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청국장, 전통식품에 최신기술을 입히다

선우우연 광진기업 대표

  • 입력 2020.11.19 14:50
  • 수정 2020.11.19 15:20
  • 기자명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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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기억의 매개체가 된다. 따뜻한 호빵과 군고구마는 추운 겨울날을, 시원한 수박과 팥빙수는 여름을 떠올리게 만든다. 때로는 서로 다른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 음식 ‘청국장’을 예로 들면, 고향 · 어머니 · 건강 · 따뜻함 등의 긍정적인 느낌와 함께 냄새 · 촌스러움 · 올드함 등의 부정적인 요소도 같이 떠오른다.

전통 음식 청국장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광진기업의 선우우연 대표를 만났다. 대학원에선 수공학을 전공, 기업에선 수처리 설비 관련 일을 하던 그녀는 어느 날 청국장 연구에 뛰어들었다. 언뜻 생각해서는 공학과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분야인 청국장. 도대체 무엇이 선우 대표를 발효식품 사업으로 이끈 것일까?

 

'균'에 집중하다

청국장의 전통적인 제조방식은 볏짚 등을 이용하여 콩을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효를 돕는 균 외에 다른 균들도 함께 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저희 아버지는 식품업계에서 일을 하시다가 퇴직 후에 청국장을 만드셨어요. 옆에서 지켜보며 발효식품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조리과정의 불편함과 냄새로 인해 청국장이 점차 우리의 식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아버지의 노하우와 정성을 바탕으로, 청국장을 글로벌 슈퍼푸드인 낫또처럼 많은 사람이 대중적으로 즐기는 음식으로 만들고 싶어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어요."

 

선우우연 대표는 2014년부터 아버지와 함께 청국장을 만들었다. ‘딱 봐도 잘 안 될 것 같다, 사서 고생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수년간 연구에만 매진했다. 그 결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청국장을 만드는 핵심균만을 따로 배양하여 제조 공정에 도입할 수 있게 됐다.

"낫또가 세계적인 식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제조 공정 표준화에 있습니다. 발효결과물을 동일하게 맞춤으로써 여러가지 음식에 접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청국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제조 공정 표준화가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작 공정을 정량화할 수만 있다면, 냄새를 대폭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청국장을 원료로 하는 다양한 식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제조 방식에서 벗어나 공학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흔히 ‘발효’라고 하면 그냥 가만히 둬도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온도, 습도, 산도, 시간, 발효균의 활성도 등 다양한 변수를 동시에 관리해야 합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청국장 어벤져스'

영화 <어벤져스>에서는 아이언맨, 토르, 캡틴아메리카, 헐크 등 다양한 기원을 가진 히어로들이 등장해 악당을 물리친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이들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광진기업의 청국장 공방에는 식품공학, 통계학, 수공학, 제어공학, 컴퓨터공학, 스마트팩토리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하고 있다. 각기 다른 업계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인력들이 청국장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한 데 뭉친 것이다. 이들은 각자의 특기를 앞세워 안전하고,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흡사 ‘청국장 어벤져스’를 연상시키는 이들의 노력으로 광진기업은 2018년 기술혁신형 창업기업 최우수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생산공정 표준화를 위해 공학을 접목한 것이 식품업계에 혁신의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곤지암 열미리에 위치한 바이오청국장 공방
곤지암 열미리에 위치한 바이오청국장 공방

 

정성을 가득 담은 '바이오청국장'

"영어단어 'Bio'는 사전적으로 ‘인간의 삶’과 ‘생명’을 의미합니다. ‘바이오청국장’이라는 저희 제품명에도 아버지의 삶과 정성을 자녀들이 이어 나간다는 것, 그리고 유익한 균이 살아 숨쉬는 청국장이라는 두 가지 뜻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위탁 생산 없이 모든 과정을 직접 제조하고 있어요. 고객에게 드릴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다해 직접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품질관리 방법이자 진심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광진기업은 국내산 콩 중에서도 임금님께 진상될 만큼 품질이 좋다는 연천 비무장지대(DMZ)의 콩만을 고집한다. 그리고 곤지암 열미리에 있는 발효 공방에는 두꺼운 벽 대신 커다란 통유리 창을 사방에 달아, 밖에서 내부가 훤히 보이도록 만들었다. 낙후된 형태의 식품공장보다는, 더욱 세련된 모습의 유럽식 공방 모델을 채택한 것이다. 깐깐한 원료 선정과 더불어 제조 현장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깨끗하고 안전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선우 대표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건강식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어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2008년 15만명에서 최근 150만~200만명으로, 10년 새 10배 이상 급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지속적으로 커져가고 있는 추세다. 건강이나 체력 관리를 위한 지출이 증가하면서 ‘덤벨 경제’라는 용어가 새로 탄생하기도 했다.

선우우연 대표는 기업 내 자체 R&D 연구소를 세워 발효기술 연구,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저탄고지(LCHF) 열풍에 이어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비건(vegan) 트렌드에 발을 맞춘 것이다.

"끓여 먹는 청국장 이외에 청국장 치즈케이크, 청국장 후무스, 제철과일과 함께하는 청국장 샐러드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냄새를 없애고 간편하게 만들어 커피나 와인에 곁들일 수 있다면 보다 많은 분들이 청국장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아이에게 좋은 것만을 먹이고 싶은 부모님들, 각종 질병으로 인해 화학조미료를 못 드시는 분들께도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저희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좋은 재료, 건강한 먹거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속하실 수 있도록 말이예요."

 

 

청국장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꾸고 싶어

청국장에 함유된 유익한 균들은 장내의 유산균을 활발하게 작용하게 만들어 변비와 설사 예방에 도움을 주고, 장내 유해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정장효과를 통해 건강한 장 컨디션을 갖게 한다. 뿐만 아니라 청국장은 우리 몸을 깨끗하게 만든다. 청국장의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단백질 분해 효소는 혈액 속의 혈전을 녹이는 작용을 하여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준다. 마치 건강한 사회질서를 위해 힘쓰는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청국장 하면 다들 몸에 좋은 건 알지만 냄새 나고 먹기 불편하다는 생각을 먼저들 하시죠. 저희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것을 넘어, 청국장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공학기술을 적용해 고품질의 결과물이 산출되도록 생산공정을 표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음식에 청국장을 접목시킨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객분들께서 더 안전하게, 더 편하게, 더 건강하게 청국장을 즐기실 수 있도록 지금도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에 이로움을 주는 다양한 발효식품을 선보임으로써, 언젠가는 청국장이 낫또보다 더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즐겨 찾는 식품이 되길 바랍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외출 빈도가 줄어들면서 운동량이 적어지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비중은 크게 늘어났다. ‘확찐자’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변비 환자가 증가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는 요즘이다. 오늘 저녁, 가족들과 함께 청국장을 먹으면서 건강한 라이프를 즐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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