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수리 한 길만 걸은 명장을 만나다

선박수리 명장 두손레저 손종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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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우리나라 말로 명장은 한 분야에서 기술이 뛰어난 장인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장인정신은 한 가지 기술에 통달할 만큼 오랫동안 전념하고 작은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여 노력하는 정신을 뜻한다. 장인은 모든 나라에 있지만, 나라마다 그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독일 장인의 경우 수공업자 조합 (Guild, 길드)에서 후계자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도제식 교육이 특징인데, 15세기부터 도제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 가족이 대를 잇는 것이 특징인데,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대를 당연히 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독일, 일본의 장인은 모두 사회적으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 역시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술이 존재했지만,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명맥이 끊기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특히, 자손이 선대의 가업을 잇는 경우가 앞서 언급한 두 나라에 비해 많이 드물다. 이렇게 기술의 명맥이 끊기게 되면 개인적인 차원,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손해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가업의 형태로 대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는 장인이 있다. 오늘은 모터보트, 선박 수리계의 명장인 두손레져 손종구 대표를 만나 55년 동안 묵묵히 한 길만 걸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두손레저는 손 대표의 아내와 아들까지 함께하는 가업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 길은 걷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한번 들어보자.

 

바다와 강을 누비는 모든 선박을 수리하다
바다와 강을 누비는 모든 선박을 수리하는 두손레져 손종구 대표의 업력은 올해로 55년 차이다. 한창 꿈을 꿀 나이인 15살 때부터 신당동에 있는 국내 최초 선외기 / 선내기 수리업체인 ‘신기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기술을 배운 것이 그 시작이다. 신기사에서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선박 엔진에 대한 정비 지식을 습득하였고, 이후 한양공고 자동차학과에 진학하여 일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60년대 당시, 선박, 모터보트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국내에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손종구 대표는 주로 군부대에서 쓰는 특수 모터보트나 경찰에서 사용하는 경비정의 엔진을 수리하며 기술을 익혀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일을 해오다 74년도에 신기사를 운영하던 대표가 일을 그만두게 된 후, 회사를 물려받아 직접 운영해왔다. 4년 뒤인 78년도에 선박, 모터보트가 사치품 목록에서 해제되어 당시 정 ·재계 인사들이 가진 모터보트를 수리하며 일을 해왔다.

 

 

두손레져, 머리와 손으로 선박을 수리하다
지금의 두손레져는 신기사의 대표가 작고한 지 2년 후인 86년도에 설립되어, 국내에서 가장 실력 좋은 선박 엔진 수리소로 35년째 운영되고 있다. 두손레져의 ‘두손’은 머리를 뜻하는 ‘두’와 손을 뜻하는 ‘손’이 합쳐져, 머리와 손을 이용하여 수리한다, 두 손으로 선박엔진을 수리한다는 의미가 있다. 

두손레져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요인은 역시 손 대표의 기술력이다. 손종구 대표는 당시 국내 2개밖에 없던 자동차 관련 학과를 진학했던 것이 선박 엔진을 수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자동차 내연기관에 관해 공부한 것을 선박 엔진을 수리할 때 접목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고객을 대하는 손 대표의 태도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것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수리 맡긴 선박을 내 선박처럼 꼼꼼하게 잘 정비해주고, 수리비도 과도하게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도 했고, 장인정신을 가지고 기술력으로 승부하였습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리를 대충하면 기계에 다 티가 나서 손님도 알아차려요. 작동이 안 되던 기계를 제 손으로 고쳐 고객이 고장 없이 잘 쓸 때 보람을 느낍니다."

신념, 가치관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업을 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한 덕분에 수리를 맡긴 손님이 주변에 소개해주는 일이 많았다. 특히, 두손레져가 소문이 났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업체에서 못 고치는 것을 손종구 대표는 고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도로 인프라가 좋지 않아 출장을 오고 가는 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도 했고, 크레인 장비같이 무거운 것을 옮기는 장비도 없어 직접 사람이 들고 옮겨야 했다.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꾸준히 기술력을 키우고 고객과 신뢰를 쌓으면서 자부심을 갖고 일한 결과, 일이 끊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명장, 외길을 걷는다는 것
55년. 반세기가 넘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요즘이야 선박, 수상레저가 활성화된 편이지만, 3~40년 전인 80년대만 하더라도 수상레저에 대한 수요 자체가 많지 않았다.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는 것. 어떻게 해야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손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면서 오는 막막함과 불안감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일을 시작할 때 업 자체가 전망이 불투명했죠. 레저 수요는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80년대에 들어서야 모터보트, 선박에 대한 사치품 제한이 풀리고, 2000년대 초반부터 레저에 대한 수요가 늘기 시작하였죠. 물론, 중간중간 다른 직업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1년만 더 해보자, 1년만 더 해보자며 버텼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큰돈을 못 벌어도 꾸준히 했던 것이 도움되었습니다."

손종구 대표는 기억에 남는 고객으로 작고하신 전 현대자동차 회장인 정 회장을 꼽았다. 당시 현대자동차 기술자가 3일을 밤을 새우고도 못 고치던 정 회장 개인 선박을 두손레져 손 대표가 몇 시간 만에 고친 일화가 있다. 이것을 계기로 정 회장이 손 대표에게만 배를 만질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이후로 틈틈이 교류하며 정 회장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마인드를 간접적으로 배웠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 회장임에도 불구하고 절약하는 모습과 사람을 대할 때 겸손한 태도, 고객을 대할 때 정직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고 하며, 두손레져 고객을 응대할 때 정 회장으로부터 배운 것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길을 꾸준히 걸으며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관찰하면서 겸손한 태도와 정직을 바탕으로 고객을 대한 결과 모터보트 엔진 수리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손종구 대표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모터보트를 수입하여 판매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며, 연구를 통해 하이브리드 엔진을 가진 모터보트를 개발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두손레져는 아들인 손지수 실장이 아버지인 손 대표의 일을 같이 도와주고 있으며, 몇백 년씩 전해 내려오는 일본의 음식점 명가처럼 자부심을 가지고 변함없이 대대손손 가업이 이어지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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