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의 미술여행] 터키 트로이(Troy), "역사의 지혜가 샘솟는 트로이 목마"

김석기 작가l승인2020.11.28l수정2020.11.2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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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을 떠나 마르마라해의 해안을 끼고 달리는 버스의 차창에 비치는 풍경이 아름답다. 해안선을 따라 그림 같은 별장들이 줄지어 서있고, 광활하고 한적한 농촌의 들녘은 넓다 못해 땅과 하늘이 맞닿아 지평선이 긋는다. 사막과 같은 광야가 계속되는 이곳에서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적은 인구로 어떻게 땅을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걱정도 많다. 인적을 찾아보지만 사람이라곤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휴가철을 위해 준비된 별장들도 텅텅 비어있다. 해안선 따라 천년을 넘게 자라온 올리브 나무의 고목 군락들이 이국적이다. 달리는 버스가 ‘치킬다아’라는 조그마한 도시를 지난다. 찰랑이는 바닷물이 별장의 울타리에 부딪힌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인 듯하다.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은 변함없이 다섯 시간이나 계속되고, 버스는 차나칼레 해협의 포구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 장사꾼들이 달려든다.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 넉넉지 않은 살림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차나칼레해협_김석기 작가

  
점심 식사와 함께 '사자의 젖'이라 불리는 '락크' 한 잔이 터키의 문화를 맛보게 한다. 터키 사람들이 '대한민국, 대한민국'하면서 엇박자의 외침을 계속하면서 친절을 베푼다. 본래 이곳 사람들은 중국인과 일본인만 알아주고 한국인에 대해서는 소홀한 감이 있었는데 월드컵 이후 한국을 많이 알아주어 이곳의 한국인들이 자긍심을 느낀다고 한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때리며 차나칼레 해협을 횡단한다. 선상에서 멀어져 가는 유럽의 풍경을 스케치한다. 바쁜 손놀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눈이 스케치북 위에서 마주친다. 그들이 보내는 미소 속에 나의 가슴은 뜨거워진다. 일본인도, 터키인도, 이태리인도 모두가 한국인의 스케치 북 위에서 하나가 된다. 

▲ 트로이 목마_김석기 작가

  
해협을 횡단하여 버스로 3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이 트로이다. 트로이전쟁과 목마의 이야기로 정감이 어린 곳이다. 트로이의 현재 마을 이름은 트루바(Truva)다. 트로이 지방에 촌락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곳은 청동기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기원전 2500-2000년경에는 에게해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했고, 그 이후에 몇 번의 멸망을 거듭하면서 층층의 도시 유적을 형성한 곳이다. 
  
트로이에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목마가 기다리고 있다. 트로이 전쟁을 기념하는 이 목마는 관광용으로 제작되어 이곳의 분위기를 더해주고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목마 안으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삐걱거린다. 트로이 목마의 주인공이 되어 목마 속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마냥 즐거운 웃음이 번진다. 
  

▲ 트로이 목마_김석기 작가

 

BC 800년경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최고의 영웅서사시는 '일리아스(Ilias)'다. 일리아스는 전 24권으로 완성된 대작으로 여신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절세 미녀 헤레네를 빼앗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그리스군은 헤레네의 아버지 메네라오스와 트로이전쟁에서 죽을 운명이었던 발목의 약점을 가진 불사신 아킬레스 장군과 냉정하고 침착한 영웅 오디세이아가 중심을 이루어 아가멤논의 인솔하에 활약을 한다. 트로이군은 파리스의 형 헤쿠토르의 분투로 시종 우위에 서서 아킬레스를 대신해 싸웠던 친구 파트로쿠로스를 죽인다. 아킬레스도 파리우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아 쓰러지고 만다. 전투력을 상실한 그리스군은 아킬레스의 아들에 의해 새롭게 사기를 되찾기 시작하고 트로이의 파리스는 독화살로 운명을 달리한다. 그러나 그리스군의 오디세이아는 어떻게 해도 함락되지 않는 트로이를 쳐부수기 위해서 뭔가 뛰어난 책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병사 전원이 거대한 목마를 타고 숨을 죽인 채 트로이 성안으로 들어간다. 물론 트로이군들은 목마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 목마가 그리스군의 항복의 상징으로 생각한 트로이군은 목마를 끌어다 놓고 전쟁의 종결을 기뻐하며 대향연을 열었다. 축제가 끝나고 고요해진 틈을 타 그리스 병사들은 목마에서 나와 성에 불을 지르고, 난공불락의 트로이는 어이없게 함락되고 만다. 전쟁의 불씨 헤레네 왕비는 다시 메네라오스 왕의 곁으로 되돌아가고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 성시스틴 성당_김석기 작가

금세기에 이르러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 그려진 아름답고 용감했던 트로이의 목마가 단지 신화나 전설이 아닌 사실이었다고 믿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독일의 슐리만(1822-1890)이었다. 그는 1873년 일리아스의 시를 기초로 히살르크 언덕을 발견하고 이곳을 바로 트로이라 믿고 발굴을 시작했다. 슐리만은 본래 상인으로 부를 쌓았으나 고고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42세에 고고학자가 되었으며, 18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능력을 겸비한 자였다. 그러나 슐리만은 유적지에 유적이 겹겹이 층을 이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많은 유적을 파손해 가며 수직으로 파내려 감으로써 발굴 작업을 어렵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트로이의 발굴을 중단하기 전날 프리아모스 왕의 재물을 발견한 그는 그 재물을 가지고 그리스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훗날 유물을 독일에 기증했지만 전쟁 중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유물이 러시아에 있을 것이라는 설도 있었지만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트로이 전쟁의 신화에 얽힌 비밀을 알고 있을지 모를 트로이의 목마는 그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역사 속 베일에 싸인 트로이의 비밀을 풀기 위한 슐리만의 노력과 그의 인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가 역사 속에서 얼마만큼 큰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라도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시각을 가졌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전체를 볼 수 있는 감각과 미래를 예지하는 식견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행복한 곳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곳으로 안내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雨松 김석기(W.S KIM)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및 대학원 졸업
경희대, 충남대, 한남대 강사 및 겸임교수 역임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초대작가
프랑스 몽테송아트살롱전 A.P.A.M 정회원 및 심사위원
개인전 42회 국제전 50회, 한국전 450회


김석기 작가  ksk0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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