낸 3개월이었다"면서 "무척 고된 시간이었으나 돌이켜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당시 진실규명을 위해 정의와 성심을 다하여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전부다 의혹을 확인한다는 자세로 수사를 했습니다. 특검수사는 국민적 의혹이 큰 사건에 대해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범죄행위를 밝혀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주는 것이 가장 큰 책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특검이 무리한 수사나 법률적용으로 국민의 의혹을 키우거나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최선을 기하였습니다."

 

이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짜 변호인'
이처럼 박태석 변호사는 부를 쫓기보다 법조인으로서 국가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에 더욱 가치를 둔다. 종교적 핍박을 받던 이슬람 국가의 사람을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가 하면, 탈북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는 이들의 사회 정착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버림받아 영아원 등 보호시설에 있다가 미국이나 유럽 등 해외로 입양돼 성장한 한국 출신의 외국인들의 부모를 찾는 일이나 한국 국적 회복을 돕기 위해 시청이나 경찰서 등 유관기관과 연결해주는 등 법적 도움을 주고 있다.

1960년 3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간 수지 보글러 씨가 부모를 찾는 일에 큰 도움을 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지 씨는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찾기 위해 56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수지 씨를 위해 박태석 변호사는 든든한 조력자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입양 직전까지 생활했던 광주 충현원에서 수지 씨의 뿌리를 찾을 몇 가지 단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최성진'이었으며, 1958년생으로 알고 있던 것과 달리 ‘1956년 10월 11일’이 정확한 생년월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수지 씨는 자신을 후원해주던 미국인 후원자의 가정에 입양이 되었고, 유복한 환경에서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받으며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현재는 교육 관련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는 자선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수지 씨와 함께 광주 지역 신문사와 대학교 등을 방문해 뿌리 찾기와 자신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도왔다. 비록 수지 씨의 친부모를 찾지 못했으나 한국인이라는 뿌리를 찾는 데에는 충분했던 시간이었다. 

 

우리 주변의 이웃을 되돌아볼 시간
1981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래 지난 40여 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박태석 변호사. 후배 법조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며 앞으로도 소외된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사회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오로지 일과 가정에 충실하다보니 어느덧 이순(耳順)을 넘긴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녀들도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나가고 있어 부모로서의 역할은 다 해낸 셈입니다. 오랜 세월을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금껏 해왔던 대로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를 찾아 도움을 주는 일에 몰두하고자 합니다. 이와 관련해 약 3년 전부터 모임을 만들어 뜻이 맞는 변호사들과 함께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법률적 지원을 위한 연구입니다. 조만간 연구결과를 책으로 발간할 예정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 활동을 계속 할 예정이며,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보내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박 변호사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국가의 부강을 위해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특히 일본의 보수화와 재부상이 우려되는 지금, 정부와 국민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국가가 발전하는 만큼 소외계층에 대해 충분히 베풀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국가가 발전 방향을 잘 잡고 있는지 검토해 국민 모두가 함께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Profile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1981년 사법시험 23회 합격
1992년 7월~1993년 6월 영국 옥스퍼드대 수료
1993년 9월~1995년 2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6년 8월~1997년 8월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천장
1999년 6월~2001년 6월 법무부 관찰과장, 법무과장(사법시험이관준비반장 겸직)
2001년 6월~2003년 3월 서울지방검찰청 소년부장, 형사부장
2003년 3월~2006년 3월 춘천, 창원,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2006년 3월 변호사 개업
2012년 3월~12월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사이버테러 진상규명 특별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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